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대리업 법제화 추진…대형마트·편의점으로 확대될까
법률개정안 논의에 금융위 “자기자본 5억 이상” 의견 제시
은행 지점 최근 5년간 1048곳 폐쇄, 금융 접근성 격차 커져
당국, 연내 시범운영 … 우체국·상호금융·저축은행으로 한정
금융당국이 은행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은행대리업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대리업무 수행 사업자에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이 포함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은 이미 편의점에서 은행대리업을 시행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우체국과 상호금융·저축은행 등으로 대상을 제한해서 올해 안에 은행대리업 시범운영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은행법 개정안은 은행대리업 가능 사업자를 제한하지 않고 있어 비금융법인 뿐 아니라 개인도 가능하게 돼 있다.
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정명호 수석전문위원은 은행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금융법인 외에 비금융법인(편의점, 대형마트 등)으로까지 진입가능 사업자를 확대하는 것은 금융서비스와 비금융서비스를 결합한 다양한 연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소비자의 편익을 증진할 수 있으며, 은행대리업의 활성화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비금융법인은 여·수신 등의 업무 수행 경험이 없어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금융사고 발생, 내부통제 및 금융소비자 보호 미흡 등의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금융법인에 비해 높을 수 있고,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은행대리업을 도입하는 것이므로 대면거래 접근성 확대 효과 및 은행대리업 도입으로 인한 영향 등을 보아가며 그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소비자 피해 등을 예방하는 데에는 적절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일본, 일반사업자에도 대리업 개방 = 국내 은행 지점이 최근 5년(2019년말~2024년 10월말)간 1048곳 줄었고 폐쇄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은행들의 비대면 영업 비중이 늘면서 지점 이용자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점 폐쇄가 잇따르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는 디지털에 취약한 고령층의 은행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어 은행대리업 도입 필요성이 점차 커졌다.
결국 금융당국은 지난 3월 은행대리업 제도 도입을 위한 ‘금융접근성 제고를 위한 은행업무의 위탁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편의점은 은행대리업 사업자에 포함되지 않지만 입·출금 서비스 활성화를 통해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로 했다. 편의점 등에서 실물카드·현금을 통한 소액 출금과 거스름돈 입금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지만 가맹점과 이용범위가 제한적이다. 금융당국은 편의점 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사업자의 가맹점 확대를 추진하고, 물품 구매없는 출금 허용과 입·출금 한도를 상향하기로 했다.
일본의 경우 일찌감치 은행대리업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2005년 은행법 개정을 통해 은행대리업자의 전업주의를 폐지하고 일반사업자도 은행대리업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은행대리업의 재위탁도 가능하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편의점 업체인 세븐일레븐재팬은 세븐뱅크를 설립해 편의점에서 △공공요금 수납 △전자상거래 대금 수취 △보험료 수납 △환전 △대출금 상환 등 뱅킹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
호주는 1995년부터 은행이 없는 지역에서 우체국이 은행 업무를 대리 수행하고 있다. 미국은 은행대리업 제도는 없지만 은행이 비금융회사와 제휴를 통해 결제, 청산, 지불과 같은 은행의 중요한 기능을 위탁할 수 있다.
◆예금·대출 등 대리업무 허용 범위 쟁점 = 개정안은 은행대리업의 최저자본금을 500억원으로 규정하고 있어 진입 규제를 높게 설정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자본금 요건을 500억원 이상으로 하는 것은 지방은행 및 인터넷전문은행의 자본금 요건이 250억원인 것에 비춰 과도한 측면이 있으며, 은행대리업자와 유사한 성격의 ‘금융소비자보호법’상 금융상품직접판매업자 등에 적용되는 자기자본 요건(5억원 이상) 등을 고려한 논의가 필요한다”는 입장을 국회에 밝혔다.
정 수석전문위원은 “은행대리업에 대해서 최저자본금을 도입하는 것은 시스템의 안정성을 도모하고 소비자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타당하나, 최저자본금 수준에 대해서는 업종별로 최저자본금을 두는 주요 목적과 타 업권의 최저자본금 수준 등을 고려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대리업자의 경우 은행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구조여서 소비자 피해 보상 측면에서 최저자본금 요건을 엄격하게 할 필요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언급했다.
은행대리업의 업무 범위를 어디까지 할지도 쟁점이다. 금융당국은 예금업무, 대출업무 및 환거래업무의 심사 및 승인 등은 대리할 수 없도록 하고, 계약의 체결 및 해지(입금 및 지급 포함)만 위탁 가능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은행의 모든 고유업무(예금업무, 대출업무, 환거래업무)에 대해 대리 또는 중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정 수석전문위원은 “은행대리업 도입의 주요 목적이 대면거래의 접근성 제고인 점, 대출의 심사 및 승인 등을 대리할 수 있도록 할 경우 소비자 보호 및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개정안은 은행대리업자가 은행의 허락을 받으면 은행대리업을 재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정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제시했다. 재위탁을 허용하면 더 많은 지역과 다양한 채널에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금융 소외 계층의 접근성이 보다 개선될 수 있지만 재위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서비스 품질 저하, 금융 사고 등)의 책임 소재가 더욱 불명확해질 수 있고, 불완전판매 등 금융사고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안에 시범운영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오는 7월 은행대리업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해 법률개정 없이도 시행에 나설 예정이다. 은행법 개정안은 3분기에 마련해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