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패러다임 변화하는 성폭력범죄
성폭력범죄라고 하면 조두순 사건이나 연쇄강간살인 등 전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는 강력범죄가 먼저 떠오르게 마련이지만 최근에는 비대면·비접촉 상태에서도 범죄가 가능한 디지털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휴대폰 등을 통해 불법 성착취물을 제작하는 행위 및 이를 유포·구입·소지·시청하는 등의 범죄를 의미한다.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하는 일명 몰카 촬영, 피해자의 얼굴을 포르노 동영상 속의 신체와 합성시켜 만드는 일명 딥페이크 영상 등이 불법 성착취물 제작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피해자로부터 동의를 받아 확보한 신체 일부 사진을 피해자 동의 없이 유포하는 행위도 디지털 성범죄에 포함된다. 디지털 성범죄는 휴대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범행 도구로 삼고 피해자와 비대면 상태에서도 범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피해자에 대한 폭행·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기존의 성폭력범죄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또한 디지털기기와 각종 앱이 발달할수록 디지털 성범죄도 더욱 고도화하고 보다 은밀한 수법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점에서도 기존 성폭력범죄와는 양상이 다르다.
10대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 급증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수는 2020년 4973명이었던 반면 2024년에는 1만305명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디지털 성범죄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 중 10대 청소년이 상당수를 차지한다.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2024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른 연령대별 피해자 현황은 20대가 5242명(50.9%)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10대가 2863명(27.8%)을 차지했다. 10대 피해자 중 여성은 2468명, 남성은 395명이었다. 10대 청소년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하여 범죄 피해로 인해 심리적 고통이 크고 정상적인 성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호 필요성이 크다.
둘째, 디지털 성범죄로 양산된 불법 성착취물은 불특정 다수에게 널리 확산될 수 있다. 피해자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피해자의 불법 성착취물이 SNS를 타고 순식간에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이를 영구히 삭제하는 조치를 하지 않으면 피해자는 오랫동안 고통받게 된다.
셋째,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를 추적하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딥페이크 제작자가 해외 서버를 둔 SNS를 통해 이를 유통시켰을 때 해당 SNS의 관리자에게 인적사항 특정을 위해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해도 해당 가입자가 탈퇴해 정보가 없다는 회신이 오는 경우, 더 이상 가해자를 찾을 수 없다.
넷째, 불법 성착취물로 피해자를 협박하다 오프라인에서의 성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 불법 성착취물을 유포시키겠다고 피해자를 비대면 상태에서 협박한 뒤 피해자를 실제로 만나 강간에 이르는 경우가 지속해 발생하고 있다. 텔레그램 박사방, 목사방 등 사건이 대표적인 범죄다.
신속하고 실효적인 지원책 마련돼야
급증하는 디지털 성범죄로 성폭력범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누구나 손쉽게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될 수 있으며 그 피해정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범죄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신속하고 실효적인 지원책도 다각도로 마련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