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불패도 옛말…공적자금만 투입하고 끝나는 개발사업
“공매가격 절반 떨어져도 안산다” … 시장분석 없이 무턱대고 PF, 대부업 전락

훼손된 울타리로 구분돼 있는 공터는 성형외과 빌딩과 근린생활시설, 빌라촌를 끼고 있다. 인근 한 약국에 물어보니 “개발사업을 진행하다 자금난으로 멈춘 것으로 안다”며 “신사역이라고 해서 다 같은 곳은 아니고 이곳은 특히 유동인구가 적고 다세대 주거지가 있어 상대적으로 개발여건이 안좋은 곳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자료에 따르면 신사역 주변인 신사동과 논현동 모두 인구가 1%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신사역 3번출구 앞에서 지켜보니 건너편 1번출구나 7번출구에 비해 확실히 유동인구가 적었다.

◆ 부동산 경기 나빠지면서 책임준공할 시공사 못구해 = 부동산 시장이 악화되면서 시행사들이 브릿지론(토지 매입용 단기 대출)에서 본PF(프로젝트 파이낸싱)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사역 3번 출구 앞 의료관광 중심지에 공터로 남은 이 곳 사업장이 대표 사례다.
사업시행사인 리드건설은 2020년 ‘신사역역세권복합개발피에프브이’를 설립해 오피스텔 건립 목적으로 신사역 3번출구 앞 논현동 16번지 외 7필지 2976㎡(900평)를 사들였다.
2023년 6월에는 강남구청으로부터 제1종근린생활시설(업무시설, 근린생활시설)로 변경해 건축허가를 받았다. 용적률 496%,연면적 3만1584㎡로 개발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행사는 건축비 조달을 위해 PF를 추진했지만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실패했다. 2023년부터 부동산경기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책임준공과 연대보증을 설 시공사가 선뜻 나서지 않은 것이다. 토지 매입 후 고금리와 대출규제 등이 몰리면서 건축비 조달이 어려워졌다.
조달했던 브릿지론 금리도 크게 올랐다. 만기를 4번 연장하면서 버텼지만 이자 부담이 컸다.
여기에 경기 불황으로 신사역 주변 상권도 무너지면서 결국 공매에 넘어갔다. 이곳처럼 신탁사가 공매에 부치는 토지는 시행사가 대출 이자를 부담할 여력이 없는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시행사에 브릿지론을 내준 금융기관(대주단)은 만기 연장에 실패하는 등 사업이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신탁사에 공매를 맡긴다. 대출자금을 일부라도 회수하기 위해서다.
◆재공매해도 팔릴 가능성 점치기 어려워 = 이 부지도 지난해 10월 첫 공매에 들어갔지만 8회차까지 모두 유찰됐다. 첫 공매 최저입찰금액 3129억원에서 8회차에는 2250억원으로 거의 1000억원 가까이 낮아졌지만 매입을 희망하는 곳이 없었다.
이 사업장 신탁사인 한국자산신탁은 공매가 유찰되자 수의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공매의 경우 8회차까지 유찰될 경우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한국자산신탁 관계자는 “수의계약은 2250억원 이상 제시하는 매수희망자와 협의할 수 있고 현재 몇몇 사업자가 구두로 긍정적 의사표현을 해왔다”며 “매수희망자가 계약금을 납부하고 자금 보충 계획서를 제출할 경우 대주단에서 인정하는 금액으로 계약할 예정이고 인허가 사업권은 시행사와 별도로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개발업계에서는 이 땅이 현재 2250억원 이상 가격에 팔릴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대출주선기관인 하나은행은 이 부지를 재공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아직 구체적인 공매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최저금액인 2250억원 이상을 제시하는 곳이 있으면 수의계약도 가능하지만 현재로는 2250억원보다 높은 가격으로 재공매를 추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돈놀이 전락한 PF, 결국 공적자금 투입 = 이 개발사업의 경우 강남권역 부동산시장과 신사역 주변 성장세 등을 좀더 분석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감정평가법인이 한국자산신탁 의뢰로 시행한 이 사업장 감정평가서에 따르면 강남구의 지가변동률은 전반적으로 전년비 상승률이 둔화된 추이를 보이고 강남구의 월평균 거래건수 및 거래금액은 하락하는 등 부동산 시장 하락이 예견되던 시점이었다.
향후 이 사업장 부지가 매각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통상 1차 공매에 유찰될 경우 감정가에서 30% 가량 저렴한 시장 가격이 형성된다. 감정가는 토지비에 인허가비용과 관리비 등이 추가로 붙어 결정된다.
추가 비용은 토지비의 약 20% 수준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낙찰 받을 경우 통상 인허가를 다시 진행하는 사례가 많은데 추가 비용이 들어가고 별도로 PF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감정가의 50% 수준으로 떨어져야 매수 가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 아울렛 ‘W몰’은 지난해 11월말까지 모두 6회차 공매를 진행했지만 모두 유찰됐다. 최초 감정가인 2602억원 대비 66.17% 감소한 880억원까지 떨어졌지만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수도권에 물류센터 등을 공급해온 한 시행사 대표는 “8회차 공매에도 유찰될 경우 대략 30% 정도 가격이 떨어지는데 최근에는 재공매를 해도 8회차까지 유찰되는 사례도 많다”며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야하는데 대출기관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대출기관이나 신탁사에서는 실제 팔려는 의지도 없다”고 전했다.
지난해 PF 대출은행이 부실 사업장을 자회사에 넘긴 사례도 있었다. 회생 가능성이 없어진 사업장에 대한 부실채권을 헐값에 자회사에 넘겨 회수이익을 얻겠다는 것이다.
부실 PF사업장은 공매를 통해 대출자금을 회수하거나 사업을 정상화시키기 어려운 곳들이다. 한국 부동산경기를 장기 불황으로 끌고 들어갈 악성종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런 곳은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등 정부 부담도 커진다. 정부는 지난해 부실 부동산PF 안정화를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내용의 지원책을 발표했다. 공공이 참여하는 사업장 경우 민관합동 PF조정위원회를 통해 사업기한 연장, 지체보상금·위약금 감면 등을 적극 조정할 방침이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수석은 “사업장 공매 밀어내기는 PF 연쇄 부도 위험 줄이기 위한 조치인데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응급처치’는 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구조조정 전용 펀드 조성 예를 들어 부실화되기 직전 혹은 부실화된 자산, 특히 부동산 PF 채권을 민간과 공적 협력 자금으로 인수해 시장 충격 없이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며 정상 PF 프로젝트 지원정책도 함께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릿지론 대출을 수행해온 한 시행사 임원은 “PF가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받는 대부업과 같이 운영되다 보니 프로젝트 성공에 대한 분석이나 확신, 혹은 시기 조율은 없고 싸게 빌릴 수 있을 때 개발하려고만 한다”며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