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대개조를 시작한다 ②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4년 임기 대통령·국회의원 동시 선출하자”

2025-05-08 13:00:16 게재

‘대통령 권력집중’은 현행 헌법이 가진 본질적·구조적 문제

‘의회독재’ 비판은 어불성설 … 대통령이 독자권한 더 많아

미 레이건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서 ‘견제와 균형’ 보여줘

대통령 중임제·분권형 정부 등 개헌안은 진지한 고민 필요

12.3 내란 사태로 이후로 정치권에서는 ‘개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자당의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후보들은 앞다퉈 자신의 ‘임기 단축’을 내건 개헌을 거론하며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도 3년 임기 단축을 내세우며 대선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개헌 논의에 대해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1987년 개헌은 직선제를 향한 국민의 열망에서 비롯됐지만, 일반적으로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개헌 논의들은 정치 싸움에서 시작된 것이지, 논리적인 산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진 이의종

그럼에도 두번째 탄핵 대통령이 나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피의자로 전락하는 등 대통령의 비극이 반복되면서 대통령제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과연 시스템이 문제일까,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일까.

이 교수는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된 현행 헌법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연임제나 분권형 정부가 정답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신 5년 임기의 대통령 임기를 국회의원 임기와 동일하게 4년으로 하고, 대선과 총선을 같이 실시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국회의원 선거가 대선과 같이 진행되면 정부와 여당이 동시에 평가 받을 수 있고, 대선에서 나타나는 정치권의 충성 경쟁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이 교수는 또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경험과 20대 국회에서 의정활동 등에 비춰 당내 소신파 존립을 위협하는 정당 공천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대통령제와 어울리지 않는 총리제도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30일 내일신문은 이 교수를 만나 ‘헌법 개정’ 이슈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1987년 헌법이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가 있다.

대통령제가 갖고 있는 대통령 권력 집중 현상 때문인데, 사실 그건 대통령제의 본질적인 문제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우리나라가 더 심하게 돼 있다. 대통령이 권력의 인격화, 권력의 의인화 되면서 그런 지적이 계속 나오게 됐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 미국이 아시아 국가 중 한국과 필리핀에 민주국가를 만들었는데 두 나라 모두 1960~1970년대 완전히 독재국가가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대통령제는 미국 외에는 성공할 수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

그랬다가 필리핀에서는 마르코스가 무너지면서 정권 교체가 됐고 우리나라도 1987년 이후에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거치면서 평화적으로 정권 교체가 되면서 대통령제가 자리를 잡았다. 이건 대단한 것이다. 그 영향으로 1990년대에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의원내각제보다 대통령제를 선택했다는 연구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쫓겨나고 감옥 가고 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졌다. 권한이 집중돼 있는 대통령 자리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을 없애기 위해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온다.

근본적으로 중임제를 못해서 대통령제가 망가진 것은 아니다. 솔직히 중임제를 하면 더 형편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두 번째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만큼 창피한 게 없지 않나. 그래서 취임부터 연임을 향해 달리게 된다. 회사도 대표가 연임이 걸려 있으면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단기적으로 업적을 내는 데 집중하게 되지 않나. 대통령이 연임을 하게 되면 단순히 기간이 더 길어지는 게 아니라 나쁜 걸 두 번 하는 게 될 수 있다.

미국도 연임하려고 첫 임기에만 집중하고 두 번째 임기에는 보잘 것 없는 성과를 보인 대통령들이 있었다.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 때문에 국가 경제가 안 좋았다. 경제가 안 좋으면 재정 건전성을 챙겨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재선이 어려워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히려 금리를 낮추고, 금태환 중지 조치를 시행했다. 그렇게 재선에는 성공했는데 결과적으로 경제는 더 나빠졌다.

루스벨트 대통령도 뉴딜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재선에서도 압도적으로 당선이 됐는데 두 번째 임기 때 경제 회복이 되지 않았다.

●중임제와 함께 분권형 정부 도입에 대한 의견도 나온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뽑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순수 의원내각제(다수당에서 선출된 총리가 국정을 운영하는 형태)는 그게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

그 중간 형태로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과 의회 다수 세력이 내각을 구성하는 정부를 분권형 정부라고 부르는데 오스트리아나 핀란드가 그런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대통령제인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의회의 다수당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정권 12년간 예산권을 갖고 있는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다. 그때 레이건과 부시 대통령은 의회와 협력해 국정을 원만하게 운영했다. 대통령제 하에서 ‘견제와 균형’이 잘 작동한 것이다. 결국은 제도보다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독주를 막고 권력을 분산하자는 취지로 책임총리제를 도입하자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국무총리를 없애야 한다고 본다. 책임총리가 일을 다하면 대통령은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총리는 사실상 대통령 책임을 대신 지기 위한 방탄용으로 활용된 경우가 더 많았다.

총리제를 없애버리고 대통령이 직접 관계 장관들과 수시로 국정을 논하는 게 맞다. 지금은 온갖 부처에서 온 비서관이 청와대에 모여 있고, 수석이니 뭐니 하면서 완전히 ‘청와대 정부’가 돼 있다.

그러다 보니 계엄 같은 것들이 이렇게 터지는 것 아니겠나. 굉장히 병적인, 비정상적인 정부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했으면 그 부처 인사를 장관이 직접 하도록 해야 한다. 장관은 그저 청와대에서 결정한 걸 받아서 수행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는 한 팀이 돼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윤석열 정부도 다수당이 야당이었는데 야당의 입법에 대해 ‘의회독재’라고 비판했다.

의회독재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의회독재라는 것은 다수결로 결정했다는 건데, 그에 비해서 대통령은 군사권 등 의회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문제는 의회가 당에 예속이 돼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국회의원 개개인은 헌법상 헌법기관으로 있다. 당론을 따르기보다는 의원들보다 소신파 의원들이 있어야만 성취가 있을 텐데 그런 게 다 사라져버렸다. 당내 비주류라든가, 쇄신파가 다 소외됐다. 이게 다 공천제도 때문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개혁도 필요하다.

●개헌을 하면서 대선을 총선이나 지선 일정에 맞추자는 의견도 제기된다.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같은 날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를 하루에 같이 하면 국회의원들이 본인 선거에 신경 써야 되기 때문에 대선이 과열되지 않을 것이다.

2007년 대선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고 그 이듬해 4월에 총선이 있었다. 이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먼저 치러진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생사를 걸고 선거 운동에 나섰다. 실제 논공행상 격으로 이른바 친이 정치인들이 대거 공천을 받았다.

반대로 2012년에는 총선이 먼저 있고 대선이 나중에 있었다. 4월 총선에서 국회의원들이 먼저 당선이 되고 나니 12월에 있는 대통령 선거는 2007년 대선 때처럼 과열 양상이나 충성 경쟁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선하고 총선을 같이 하는 게 대통령 선거의 과열을 줄일 것이다. 대신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하면 의원내각제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4년 후에 정부와 의회가 함께 심판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지방선거를 통해서 중간 평가를 하고 보궐 선거가 있으면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개헌 요구 중 국민소환제, 국민입안제 도입 의견도 있다.

국회의원이 개혁을 얘기하면서 국민입안제, 국민소환제를 얘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국회의원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건 국회 스스로가 국회의 권위와 대의 정치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가 국민입안제를 도입했다가 통과된 유명한 법이 있는데 바로 ‘재산세 인상 불가’법이다. 직접민주주의 개혁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헌법에 국민입안제가 들어갔는데 이게 포퓰리즘 쪽으로 악용되면 위험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지금 직접민주주의 포퓰리즘에 너무 경도돼 있다. 영국의 의회 정치라는 것은 대표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의원들이 중의를 모으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보편적인 형태를 따라야지 특이한 그런 흐름에 쓸려다녀서는 안 된다.

●이상돈 교수는 누구

이 교수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열린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참의원(상원)에 당선된 춘곡 고희동 선생의 외손자다. 외조부 영향으로 일찍부터 정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접한 그는 학창시절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을 겪었다.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툴레인대학과 마이애미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1983년부터 30년 동안 중앙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며 헌법, 환경법을 연구하며 가르쳤다.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총선과 대선 과정에 참여했으며, 국민의당 창당 후에는 당내에서 ‘미스터 쓴소리’로 역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국민의당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입성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4대강 사업의 폐단을 고발하고 영양 풍력단지,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 문제를 지적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의정활동이 끝난 이후 이 교수는 교단으로 돌아가지 않고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합리적 보수로 평가받는 이 교수는 정치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해 지금도 칼럼과 인터뷰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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