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극복 비전 실종…리스크만 부각될 판
대선 27일 남았는데 주자들 위기 극복 비전 내놓을 여유 없어
보수, 탄핵·분열 리스크에 휘청 … 이재명, 재판 리스크 곤혹
6.3 대선이 불과 27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보들이 제시하는 대한민국의 비전은 잘 들리지 않는다. 범보수 진영 주자들은 ‘1호 공약’이 뭔지도 알기 어려운 형편이다. 대신 후보들이 휩싸인 온갖 리스크만 부각되고 있다. 통상 대통령선거는 후보들이 제시하는 대한민국 비전을 살펴보고 표를 던지는 ‘전망 투표’로 불린다. 6.3 대선은 자칫 비전은 실종되고, 리스크만 부각되는 선거로 전락할 위기라는 지적이다.
◆대선, ‘전망 투표’로 불려 = 정치권에서는 흔히 대통령 임기 중반에 실시되는 총선은 ‘회고 투표’로, 대통령이 교체되는 대선은 ‘전망 투표’로 부른다. ‘회고 투표’는 유권자들이 총선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로 인식하고 투표한다는 뜻이다. 정권이 잘했으면 표를 주지만, 잘못했으면 야당을 선호하는 식이다. ‘전망 투표’는 유권자들이 대선을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로 본다는 주장이다. 더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를 고르려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대선도 ‘회고 투표’ 성격이 완전히 배제되는 건 아니지만 주요 주자들의 선거 캠페인에 따라 그 영향력이 엇갈리기 마련이다. 주요 주자들이 비전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면 ‘전망 투표’ 성격이 좀 더 강화되는 식이다.
6.3 대선은 미국 관세발 경제침체 위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실시되면서 후보들이 어떤 위기 극복 비전을 제시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외환위기가 터지자 여야 주자들이 앞다퉈 위기 극복 방안을 제시했던 전례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범보수 진영 입장에서는 ‘윤석열 탄핵’으로 인해 실시되는 대선인 만큼 ‘회고 투표’ 흐름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후보들이 제시할 비전에 따라 ‘전망 투표’ 성격이 강화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관측이다.
◆리스크 대응에 정신 팔려 = 하지만 실제 주자들이 비전 제시는커녕 온갖 리스크에 허덕이면서 ‘전망 투표’는 성사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주자들이 리스크 대응에 정신이 팔려 설득력 있는 위기 극복 비전을 세우고 이를 설득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주요 주자들의 비전을 변별할 기회를 애당초 박탈당하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3일 전당대회를 통해 김문수 후보를 선출했다. 김 후보는 대표적인 ‘반탄(탄핵 반대)’ 후보다. 김 후보가 선출되면서 국민의힘은 ‘탄핵의 강’을 건너기 어렵게 됐다. 반을 훌쩍 넘는 탄핵 찬성 여론에 맞서는 꼴이 된 것이다.
김 후보와 한덕수 전 총리와의 범보수 진영 후보 단일화도 여의치 않은 모습이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친윤(윤석열)은 11일(후보 등록일) 이전 단일화를 통해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 맞서는 전략을 구상했지만, 김 후보가 “대선후보까지 끌어내리려 한다”고 반발하면서 단일화 논의가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후보와 한 전 총리가 7일 오후 첫 회동을 갖지만, 만약 이 회동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최악의 경우 범보수 후보들이 제각각 출마하는 ‘분열 리스크’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세론을 탄 이재명 민주당 후보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재판 리스크 때문이다. 대법원이 이 후보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 파기환송하면서 이 후보는 오는 15일 고등법원 공판을 앞두고 있다. 비전 제시에 집중해야 할 이 후보가 ‘재판 리스크’에 발목 잡혀 전력 분산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