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내역도 없이 심사하는 ‘깜깜이 예비비’

2025-04-30 13:00:21 게재

추경서 58% 늘었지만 심사 근거 자료 없어

정부 “제출의무 없다”지만 2020년엔 공개

“특활비 등은 사용기관 예산으로 전환해야”

정부가 내놓은 예비비 규모는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국회의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적정성 여부를 검토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의 예비비 사용 내역과 향후 사용계획이 없으면 추가로 배정해야 할 규모가 어느 정도나 돼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추경안 편성과정에서 예비비를 본예산보다 50%이상 늘려 잡았다.

30일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올 1차 추경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이번 추경안에 편성된 예비비 규모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당해 연도 목적예비비와 일반예비비의 배정·집행 내역을 바탕으로 가용 예비비 규모를 살펴볼 필요가 있지만 정부는 해당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추경안의 예비비 증액 규모는 1조4000억원이다. 추경안 총지출 규모 12조2000억원의 11.5%다. 올해 예산안에 들어가 있었던 예비비 예산 2조4000억원의 58.3%를 추가한 셈이다.

사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일반예비비는 8000억원에서 50.0%인 4000억원 늘렸고 구체적인 사용처가 있는 목적예비비는 1조6000억원에서 62.5%인 1조원을 확대했다.

정부는 헌법 55조(예비비 지출에 대한 국회의 사후 승인 의무)와 국가재정법 52조(예비비 사용 총괄명세서의 국회 제출 및 승인 의무)를 근거로 ‘예비비 지출은 차기국회에서 승인받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차년도 국회에 예비비 사용총괄명세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있다’며 올해 예비비 배정과 집행 내역 공개를 거부했다.

예결위 전문위원실은 “헌법과 국가재정법은 예비비를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이나 예산 초과지출에 충당하기 위해 편성하는 자금이라고만 규정할 뿐, 예비비의 공개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부가 제출한 예비비 증액사유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큰 상황이다.

국회 기획재정위 전문위원실은 검토보고서에서 기획재정부 제출자료를 근거로 “올해 본예산 기준 부처에 배정된 재난·재해대책 사업 예산은 9270억2000만원으로, 이번 추경안에는 102.0% 증가한 9460억원이 추가로 증액 됐다”며 “이에 따라 추경안이 원안대로 확정되면 3월말 기준 집행액을 제외한 재난·재해대책비 가용재원은 1조3536억4600만원으로, 올해 본예산 규모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추가경정예산안과 예비비의 특성을 감안할 때,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면서 동시에 예측하지 못한 사유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사전에 구체적인 용도 없이 총액만 심의받는 예비비를 1조4000억원 수준의 큰 규모로 증액편성하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예비비는 예산안 편성 당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일반 예산과 달리 총액으로만 의결하고 세부 내역에 대해 국회의 사전 의결 없이 사후 승인을 받도록 한 예외적인 제도”라며 “예비비는 예산의 배정 및 집행에 있어서 행정부의 재량이 크며, 국회의 예산 심의·확정권을 제약하는 제도이므로 적정 규모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실제 2020년의 경우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당시 정부는 당해 연도 예비비 배정 세부내역을 공개한 바 있다”며 “예비비는 예산안 편성·심의 과정이 아닌 집행과정에서 그 내역공개에 대하여 일반예산과 다르게 특례를 둘 사유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와 관련 예결위는 “산불 태풍 및 집중호우와 같이 예측하지 못한 재해·재난 등에 사용하는 예비비의 경우 그 집행내역 공개를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한편 예결위는 국정원의 안보비, 대통령실이 사용하는 특수활동비, 경호처 등이 쓰는 정보보안비 등을 예비비가 아닌 원래 목적에 맞는 비목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보안과 기밀성 유지가 필요한 경비는 특수활동비나 안보비 및 정보보안비 등 집행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비목으로 편성·집행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국정원 뿐만 아니라 대통령실 경호처 등이 대통령 해외순방 등을 위해 빼서 사용하는 특수활동비 등을 실제 사용하는 기관의 예산에 배정해 제대로된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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