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목, 수업·수능 불일치…학생 부담 심화
자연계열 수능서 사회탐구·확률과 통계 이동 뚜렷 … 학교에선 진로 중심 선택 여전
최근 1~2년 사이 선택 과목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졌다. 선택형 수능에서는 표준점수 유불리,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진로·적성 중심으로 과목을 선택했다면 최근에는 굳이 어려운 과목보다는 수월한 과목을 선택해 전략적으로 입시에 접근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예로 모의고사에서 수학 영역은 ‘미적분’ 선택자가 줄고 ‘확률과 통계’ 선택자는 눈에 띄게 늘었다. 탐구에서는 과학탐구 선택자가 급감한 반면 사회탐구 중 ‘사회·문화’ ‘생활과 윤리’ 선택자는 급증했다. 국어에서도 공부량이 많은 ‘언어와 매체’보다는 ‘화법과 작문’ 선택자가 늘고 있다. 모의고사에서 선택 과목의 변화가 커진 만큼 학교 교육과정에서도 과목 선택에 변화가 있을까? 배움과 전략 사이에서 과목 선택의 괴리가 나타나는 상황을 들여다봤다.

4월 서울시교육청 주관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학평)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사탐런(자연 계열 진학을 생각하는 학생이 수능 탐구 영역에서 전략적으로 과학이 아닌 사회 과목을 선택하는 현상)은 예견된 일이었지만 국어와 수학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수능 전략 과목 위주 선택 뚜렷 = 3월 학평은 졸업생이 응시하지 않는 시험인데다 고2 겨울방학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점검할 수 있는 시험으로 재학생의 대입 준비 상황을 예측하기에 좋다.
3월 학평에선 사회탐구(사탐) 선택자가 대폭 증가했다. 작년에 이어 사탐런이 두드러졌다. 불과 2년 전인 2023년 3월엔 학평에선 사탐 응시자가 32만1994명이었지만 2024년 35만492명, 올해는 44만9468명이었다. 탐구 응시자 수(2023년 30만6001명, 2024년 32만1493명, 2025년 34만8853명)를 고려하더라도 가파르게 증가한 셈이다.
특히 ‘사회·문화’는 2024년 10만4742명(32.85%)에서 2025년 15만825명(43.23%)으로 크게 늘었고 ‘생활과 윤리’ 역시 35.40%에서 39.13%로 상승했다. ‘정치와 법’이 7.54%에서 7.50%로 소폭 감소한 것을 제외하면 모든 사탐 과목들의 선택 비율이 늘었다. 반면 ‘물리학Ⅰ’은 15.10%에서 12.32%로, ‘화학Ⅰ’은 12.55%에서 8.07%로 감소했고 응시자가 많았던 ‘생명과학Ⅰ’ ‘지구과학Ⅰ’마저 줄었다.
올해 고3 학생 수가 증가했음에도 ‘생명과학Ⅰ’은 31.46%에서 25.95%로, ‘지구과학Ⅰ’은 30.44%에서 24.34%로 각각 줄어드는 등 과탐 응시자 수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정제원 서울 숭의여고 교사는 “대학이 자연계열 지정 과목을 폐지하면서 시험 난도와 공부량이 부담스러운 과탐보다는 사탐을 선호하는 현상이 작년 대비 더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오원경 경기 용인홍천고 교사는 “‘물리학Ⅰ’ ‘화학Ⅰ’에 대한 두려움이 큰 학생들은 사탐 1과목을 선택하는 경우가 꽤 많다”고 덧붙였다.
◆‘화법과 작문’ ‘확률과 통계’ 선택자도 증가세 = 올해는 탐구뿐 아니라 국어 수학 영역에서도 변화가 두드러진다. 선택형 수능에서는 상위권 학생이 많이 선택하는 과목이 공통 과목의 평균이 높게 나오면 표준점수가 유리하다. 따라서 타 과목에 비해 공부량이 많고 학업 부담이 높지만 ‘언어와 매체’ ‘미적분’에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3월 학평에서는 국어는 ‘언어와 매체’, 수학은 ‘미적분’의 응시자 수가 각각 줄고 ‘화법과 작문’ ‘확률과 통계’는 응시자 수가 증가했다. 2024년 3월 학평과 비교하면 ‘화법과 작문’은 응시자 수가 3만명가량 늘면서 비율이 62.62%에서 66.24%로, ‘확률과 통계’는 3만6000명 정도 늘면서 53.86%에서 59.52%로 증가했다. 올해 고3 학생 수가 3만명가량 증가한 걸 고려해도 의미 있는 수치다. 오창욱 광주 대동고 교사는 “수능에서 지정 과목이 폐지된 데다 과목 간 표준점수 차이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2024~2025학년 수능 선택 과목별 만점자 표준점수를 비교하면 2024학년에는 ‘미적분’은 148, ‘확률과 통계’는 137로 11점 차이가 났지만 2025학년에는 ‘미적분’ 140, ‘확률과 통계’ 135로 차이가 크게 줄었다. 국어는 ‘언어와 매체’가 ‘화법과 작문’보다 2024학년 4점, 2025학년 3점 높았다.
정 교사는 “현재 선택 과목은 주요 대학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아닌 3~4등급 이하 수험생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고 덧붙인다.
이효종 서울 서문여고 교사는 “현 고3 학생들은 학업 역량이나 진로를 고려해 계열을 선택했다기보다 자연계열이 대입에서 유리하다는 분위기에 따라 과학 위주로 과목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과탐에서 사탐으로의 이동, ‘언어와 매체’에서 ‘화법과 작문’으로의 이동은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언어와 매체’는 공부량이 많아 초반에는 ‘언어와 매체’를 공부하다가 수능이 가까워지면 ‘화법과 작문’으로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 고3 학평에서도 3월은 ‘화법과 작문’ 응시자가 62.62%였지만 10월엔 64.49%로 증가했다. 정 교사는 “수학은 타 영역에 비해 선택 과목의 증감 폭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학교 수업, 진로·적성 중심으로 과목 선택 뚜렷 = 2026 대입의 수시와 정시 비율은 79.9%, 20.1%이다. 물론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보면 정시 비율이 34.6%로 높지만 여전히 수시 비율이 상당하다. 따라서 고교에선 수시, 즉 교과전형과 종합전형 중심으로 교과목을 편성한다.
진수환 강원 강릉명륜고 교사는 “학생들이 수능 선택 과목은 가산점, 인원, 최저 기준 충족을 위한 등급 수월성, 표준점수의 유불리 등을 살피지만 내신 과목은 수시 중심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강권일 제주 삼성여고 교사는 “지역, 고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범한 지역 일반고의 경우 1학년 때 수학·과학 교과를 많이 어려워한다”고 밝혔다.
일부 고교에서 고2~3학년 선택 과목과 인원을 조사한 결과 고교로 차이는 있지만 자연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물리학Ⅰ’ ‘화학Ⅰ’ ‘생명과학Ⅰ’의 선택 비율이 높았다. A고의 현 고3 학생들의 고2 때 선택 과목 현황을 살펴보면 427명 중 ‘물리학Ⅰ’ 선택자는 223명(52.2%), ‘화학Ⅰ’ 266명(62.3%), ‘생명과학Ⅰ’ 288명(67.4%), ‘지구과학Ⅰ’ 151명(35.4%)이었다. 고3 때 배우는 ‘과학Ⅱ’는 ‘물리학Ⅱ’ 112명, ‘화학Ⅱ’ 141명, ‘생명과학Ⅱ’ 208명, ‘지구과학Ⅱ’ 78명이 선택했다.
A고 교사는 “현재 고3의 과목 선택 비율은 올해 2월 졸업생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전했다.
B고의 고3의 선택 과목 현황을 살펴보면 고2 때 ‘물리학Ⅰ’ 76명(40.6%), ‘화학Ⅰ’ 81명(43.3%), ‘생명과학Ⅰ’ 99명(52.9%), ‘지구과학Ⅰ’ 94명(50.3%)이 선택했다. 고3 때 배우는 ‘물리학Ⅱ’는 38명(20.7%), ‘화학Ⅱ’ 51명(27.3%), ‘생명과학Ⅱ’ 36명(19.3%), ‘지구과학Ⅱ’는 31명(16.6%)이 선택했다. 고2의 선택 과목 비율과 비교하면 ‘물리학Ⅰ’ ‘화학Ⅰ’ ‘생명과학Ⅰ’은 소폭 줄었고 ‘지구과학Ⅰ’은 소폭 늘었다. 반면 사회 과목은 전체적으로 선택자가 늘었다.
C고 역시 고2~3의 2학년 과목 선택 현황이 비슷하다. 현재 고2 ‘물리학Ⅰ’은 106명, ‘화학Ⅰ’ 119명, ‘생명과학Ⅰ’ 125명, ‘지구과학Ⅰ’ 27명이 선택했다. 비율로 따지면 ‘화학Ⅰ’이 62.0%로 가장 높고 ‘지구과학Ⅰ’이 14.1%로 가장 낮다.
일선 교사들은 “수능에선 ‘지구과학Ⅰ’의 선택 비율이 높지만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물리학Ⅰ’ ‘화학Ⅰ’ ‘생명과학Ⅰ’은 여전히 높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선택형 수능 초기에는 ‘미적분’과 ‘확률과 통계’ 중 1과목을 선택해야 하는 고교가 많았다. 자연계열을 희망하는 학생은 ‘미적분’, 인문계열 희망자는 ‘확률과 통계’를 선택했다. 선택형 수능을 고려해 자연계열 학생들의 수학 부담을 줄여주려는 의도였으나 수시를 준비하는 경우 ‘확률과 통계’를 배우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교사는 “대학들이 계열이나 전공별 권장 교과목을 발표한 것도 고교 교육과정이나 과목 선택에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오 교사도 “고3은 ‘미적분’과 ‘확률과 통계’ 중 1과목을 선택하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했지만 고2는 두 과목 모두 선택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고 전했다.
◆과목 선택 시 등급 고려 안 할 수 없어 = 교육과정에서 국어 선택 과목은 다양하게 편성돼 있다. 고1 때 ‘국어’에서 문법을 배우기에 고2 때 ‘언어와 매체’, 고3 때 ‘화법과 작문’을 편성하거나 고3 때 ‘언어와 매체’ ‘화법과 작문’을 함께 편성하기도 한다.
오 교사는 “함께 편성된 과목이나 선택 폭에 따라 학생들의 과목 선택이 달라지지만 수능과 마찬가지로 고교에서도 ‘언어와 매체’는 상위권의 선택 비율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사회 교과는 고2~3에 분산해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대체로 학생들이 수능 때 이수하는 ‘사회·문화’는 고3에 편성하는 분위기다.
이 교사는 “사실 과학Ⅱ 수업은 쉽지 않다”고 전했다.
보통 과학 교과 위주로 선택하면 고1 때 배우는 ‘공통사회’ 외에 사회 교과 1과목을 더 이수해야 한다. 사회 교과 위주로 선택하는 경우에도 반대로 ‘공통과학’외에 과학 교과 1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이런 경우 학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회 교과에선 ‘여행지리’ ‘사회문제탐구’, 과학 교과에서는 ‘생활과 과학’ 등을 주로 선택했다. 사탐런 이슈와 함께 진로선택 과목 대신 일반선택 과목인 ‘사회·문화’를 선택하는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는 분위기다.
◆수능과 교육과정의 불일치, 해법 없나 = 수능(모의고사)과 교육과정 선택 과목의 불일치는 계속 제기되는 문제다. 특히 자연계열의 경우 지구과학과 관련성이 높은 전공은 적지만 수능에선 생명과학 또는 지구과학 선택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종합전형을 준비하는 경우 어려워도 물리학과 화학을 이수하지만 수능에선 고득점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 교사는 “재학생은 수능을 염두에 두고 학교 교과목을 선택하진 않는다”고 토로한다. 학교에서 배운 과목이 수능으로 이어져 수시 정시를 모두 대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 교육 제도에선 그럴 수 없다. 학생들은 어떤 선택이 옳은지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과목을 선택했다면 주위를 돌아보기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김기수 기자·민경순 내일교육 리포터 hellel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