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개헌보다 헌정회복이 먼저다

2025-05-02 13:00:03 게재

작년 12월 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성 비상계엄 선포와 계엄군의 국회 투입 등 그 실행행위로 말미암아 헌법이 유린당하고 절박한 헌정위기가 초래됐다. 그리고 올해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결정 이후 ‘헌정 위기’에서 ‘헌정회복’으로 가는 계기가 마련됐지만 이제 그 시작일 뿐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탄핵정국이 어느 정도 무르익자 윤 전 대통령 파면결정이 내려지기도 전부터 개헌에 관한 주장들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이 이렇게 된 것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규정한 헌법 때문이라는 이유 설명과 함께 였다.

안철수 전 후보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중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는 책임총리제 중심의 분권형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홍준표 전 후보도 지난 15일의 비전 발표에서 4년 중임제와 국회 양원제 도입을 포함한 개헌을 공약했다. 두 후보 모두 2명을 뽑는 최종경선 진입에는 실패했다. 언론에선 한덕수 전 권한대행의 개헌이야기도 나온다. 대선 출마 선언 후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방식의 분권형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개헌논의 새 정부 이후로 미루는 게 바람직

헌법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이 시점의 개헌논의 제안에 특히 권력구조 개헌논의 제안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위헌·위법한 권력 남용은 윤 전 대통령과 일부 정치인들이 해놓고 왜 헌법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개헌 타령인가. 오히려 헌법 제77조가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절차와 요건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어긴 윤 전 대통령을 중대한 헌법위반을 이유로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개헌논의는 새 대통령 선출 이후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물론 1987년에 개정되고 무려 38년간 한번도 개정되지 않은 현행헌법이 그 동안의 시대변화를 담아내지 못해 개헌이 필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은 오는 6월 3일에 새 대통령을 뽑고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유린된 헌법의 상처를 치유하며 헌정질서를 회복할 때다. 특히 이 시점에 정치권이 개헌논의를 끄집어 내는 것은 위헌·위법한 내란성 비상계엄으로 깊은 상처를 입어 아직 그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우리 헌법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개헌을 논할 때가 아니라 경제를 살릴 때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그리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우리는 혹독한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또한 지금은 내란 책임자들뿐만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내란 동조자들에 대해 국회가 조사하고 특검 등 중립적 수사기관이 철저히 수사하여 책임의 소재를 정확히 파악한 후 이들을 엄벌해 12.3 사태와 같은 엄청난 국민배반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책 수립에 뜻을 모아야 할 이다.

대통령제니 의원내각제니 혹은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로 유지할지 4년 중임제로 개정할지에 관한 개헌논의를 지금 시작하면 제대로 된 경제위기 극복이나 내란종식에 방해만 될 뿐이다. 오히려 이번 대선후보들이 대선공약으로 대통령이 되면 1년 정도 개헌과 관련한 국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겠다고 천명하는 것이다.

새 대통령이 된 후 1년 동안 수렴된 국민들의 다양한 개헌 아이디어들을 모아 민주적인 방식으로 개헌안 초안을 만들어 이를 국민적 공론에 부치며 공론화 작업을 통해 다시 다듬어진 개헌안을 새 대통령이 집권 2년차에 발의하는 식으로 개헌을 추진하면 어떨까. 그러면 그야말로 국민이 주도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개헌이 되지 않을까.

‘미래세대의 목소리 개헌내용에 더 담기길

이 개헌의 아이디어는 SNS를 통해서도 수렴될 필요가 있다. 이번 ‘야광봉 혁명’에서 필자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주도할 젊은 세대들을 많이 목도했고 이들의 민주적 역량에 깊은 신뢰를 갖게 됐다. SNS를 통해 이런 미래세대들의 목소리가 개헌의 내용으로 더 많이 담기길 희망한다.

국민들이 이 시점에 진정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정치권이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개헌보다는 상처입은 헌법을 치유해 헌법의 규범력을 되살리면서 이를 통해 헌정질서를 회복하는 일이 먼저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