월가 대형은행, 무역전쟁에도 지배력 유지할까

2025-04-22 13:00:55 게재

WSJ “잠재적으로 수익악화 가능성”

중국이 제조업이라면, 미국은 금융업이다. 미국은 제조품 수출보다 수입을 많이 하지만, 막대한 무역흑자를 보는 부문이 있다. 바로 금융서비스 분야다.

미국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금융서비스 흑자는 약 1300억달러였다. 이 가운데 일부는 미국 기업들의 역외자본 거래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매매 수수료와 증권 인수, 인수합병 자문 등 월가 은행들의 금융서비스 흑자는 약 100억달러에 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글로벌 대형은행 매출 순위는 미국쪽으로 급격히 넘어왔다.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은행들은 전세계 투자금융 매출 순위에서 1~5위를 휩쓸었다. 10위권으로 넓혀도 7개가 미국은행이다.

2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같은 상황에서 글로벌 무역전쟁이 벌어지면서 월가 대형은행들은 부수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지난 15년 동안 유럽의 많은 대형은행들은 위축됐다. 중국과 아시아 대형은행들은 지역을 넘어선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역전쟁이 오래 지속되면 이같은 세력도를 바꾸기 시작할 수 있다”고 전했다.

월가 은행들도 이같은 점을 우려하고 있다. JP모간체이스 최고경영자 제이미 다이먼은 최근 1분기 실적발표회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하지만 일부 고객이나 나라가 미국 은행들에 대해 다르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상황을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JP모간은 매일 160개 이상의 나라에서 120개 이상의 통화로 10조달러 이상의 자금을 옮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경우 미국 이외 국가들에 대한 신규대출이 성장의 주 원천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외국에 대한 BofA 신규대출은 2022년 말 대비 14% 늘었다. 반면 전체 대출 성장률은 6%에 그쳤다. BofA 최고재무책임자 앨러스테어 보스윅은 지난주 1분기 실적발표에서 “외국에 대한 대출이 지난 15년 간 성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같은 상황이 하룻밤 새 바뀌는 건 아니다. 외국 기업들이 수년간 거래하던 월가와 갑작스레 결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미국 자본시장은 전세계 가장 크고 깊다. 이는 외국 기업들에게 크나큰 매력이다.

대표적으로 씨티그룹은 최근 금융사업에서 별 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은행 CEO 제인 프레이저는 지난주 애널리스트들에 “국경간 사업이나 자본흐름을 재편할 필요가 있을 경우, 글로벌 기업들은 오히려 더 씨티그룹에 관심을 보일 수 있다”며 “씨티그룹은 폭풍이 불어닥치는 환경 속에서 안전한 항구로서 기능한다”고 말했다.

WSJ는 “하지만 무역전쟁이 오래 지속될수록, 월가 은행들에 대한 위협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 브래드 셋서는 “외국 기업들이 매우 비싼 거래수수료를 내면서 굳이 월가 은행들의 글로벌 지점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며 “무역이나 기타 사안의 갈등 때문에 월가 은행들을 냉랭하게 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캐나다 사람들이 미국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을 재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글로벌 무역시스템이 흔들리면서 유럽 등 다른 나라들이 월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줄이는 장기적 개혁을 서두를 수도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지낸 마리오 드라기는 지속적으로 “유럽 자본시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촉구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WSJ는 “유럽이 자본시장 개혁에 성공한다면 강력하고 거대한 유럽은행들이 등장할 것”이라며 “금융 디커플링이 진전되면 월가 은행들의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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