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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한국의 극단주의자는 누구인가

2025-05-09 13:00:05 게재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이 있은 후 우리 사회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극단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언론에 나온 것만 봐도 2025년 2월 9일자 경향신문의 ‘극단주의 시대’, 2025년 4월 19일자 한국일보의 ‘어떤 사람들이 극단주의에 쉽게 빠질까’, 2025년 4월 10일 전주MBC의 ‘캠퍼스에서 목격한 극단주의’ 등 여럿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극단주의’라는 단어는 아직 낯설다. 작년 12월 이전까지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한국 정치나 사회에 영향력이 큰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평범한 시민들의 가시권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를 민주주의 헌법에 따라 함께 지키고 유지해 나가기 위해 우리사회 내의 ‘극단주의’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 되었다.

오늘은 최근 진행된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우리 사회 내 극단주의자들이 누구인지,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나는 극단주의자일까? 아닐까?

최근 극단주의(extremism)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전에는 극단주의를 ‘사회적 통념에서 심하게 먼 상태’ 정도로 정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극단주의가 민주주의 정치공동체에 여러 문제를 일으키면서 민주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극단주의를 재정의하려는 시도들이 활발하다.

호주정부는 극단주의를 ‘이념적 종교적 또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폭력을 지지하거나 사용하는 사람들의 신념과 행동’으로 정의하고, 독일정부는 ‘민주적 헌법 국가와 그 기본 가치 규범 법률을 거부하는 의도’라고 정의한다. 영국정부는 ‘타인의 기본권과 자유를 침해하거나 자유주의적 의회민주주의를 전복하려고 폭력과 증오, 불관용에 근거한 이념을 촉진하거나 발전시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최근 한 연구는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자들이 개발했던 극단주의자 측정 지표들을 종합해 새로운 설문항을 만든 다음 독일, 영국 네덜란드 시민 6000여명에 대한 검증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Sebastian Jungkunz, Marc Helbling, Nina Osenbrugge, 2024)

아래 5가지 '극단주의자 태도 측정 문항질문'이 그것이다.

△정부 지도자는 시민들과 협의하지 않고 혼자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낫다. △공직자는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지라도 공권력 행사를 우선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비민주적인 정부가 바람직할 수 있다. △한사람이나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국가의 질서를 보장하는 데 더 낫다. △정부는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이나 매체를 폐쇄해야 한다.

위 질문은 민주주의의 기본 정의에 해당하는 주요 내용을 부정적인 진술로 바꾸고, 응답자들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을 조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위 진술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일수록 극단주의자로 분류된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2025년, 한국의 극단주의자는 누구?

최근 국내 한 단체에서도 위 질문을 사용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기후정치바람’이 전국 18세 이상 시민 4482명을 대상으로 2025년 4월 7일부터 4월 14일까지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5%)

이 조사에서는 각 진술에 대한 의견을 매우 반대한다(1점)부터 보통(4점), 매우 찬성한다(7점)까지 표시하도록 한 것이다. 이 중 ‘찬성한다(5~7점)’를 비율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어떤 상황에서는 비민주적인 정부가 바람직할 수 있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의견은 전체 응답자 중 19.1%였다. 찬성 의견이 높은 순으로 보면 18~29세 남성 29.8%, 30대 남성 26.9%, 60대 남성 23.9%, 70대 이상 남성 22.7%였다.<그림> ‘정부는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이나 매체를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 중 11.1%가 찬성했다. 찬성 의견은 30대 남성 16.0%, 18~29세 남성 13.8%, 70대 이상 여성 13.0%, 70대 이상 남성 12.2% 순으로 높았다.

이 2가지 항목 외에 나머지 3가지 주장에 대해서도 39세 이하 남성들의 찬성 비율은 60대 이상 남성 비율보다 높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확인되었다.

젊은 남성들은 왜?

2020년대 들어서서 어느 즈음부터 ‘젊은 남성들이 보수화되었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고 선거 때 표심이나 여론조사기관의 정기 여론조사 정당 지지도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사실 젊은 남성들의 보수화 경향은 비단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니다. 2024년 3월 13일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이코노미스트지(The Economist) 기사에서는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 기사는 유럽과 미국 한국의 사회조사데이터들을 시계열적으로 분석한 결과 20년 전만 해도 18~29세 남녀 사이에 진보 보수 이념 차이가 유의미하지 않았는데 2000년대 이후 그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으며 여성은 점점 더 진보적으로 남성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기사는 그 원인으로 교육, 성차별에 대한 경험적 인식, SNS나 유튜브 매체에 의한 반향실(echo chamber)효과를 짚었다. 선진 20개국을 기준으로 여성의 대학 이상 학위 소지자가 남성을 능가해서 교육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 대학 학위 이상 소지자들일수록 자유주의나 평등주의 성향이 더 높고 그것이 남녀의 정치 성향 차이를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또한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도 분석 대상 국가 남성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는데 ‘여성과의 경쟁을 자신의 인생 앞날에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남성 청년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발견된다고 한다. 여기에 SNS나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이런 인식이 반향실 효과를 일으키면서 더욱 증폭된다는 것이다.

2025년 3월 국가통계연구원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생 이후 여성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남성을 추월했고 시간이 갈수록 그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고 한다. 1980~1984년생의 대학 졸업 이상 학력층의 비율은 남성이 69.4%, 여성이 72.1%였고 1985~1989년생의 경우 남성이 72.2%, 여성이 77.3%였다. 1990~1994년생 연령층에서는 여성의 대학 졸업 비율이 78.5%인데 반해 남성은 65.3%였다. 대학원 진학 비율도 1980년대생을 기점으로 여성이 남성을 앞섰다.(국가통계연구원, ‘생애과정 이행에 대한 코호트별 비교 연구: 교육·취업’)

하지만 앞에서 보여준 2025년 4월 조사결과는 보수화의 문제가 아니라 극단주의화의 문제인 만큼 차원이 다르다. 민주주의 체제를 신뢰하지 않거나 언론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헌법 규범을 수용하는가 아닌가 차원의 문제다.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젊은 남성들 중 70대 이상 고령층보다 더 높은 극단주의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결과는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지금 우리는 ‘12.3 위헌·불법계엄 선포 사태 이후 민주주의 위기의 순간을 지나고 있으며 6월 3일 대통령선거로 새 정부를 구성하더라도 향후 민주주의 재건의 긴 시간을 함께 지나야 한다.

다음 정부와 정치권은 시민들 사이에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회복과 효능감 제고를 위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시민들도 민주주의를 더 풍부하게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극단주의적 인식에 대해 소통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