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노 전 대통령 일가 계좌추적

2025-04-28 13:00:33 게재

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서 불거져

5.18기념재단 등 고발로 수사 착수

검찰이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300억 비자금 은닉 의혹’과 관련해 자금 흐름 파악에 나섰다. 30여년 만에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범죄수익환수부(유민종 부장검사)는 최근 노 전 대통령 일가의 금융계좌 자료를 확보하고 자금 흐름을 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비자금 특성상 노 전 대통령측이 현금·어음·채권 등 형태를 바꿔가며 자금을 관리했을 것으로 보고 현 상황을 기준으로 역추적하며 비자금 실체와 은닉 여부 등 행방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자금이 SK그룹 승계 과정에 활용됐는지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자료가 광범위하고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선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전 자료 파악도 필요해 자금 흐름 분석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이 본격 제기된 것은 1995년 10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다. 당시 박계동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4000억원이 시중 은행에 차명계좌로 분산예치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 수사와 재판을 받았지만 명확한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었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이 다시 불거진 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다. 노 관장측은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도움으로 SK그룹이 성장할 수 있었다며 어머니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온 50억원 짜리 약속어음 6장의 사진과 메모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메모는 김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에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을 기재한 것으로 여기에 ‘선경 300억원’이 적혀 있었다. 1991년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 300억원을 건네는 대신 최 회장의 선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선경건설 명의 어음을 전달했고, 이 돈이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는 게 노 관장측 주장이었다.

이에 최 회장측은 노 전 대통령측으로부터 300억원을 받은 적이 없고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활동비로 제공하겠다는 약속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노 관장측 주장을 인정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으로 유입됐다고 보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의 상고로 두 사람의 이혼 소송은 아직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지만 30여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오른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면서 검찰 수사가 진행됐다.

5.18기념재단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와 노 관장,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을 범죄수익 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시민단체 ‘군사정권 범죄수익 국고환수추진위원회’도 같은 취지로 고발장을 냈다.

고발 사건을 맡은 검찰은 지난해 11월 고발인을 조사하면서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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