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한중일, 위기대처 금융안전망 강화
자연재해·팬데믹 등 위기시 가동 신속금융제도 개선 등 논의
이창용 출국 전 “한은, 양적완화 도입해야 하는지도 검토해야”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이 지역내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역내 금융위기와 자연재해, 감염병 확산 등으로 불안정성이 확대될 것에 대비해 다자간 금융안전망을 구축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다.
한국은행은 이창용 총재가 오는 4일부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제28차 아세안+3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와 ‘제58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다고 발표했다. 기획재정부에서는 최상목 장관이 1일 밤 전격 사퇴하면서 최지영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이 참석한다.
기재부와 한은에 따르면, 이번 아세안과 한중일 회의에서는 역내 금융안전망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 다자화’(CMIM)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된다. 특히 신속금융제도(RFF)의 개선과 재원조달구조 개편 등이 주된 의제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신속금융제도는 지역내 특정 국가에서 금융 및 경제위기 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나 대규모 팬데믹 등 일시적인 충격으로 위기가 발생했거나 조짐이 있을 경우 일정한 규모의 단기자금을 해당 국가에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세안+한중일은 지난해 회의에서 역내 금융위기 등에만 자금을 지원하기로 하는 것에서 자연재해나 팬데믹 등으로 확대하는 데 합의하고 후속조치를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 자금 지원의 요건을 확대한 배경에는 팬데믹 등의 확산으로 중앙은행이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면 외환보유액이 급감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금융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또 CMIM이 다자간 통화스왑 방식으로 운영돼 불안정한 자금운용 시스템을 자본납입금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현재 CMIM 국가별 분담금 규모는 중국과 일본이 770억달러 안팎으로 가장 많고, 한국이 약 390억달러로 뒤를 잇고 있다. 이밖에 인도네시아와 태국(약 90억달러), 베트남(20억달러) 등이다.
이번 장관급 회의에 앞서 지난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차관급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는 지난해 장관급 회의에서 합의한 CMIM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후속 조치들을 논의했고, 밀라노 회의에서 최종 합의할 예정이다.
한편 이창용 총재는 회의 참석을 위한 출국에 앞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수단 등과 관련 양적완화 정책도 검토할 시점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이 총재는 지난달 30일 한은과 한국금융학회가 공동 주최한 ‘우리나라 통화정책 수단의 운용과제 및 시사점’이라는 정책심포지엄에서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정책금리가 제로 하한 수준에 근접하면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할 수 있을지,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의 이날 발언은 기준금리가 일본 등과 같이 제로(0%) 수준으로 떨어질 경우 금리정책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양적완화도 상정하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은은 그동안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상 무제한 돈풀기 방식의 양적완화 정책은 물가안정과 외환시장 충격 등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해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따라서 이번 이 총재의 발언은 당장 정책적 검토를 한다기보다 장기적으로 중앙은행 통화정책 수단의 하나로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