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 국가채무

2025-04-25 13:00:01 게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시키는 노력이라며 강압적 행동을 거칠게 쏟아내고 있다. 더구나 그 대상으로 미 정부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보다는 서방 국가의 지원을 받아온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습관적인 돌출 행동으로 치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엇을 노리고 무리한 행동마저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계속 늘어나는 국가채무를 더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의사표현을 거리낌없이 하는 것이다.

미 국가채무는 천문학적 액수에 도달한지 오래다. 한 추계는 약 36조2175억달러(5경1573조원)라고 발표하고 있다. 채무 액수가 대단위여서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지만 증가속도도 매우 가파르다. 지난해 1월 미 재무부가 34조달러(4경8400조원)를 넘어섰다고 발표했으니 1년 사이에 2조달러 늘어난 셈이다.

미 국가채무는 심각하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2023년 미 국내총생산(GDP)은 27.72조달러다. 비교 시점의 시차가 있지만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을 넘어서 130%를 초과하고 있다.

채무불이행 사태 걱정하는 미 연방정부

미 국가 채무는 2009년에 GDP의 101%를 넘어섰으며, 2015년에 GDP 122%까지 도달했다. 미국은 연간 국민이 벌어들인 소득보다 국가 빚이 더 많은 나라로 전락한 지 벌써 16년이 됐다. 미 의회 예산국은 앞으로 30년 안에 국가채무는 2배로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비관적 예상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미국은 세계 최대의 부국이라는 체면에도 불구하고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연방공무원들의 봉급을 주지 못해 일정 기간 사무실 문을 닫는 일이 벌어졌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교육부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국무부 직원들의 대량 해고를 예고하며 한국의 부산 영사관을 포함한 해외 10개 대사관, 17개 영사관의 폐쇄를 적극 검토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해외 전쟁의 참여는 국가채무 악화의 제1주범으로 미국은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2001년9.11 테러 사건 이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벌이면서 전쟁 비용과 치안유지 비용을 쏟아넣어야만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1기 대통령 시절에 ‘끝없는 전쟁(Endless War)’이라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2019년 10월 자신의 트위터에 “중동으로 들어간 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결정이었다. 미국은 결코 중동에 있지 말았어야 했다”면서 그 비용을 8조달러(약 1경1320조원)라고 주장했다. 이 액수는 다른 추계보다 2~3배 많지만, 막대한 전쟁 비용을 웅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 바이든 대통령도 집권 7개월만인 2021년 8월 굴욕적인 패배를 감수하고 아프간에서 일방적으로 철군하면서 ‘영원한 전쟁(Forever Wars)’을 마무리했다. 전쟁 비용에 대한 심각성 앞에 공화 민주 양당 모두가 비슷한 견해를 내놓은 것이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 의회가 인정한 우크라이나 총 지원액은 벌써 1750억달러(248조2900억원)에 이르고 있다. 무기 지원(706억달러), 우크라이나 정부 예산 지원(538억달러)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국가채무가 자기 발등의 불로 떨어진 처지에서 미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탐탁치않게 여기고 있다. 지난 2월 28일 미 백악관에서 공개 정상회담 역사상 드물게 원색적 용어가 오간 트럼프-젤렌스키 회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 행정부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줬다. 트럼프는 무조건 휴전을 요구했지만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완강히 거부해, 회담은 파행의 극단을 치달았다. 미국은 그동안 지원한 돈이 아까워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매장된 희토류의 채굴권을 요구하기도 했다.

천문학적인 국가채무에 종전 서둘러

트럼프 정부의 우크라이나 압박은 서방국가에 실망을 안겨주고, 민주주의 수호라는 미국의 가치와도 맞지 않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국가채무 때문에 기존 태도를 바꿀 수도 없다. 또 미국 내 여론도 트럼프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악화되고 있다. 미국경제와 산업에서 유래하는 구조적인 문제 등이 얽혀 있는 외교안보 사안을 트럼프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해결이 가능할지에 대해서 세계는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성걸

동아시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