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다시 대통령 자격을 묻는다
6.3 대선을 20여일 앞둔 지금 비상식적인 변수들이 판을 흔들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공판 일정을 대선 이후로 미루면서 한발 물러섰지만, 대법원의 이례적인 광속판결 여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단일화를 놓고 버티는 김문수 후보와 밀어붙이려는 당 지도부가 감정 섞인 언사까지 주고받으며 진흙탕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선을 눈앞에 두고 대법원이 스스로 정치 한복판에 끼어든 것도 비정상적이지만, 내란정권의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전당대회를 통해 후보를 뽑아놓고는 바로 들러리로 만들려는 국민의힘 행태도 도무지 상식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비상식이 판을 치는 세상이기로서니 국가 지도자를 뽑는 대선이 이래도 되나 싶다.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에 대한 대답 듣지 못해
윤석열의 12.3 불법계엄 이후 주권자들은 대통령의 자격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대한민국을 이끌 리더십은 어떠해야 하는지, 대망을 꿈꾸는 당신들은 정말 그런 자격이 있는지를. 대세후보의 사법리스크가 어떻게 작동할지, 국민의힘의 이전투구는 또 어떻게 귀결될지, 그렇게 단일화를 한들 시너지 효과는 있을지 등 새로운 변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도 유권자들 다수가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것은 아마 이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한덕수 후보는 출마의 변에서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이 모셨던 윤석열이 위헌·불법적인 내란사태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가뜨릴 때 그가 한 일이라고는 “국무회의라도 열어 절차를 갖추라”는 조언이 전부였다. 정말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때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았어야 하지 않았던가. 그런 결기도 없으면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그의 셈법은 아무리 헤아려보려 해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언감생심 한 후보 자신은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지 모르겠지만 주권자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공당의 후보자리에 무임승차하려는 ‘파렴치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는 11일까지 단일화가 되지 않으면 후보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모셔가면 하겠지만 내 돈 쓰고는 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그런 이를 모시려고 안달이 난 국민의힘도 참 딱해 보인다. 진짜 “‘윤석열 아바타’를 출마시켜 탄핵대선을 윤석열 재신임투표로 만들려는 용산의 공작”(홍준표 전 후보)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다.
김문수 후보는 후보수락 연설에서 “체제를 부정하는 극단세력이 나라를 휘젓지 못하도록 하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굳건하게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더도 덜도 아닌 12.3 비상계엄 선포문 그대로다. 그런 망상에 꽂혀 계엄을 선포했다가 퇴출당한 윤석열의 생각을 복붙하면서 어떻게 대통령이 되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재명 후보는 후보수락 연설에서 “내란과 퇴행의 구시대를 청산하겠다”고 했다. 이번 대선은 “과거와 미래의 대결이자, 분열과 통합의 대결”이라고 했다. 이 후보 자신이 ‘미래’ ‘통합’ ‘희망’을 구현할 지도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가 정말 ‘통합’을 할 의지가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재명을 보면 윤석열이 보인다’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독단적인데다 폐쇄적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포비아’는 윤석열정권이 만든 악마화 프레임의 산물이 분명하지만 이 후보 스스로가 만든 측면도 상당하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이 된다고 장담처럼 “국민통합을 통해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우뚝 서게” 할 수 있을까. ‘글쎄올시다’이다.
지금 후보 중 ‘임중도원’의 큰 뜻 가진 인물이 있는지
일찍이 증자(曾子)는 지도자의 마음가짐과 관련해 “선비는 도량이 넓고 의지가 굳세지 않으면 안된다.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論語 태백7)”라고 했다. 예로부터 군주들이 자주 인용하던 ‘임중도원’ 고사다. 이에 대해 주자(朱子)는 ‘너그럽지(弘) 않으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고, 굳세지(毅) 않으면 먼 곳에 이를 수 없다’고 주(註)를 달았다.
그럼 지금 후보들 중에 너그러우면서도 굳센 ‘임중도원’의 큰 뜻을 가진 이가 있나? 이 역시 ‘글쎄요’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다음 대통령이 잘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후보 면면을 보면 아직 기대난망이다.
이제 대선까지 남은 20여일. 아마 주권자들은 묻고 또 물을 것이다. 당신이 대통령 자격이 있느냐고. 이제라도 후보들은 여기에 답해야 한다. 그게 주권자에 대한 예의다.
남봉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