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원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 ‘알박기’ 논란

방사청 수의계약 밀어붙이기…국방위원들 “차기 정부로 넘겨라”

2025-04-23 00:00:00 게재

24일 분과위·30일 방추위 열어 강행 방침

방사청 합의 ‘압박’에 민간위원들 반발

민주 의원들 “전 정권 특정업체 밀어주기”

권력공백기 ‘알박기’ 논란을 빚고 있는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국회 국방위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주체 선정(상세설계)과 관련해 22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일반 지자체에서도 2000만원 이상의 경우엔 수의 계약으로 하면 안 되는데 조 단위를 넘어가는 사업의 경우엔 수의 계약보다는 자율경쟁으로 하는 게 맞다”고 했다. 이어 “과도정부가 4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서두르기보다 새로운 정부에서 해야 한다”며 “이같은 대규모 전략사업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면 책임지고 자율 경쟁으로 하는 게 맞다. 그래야 경쟁력이 더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초계함 승선한 한덕수 권한대행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6일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초계함에 승선해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당 소속 국방위 조승래 의원도 “방사청이 급하게 사업자를 선정하려 한다면 전 정권에서 미리 짜여진 게 아닌가하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국방위 소속 민주당 중진의원은 “복잡한 문제인데 밀어붙이려는 것은 특혜 주기 위한 거 아닌가”라며 “8조 사업을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나. 차기 정부에서 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대규모 사업은 여유를 두고 하는 것이 좋다”며 “국방위원들이 의견을 모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결정 주체인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인 국방부 장관이 공석인 상태에서 주요 국방관련 사업을 결정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사퇴한 후 김선호 차관이 장관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석종건 방사청장은 지난해 2월 엄동환 전 청장 후임으로 윤석열정부에서 두번째로 임명됐다.

이와 관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16일 울산광역시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을 방문한 것도 오해를 사고 있다. 차기 구축함 사업방식 결정과 관련해 특정 업체를 편 드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방사청 “기본설계업체 수의계약이 관례” = 국회와 방사청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방부 산하 방위사업청(청장 석종건)은 24일 사업분과위원회를 열고 사업자 선정방식을 결정할 태세다. 방사청은 이날 선정방식이 정해지면 30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방사청은 지난달에도 분괴위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방사청이 ‘수의계약 방식’을 밀어붙이자 민간위원들이 ‘특정업체 특혜’라며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방사청은 그동안 기본설계를 한 업체에게 수의계약으로 상세설계 및 군함 건조를 맡겨 온 게 ‘관례’라는 입장이다. 안정적인 사업 관리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반면 민간위원들은 “업체간 법적 분쟁을 겪어온 만큼 공정한 경쟁입찰에 붙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민간위원들은 “사업자 간 입장 차이가 크고 정국이 정국인 만큼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며 “공동개발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과위는 모두 25명이고 이 가운데 6명이 민간위원이다. 방사청은 후폭풍을 우려해 ‘전원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민간위원들을 상대로 ‘선행보고’라는 명분으로 설득 중이지만 일부에선 ‘압력’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방사청이 설득에 실패하면 24일 다수결로 결정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방사청 관계자는 “방추위 설립 목적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자는 것이어서 일방적으로 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24일 무조건 결정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나 방사청장이 정국과 관계없이 결정할 건 결정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해 대선 전 사업자 선정 가능성도 언급했다.

정치권의 부정적 반응에 대해서는 “정당을 떠나 지역구 의원들의 친소 관계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고도 했다.

조용진 방위사업청 대변인은 22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KDDX 상생협력 방안을 양사(현대중공업·한화오션)와 계속 협의하고 있으나 아직 완전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며 “사업추진 방안은 KDDX 함정의 중요성, 함정산업 전반의 역량, 최적의 사업관리 방안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심의 의결을 거쳐 결정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화오션-현대중공업 ‘피 튀기는 수주 전쟁’ = KDDX는 국내 기술로 선체와 이지스 체계를 모두 건조하는 첫 국산 이지스 구축함 사업으로 2030년까지 총 7조8000억원이 투입돼 6000톤급 함정 6척을 확보할 예정이다. 함정 사업 과정은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이뤄진다.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은 2012년 개념설계를, HD현대중공업은 2020년 기본설계를 맡았으며 통상적으로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수의계약을 통해 상세설계를 수행했지만 한화오션은 경쟁입찰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측이 한화오션의 설계도면 등을 훔쳐 기본설계를 따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관련 군인과 현대중공업 직원 등 10여명이 사법처리를 받았다. 지난 10여 년간 양사는 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과 법적 분쟁을 벌여 왔다.

차염진·정재철·박준규 기자 yjcha@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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