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역사적 변환기의 약달러 전략
미국경제는 다른 나라에 국채를 수출하고 상품을 수입하면서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감당해야 하는 궁지에 몰려 있다. 무역·재정적자는 저축이 부족한 미국경제에 치명적인 약점이다. 지난해 말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36조2186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124.1%에 이를 정도로 높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부채만 9조2000억달러다. 올 회계연도 적자도 1조9000억달러가 예상된다. 2024 회계연도 정부이자가 8820억달러로 국방비 8740억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디폴트 위협’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나라로 전락했다. 천문학적 부채는 미국정부에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부채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지난날 미국 정치권에서 폭증하는 정부부채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누구도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현 시기를 ‘역사적 변환기’로 규정하고 그 대책으로 ‘약달러 전략’을 제시했다. 부채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트럼프정부는 이 전략을 두 방향으로 전개한다. 첫째, 원유 생산을 최대한 늘려 싼 가격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시차를 두고 물가가 내려가면 시장금리를 낮출 수 있다. 트럼프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빨리 끝내려는 것은 약달러 전략이 배경이다.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선거공약집 ‘어젠다47’이 에너지 분야에 역점을 둔 것을 보면 트럼프 선거캠프의 치밀한 기획력을 엿볼 수 있다.
둘째, 미 국채수요를 늘려 시장금리를 낮추는 것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기준금리 인하에 난색을 표명하자 트럼프정부는 10년물 국채금리에 집중하고 있다. 금리는 수요와 공급이 교차하는 돈의 가격이다. 국채는 미 재무부가 공급하고 수요는 다양하다. 미 연준, 해외 중앙은행, 미국 상업 은행 등이 큰 고객이다.
그런데 양적축소가 진행되는 중이라 미 연준이 국채수요를 늘리기는 힘든 상황이다. 해외 중앙은행 등 공식기관의 경우 2025년 2월 기준 미 국채의 16.5%를 보유하고 있다. 이전 평균인 28~30%에 비해 상당히 줄었다. 세계 각국이 달러패권에서 탈피하고 미 정부의 금융제재 등에 대응하기 위해 달러를 매각한 결과다.
중국의 경우 과거 1조달러 이상 보유했으나 미중갈등이 본격화한 2018년부터 줄여 올해 2월 7590억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해외 중앙은행이 축소한 부문을 뮤추얼펀드와 헤지펀드 그리고 개인 등이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소유는 금리변동성에 취약한 단기물 위주라는 약점을 갖고 있어 미 재무부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미국정부는 대형 은행(총자산 2500억달러 이상)에 적용되는 SLR(보완적 레버리지 비율) 규제를 완화해서 미국의 시중은행들이 미 국채를 매입하도록 할 방침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금융감독 담당 연준 부의장으로 미셀 보먼을 내정했는데, 그녀는 대표적인 규제 완화론자다. 국채가격 급락으로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하는 것을 보고 국채매입에 등을 돌린 시중은행들을 달래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의 약달러 전략에는 충격적 제안이 담겨있다. 거대한 소비시장과 안보리더십을 활용해 동맹국에게 약달러 부담을 공동으로 지우는 방안이다. 그 중 하나가 동맹국이 갖고 있는 10년 이하 단기국채를 100년 만기 무이자국채로 바꾸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본지 4월 1일자 21면, 트럼프 관세전쟁 청사진 ‘미란 보고서’ 참조>본지>
100년간 물가가 연 3%씩 오른다면 현재 100억원 가치는 100년 후 약 5억2000만원으로 줄어든다. 100/(1+0.03)^(100)≒5.2이기 때문이다. 미국 초장기국채 매입은 동맹국에게 ‘갈취’에 가깝다. 최근 주요 동맹국들의 소극적인 반응과 시장의 불안정성 때문에 미 재무부가 해당 계획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지만 언제든지 사용가능한 카드다.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미 장기국채 투매가 큰 걸림돌
트럼프 전략에서 관세는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전술적 수단에 불과하다. 오히려 달러약세 유도가 대외불균형 극복과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과제다. 트럼프정부의 약달러 전략이 성공할지 아직 미지수다. 국내외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미 장기국채 투매가 큰 걸림돌이다.
18개월 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하면 약달러 전략은 물거품이 된다. 공화당이 이기려면 최소 선거 6개월 전 유권자에게 가시적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향후 12개월 사이에 ‘관세’를 넘어 동맹국에게 ‘강제적 평화’까지 확보해야 한다. 트럼프에게 남은 시간은 촉박하다. 기업과 가계, 800만 서학개미 등 개인투자자는 미국 의도를 파악하고 18개월을 버텨야 한다. 역사적 변환기를 지구전(持久戰)으로 극복해야 한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