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선택권 “EU는 노동자에게 있지만 한국은 사측에 치우쳐”

2025-04-24 13:01:22 게재

한국노총-경총 ‘저출생 해결’ 맞손

“노사 실질적 참여, 제도정비 필요”

대표적인 노사단체인 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저출생 해결을 위해 노사협력을 강화에 나선다. 한국노총과 경총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여정연)과 함께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저출생 대응을 위한 노사협력 방안 모색 공동토론회’를 열었다.

앞서 한국노총은 지난해 4월 경총에 국가경제와 미래세대의 발전을 위한 공통의제를 발굴하고 상호협력해 공동사업을 추진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 첫번째 현안으로 저출생 문제를 선정했다.

정성미 여정연 연구위원은 ‘일·생활 균형제도 활용현황 및 국제비교를 통한 시사점’ 발제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육아휴직, 육아기 노동시간단축 등 일·생활균형 제도활용률이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선진국 수준에 비춰 볼 때 낮지 않지만 여성과 대기업 중심으로 활용률이 높아 성별과 사업장 규모별 격차가 크다”면서 그 원인으로 “유럽연합(EU) 15개국의 경우 일·생활균형을 위한 유연근무제 활용에 있어 근로시간 선택권이 노동자에게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근로시간 설정 권한이 회사에 치우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여성고용률 제고와 저출생 대응을 위해 근로시간 형태의 다양화와 유연근무제 확대가 핵심 전략”이라며 “이를 위해 노사양측의 실질적인 참여와 제도적 정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미영 여정연 여성고용연구본부장은 ‘일·생활 균형 관련 노사협력 사례 및 정책제언’ 발제에서 “고용과 근무조건이 열악했던 사업장에 노조가 설립되면서 단체교섭을 통해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사용이 활성화된 사례는 노사협력의 실행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육아휴직 외에도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이나 유연근무제 등 근로자 생애주기 및 사업장별 특성에 맞는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노사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일·생활 균형 활성화를 위한 노사공동의 노력과 함께 정부 지원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토론에서 윤자영 충남대 교수는 일·생활 균형제도의 보편적 사용과 성평등한 노동권 강화를 위한 대안으로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를 이용한 근로자가 본래의 근로제도와 일자리에 복귀할 수 있는 권리보장 △직종별 특성과 제약 조건을 반영한 맞춤형 정책 설계 △최저보장급여액의 실질 상향을 통한 저소득 계층의 사용장벽 완화와 육아휴직 사용여부와 무관하게 돌봄에 따른 소득감소 완화하도록 사회수당형 제도 병행 △노사협의기구에 성평등 위원회 또는 돌봄분과 설치논의 정례화 △공공기관 평가, 기업ESG 지표 등에 육아휴직 사용률과 유연근무활용률, 성별사용률 현황 반영 등을 제시했다.

윤 교수는 “향후 일·생활 균형은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에서 ‘이용하기 쉬운 조건’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선애 경총 고용정책팀장은 “노사협력은 일·생활 균형 문화 확산에 핵심적인 요소로, 기업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정책적 지원과 노사간 장기적 파트너십 유지가 중요하다”면서 “현장의 수용성을 고려해 제도의 무분별한 확대보다는 현행 제도의 실질적 안착을 위해 노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윤정 한국노총 여성정책본부 실장은 “유럽 15개국의 시간제 여성노동자의 경우 출산율이 높은 이유는 시간제 일자리가 전일제와 근로조건에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노동자에게 시간단축, 시간장소 주권을 부여하는 것이 일·생활 균형을 가져와 출산율을 높이고 생산성 증가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연근무제와 같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일하는 시간’의 변화가 노동시간 단축과 병행돼야 저출생 해법으로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우리나라는 모성보호 및 일·생활 균형을 위한 관련 제도와 정책이 선진국 못지않게 잘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활용이 매우 낮고 특히 중소·영세기업에서 육아휴직, 육아기 노동시간단축 제도의 활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러한 문제는 노사가 협력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과제”라고 말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경영계는 저출생 대응을 위한 책임있는 사회주체로서 일·생활 균형을 실현할 수 있는 근무환경 조성과 가족 친화적인 기업문화 확산 같은 실천가능한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계와의 긴밀한 협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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