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연준 흔들기 멈추고 관세 칼 접다
IMF경고·시장 반응에 태세 전환
‘미국 우선’에서 ‘협상 우선’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특유의 강경 일변도 전략에서 급선회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맹비난하며 해임까지 시사하던 그는 “해고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중국에 대해서도 “관세는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언어조정이 아니라 실질적 방향전환의 신호로 읽힌다. 연준을 향한 압박, 중국과의 경제 전쟁, ‘미국 우선’ 구호로 채워졌던 트럼프의 경제 드라이브가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해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불과 며칠 전 “정말로 해임할 수 있다”는 거친 발언과는 대조적이다. “지금이 금리인하의 완벽한 시점”이라는 기존 주장도 반복됐지만 어조는 확연히 누그러졌다. 또 “나는 그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지만, 그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관세정책도 눈에 띄는 변화가 감지된다. 그는 중국과의 무역 협상과 관련 “하드볼(hard ball) 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기존의 대립 구도를 낮췄다. “그들도 부드럽게 대응할 것”이라는 말은 향후 타협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했다. 특히 “145%는 너무 높다.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대중국 고율관세 전략의 사실상 철회를 시사했다.
이러한 급격한 분위기 전환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와 시장의 반응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IMF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미국 경제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투자와 소비의 위축, 글로벌 공급망 충격, 달러 불안정 등을 구체적으로 경고했다.
여기에 더해 연준 독립성 훼손 우려가 제기되며 달러는 약세를 보였고, 국채 수익률은 급등했다. 더군다나 실제 파월 해임을 시도할 경우 법적 충돌은 물론 연준의 정치화 논란이 일 수 있다. 연준 독립성 역사를 공동집필한 마크 스핀델 투자 매니저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은 시장 신뢰를 무너뜨리고 차입 비용 상승 등 수많은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했다.
무역전선에서도 백악관은 유화적 메시지를 강조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현재까지 18개국에서 무역 제안서를 접수했고 이번 주에만 34개국과 회담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도 포함된 이 협상들은 ‘트럼프 스피드’라는 표현 아래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개별 국가와의 맞춤형 협상이 다자간 관세 충돌을 완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미중 간의 고율관세 상태를 “사실상 무역금지조치(trade embargo)”라고 표현하며 갈등이 지속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트럼프행정부의 전략 목표를 ‘분리(decouple)’가 아닌 ‘재조정(realignment)’으로 규정하며 중국은 소비 중심, 미국은 제조업 중심으로 역할을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외교무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조율의 메시지를 강화하고 있다. 25일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 참석을 위해 바티칸으로 출국하고, 내달 중동 순방도 예정되어 있다.
이는 대외적으로 협상가 이미지를 복원하고, 무역 전쟁을 넘어선 국제적 리더십을 과시하기 위한 행보로 읽힌다.
‘강공’에서 ‘조율’로의 변화는 무역과 통화정책뿐 아니라 정치 스타일까지 조정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가 겉으로는 여전히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시장과 국제사회는 이전과는 다른 언어와 행동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