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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반격, 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이 의미하는 것

2025-04-28 13:00:12 게재

2025년 일본 반도체가 돌아오고 있다. 그것도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글로벌 반도체 패권경쟁의 중심으로 복귀하고 있다.

4월 1일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Rapidus)가 홋카이도 치토세 공장에서 시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2나노(nm)급 차세대 반도체다. 미국 IBM과 기술제휴를 맺었고, 2027년부터는 본격적인 양산체제에 들어간다. 정부는 올해까지 라피더스에 총 1조7225억엔(약 17조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라피더스는 2022년 8월 일본정부가 주도해 설립했다. 대기업 8곳이 공동 출자했는데 반도체 제조는 키옥시아(Kioxia), 비메모리 분야는 소니, 반도체 패키징 및 부품은 다이닛폰프린팅, 정보통신 기술은 NTT와 NEC, 인공지능(AI) 및 데이터 관련 수요는 소프트뱅크, 자동차 관련 수요는 토요타, 금융은 미쓰비시UFJ은행이 참여한 ‘일본 산업력의 집합체’다.

올해 4월 25일에는 정부가 라피더스에 출자도 가능하도록 관련법인 ‘정보처리촉진법’을 개정했다.

이중 키옥시아는 도시바가 경영부진으로 반도체 부문을 매각하면서 2019년에 설립된 기업이다. 2017년 9월 미국계 투자펀드인 베인캐피털이 주도하는 ‘판게아 펀드’라는 한국 미국 일본 자본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이 인수해 56.24%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도시바는 4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미-일-대만 협력, 그리고 인도 전략

일본 반도체 복귀의 시작은 2021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였다. 미중 기술 패권경쟁이 시작되고 반도체를 비롯한 중요 물자의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해지는 위기 상황이었다.

그해 11월에 출범한 기시다 내각은 ‘경제안전보장’을 국정 핵심과제로 채택했다. 이 시기에 대만 TSMC가 구마모토 공장 건설을 발표했고, 2022년 5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라 반도체를 포함해 배터리 AI 양자컴퓨터 우주·해양기술 등이 ‘특정중요물자’로 지정되었다.

TSMC의 구마모토현 공장(JASM)은 작년 12월부터 12~28nm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제 2 공장(6~12nm)도 올해 내 착공해 2027년부터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일본정부는 구마모토현 공장에 대해 총 1조2360억엔(약 11조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 반도체의 복귀 흐름을 보면 미국-일본-대만의 산업 연계가 보인다. 2010년대에 자리잡았던 미국-대만-중국을 연계한 팹리스(기획, 설계)-파운드리(위탁제조) 라는 국제분업체계가 사라지고 새로운 국제협력체계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서 일본은 단순한 협력국이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인프라 제공자로서 등장하고 있다.

“실력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일본은 반도체 소재, 장비, 고급 패키징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제조 장비 분야에서 도쿄일렉트론은 첨단 노광·증착장비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소재 분야에서 신에츠화학과 SUMCO는 실리콘 웨이퍼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며, 안경 렌즈로 유명한 HOYA는 블랭크 마스크 분야 세계 1위다.

특수가스 분야에서는 다이킨공업, 레조낙(구 쇼와덴코), 타이요닛폰산소, 에어워터 등이 고순도 에칭, 세정용 가스 시장의 강자다.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소니의 시모스(complementary metal–oxide–semiconductor,CMOS) 이미지 센서는 세계 점유율 60%다.

주목할 점은 일본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인도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에 언급한 일본 기업들이 인도의 반도체 자립 정책에 협력하면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반도체 공급망 질서가 재구축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일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질서 재구축

일본은 더 이상 메모리 경쟁에서 승부를 보려 하지 않는다. 대신 반도체 생태계 전반, 그리고 차세대 비메모리 시장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일본 반도체가 다시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교한 정부 정책,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 기술, 그리고 글로벌 협력 전략이 맞물린 결과다.

일본은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다시 조용하게 부상하고 있다.

이찬우 일본경제연구센터 특임연구원 전 테이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