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급 처리’ 압박에 의대생 고심 커져
대학, 수업 불참 본과생 유급 방침 재확인 … 정부, 의학교육위에 학생 포함키로
정부가 내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을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동결한 가운데 대학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엔 학칙대로 유급 처리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의정갈등 사태 이후 처음으로 의대생과 사직전공의들을 만나 대화에 나서면서 이들의 마음을 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23일 교육계에 따르면 가톨릭대 26일, 경북대·계명대·영남대 28일, 충북대 29일, 동국대 30일 등 각 대학의 유급 시한이 속속 다가오고 있다. 상당수 대학은 이미 유급시한이 지났다.
◆강경파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대학 = 각 대학은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학칙에 따라 유급 처리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대학별로 총 수업일수가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이 수업일수의 1/3 혹은 1/4 이상 결석하면 학칙에 따라 F 학점을 부여하고 유급 처리한다. 의대는 한 과목만 F 학점이면 유급되며, 최소 2회에서 많게는 4회 누적되면 제적될 수 있다.
최근 40개 의대 학장들로 구성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수업 불참 본과생을 모두 유급 처리하기로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런 방침을 교육부에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 이상 유연화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앞서 여러 차례 밝힌 KAMC가 이를 다시 확인한 것은 ‘대학이 결국 유급을 결정하지 못할 것’이란 강경파 학생들의 주장이 수업 복귀 속도를 더디게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의대 본과생들의 대규모 유급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모집 인원 조정 과정에서 한발 물러난 교육부도 더 이상 양보는 없다는 입장은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의대생들 사이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내년 모집인원 동결 발표 후 일부 의대생 사이에서 “유급되지 않으려면 수업 참여 여부는 이제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 부처 내 이견에도 교육부가 책임지고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 규모로 되돌리면서 의대생 사이에서 점차 이견이 생기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의대생 수업 참여율에 가시적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출석률이 그렇게 많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정체 상태에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제 (정부가) 추가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이 돌아오면 대학과 함께 열심히 교육하겠다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주호 부총리, 의대생과 첫 공식 대화 = 또한 교육부는 의대생 복귀를 독려하기 위해 원칙론과 함께 당근책도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는 22일 의학교육 정책을 결정할 때 의대생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학생 의견 수렴 기구인 의학교육위원회를 운영하고 향후 의료계와의 신뢰 회복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대한의료정책학교 주최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정부와 의료계 간 진정성 있는 소통이 부족해 의료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져 왔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이같은 방침을 확인했다.
의학교육위 구성안은 지난달 교육부가 발표한 의대교육 정상화 방안에도 포함됐던 것으로, 세부 구성 방안은 이르면 5월 초 마련될 예정이다.
김홍순 교육부 의대교육지원관(의대국장)은 간담회 후 “당초에는 자문기구 성격으로 구성할 계획이었는데 교육 과정에 학생들 의견도 반영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며 “의학교육위에 학생 위원도 포함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총리가 지난 1년여 간의 의정갈등 사태 이후 의대생들과 공식적으로 만나 대화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 부총리의 간담회 참석은 대한의료정책학교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의료정책학교는 정부 의료 정책에 반발해 사직한 전공의 등 젊은 의사 10여명이 직접 의료 정책의 대안을 내고자 세운 조직이다. 의료정책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대안 제시 능력을 갖춘 의료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주로 온건파 의대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협은 간담회 불참 = 강경파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이번 간담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부총리는 “의정갈등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개별적인 정책 때문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쌓여온 정부와 의료계의 불신에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오늘 이 자리가 학생 여러분과 교육부는 물론 의료계와 정부 간 신뢰 회복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24·25학번의 개별 교육과정에 따른 졸업 후 의사 국가시험과 전공의 정원 배정, 전공의 모집 일정 및 향후 전문의 자격시험 일정 유연화는 이미 복지부와 협의를 완료했고,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는 2시간가량 진행됐으며 의대생 11명과 전공의 2명이 참석했다. 의대생 가운데 일부는 아직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에선 이 부총리와 인재정책실장, 의대교육지원관 등이 자리했다.
간담회는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의대생들과 교육부 실무자 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김홍순 의대국장은 “오늘은 학생들의 복귀를 위한 조건을 이야기하는 자리는 아니었다”며 “교육부는 (강경파 의대생들 모임인) 의대협은 물론이고 어느 자리든 가서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