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 주민들 ‘나를 위한 밥상’ 함께 차린다

2025-05-12 13:00:15 게재

관악구 민간기관 손잡고 관계망 확대 주력

대학동 ‘이웃사랑방’ 비롯 동마다 특화사업

“엊그제 신부님 생신이라 다같이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그게 기억에 남네요.” “어제 관악으로 이사를 했거든요. 큰누나가 토마토수프를 해줬는데 정성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서울 관악구 대학동 한 주택가 골목. 관악사회복지에서 운영하는 ‘이웃사랑방’에 현은주 상임활동가와 인근 1인가구 주민들이 둘러앉아 따뜻한 차를 나누며 음식 이야기에 한창이다. 최근 1~2주간 식사 중 ‘나를 위로해 줬던 음식’을 떠올리며 서로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다. 박준희 구청장도 동참했다. 그는 “음식을 좋아해서 먹을 때마다 위로받는 느낌”이라면서도 “회를 좋아하는데 밥까지 더해진 초밥을 먹으면 행복감이 크다”고 말했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이 1인가구 주민들과 함께 요리에 앞서 최근 기분과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 사진 관악구 제공

음식 이야기에 앞서서는 발달장애인 작가 작품으로 만든 엽서를 활용해 ‘요즘 기분’과 ‘오늘 사랑방을 방문할 때의 마음’을 공유했다. 24장 가운데 자신의 기분과 마음을 잘 표현한 2장을 뽑아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어 간단한 카나페를 만들어 먹으며 농축산물 분리기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감자탕에 얽힌 이야기를 나눴다. 본격적으로 만들 음식이다.

12일 관악구에 따르면 ‘이웃사랑방’은 사회적으로 고립될 위험이 있는 주민 누구나 머무를 수 있는 공동체 공간이다.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 공모를 통해 지역에서 30년간 주민 지원활동을 해온 관악사회복지가 운영을 맡았다.

공동체 공간을 토대로 주민들이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과정을 운영하는 데 지난달 말 진행한 ‘나를 위한 음식 만들기’도 그 일환이다. 현은주 활동가가 재료 준비부터 조리법과 보관방법 설명을 맡았고 주민 활동가가 도우미로 참여했다. 현 활동가는 “혼자 사는 주민들은 자신을 위로할 필요가 있다”며 “나를 위해서는 공이 많이 들어가는, 이웃과는 간단히 만들어 나눌 수 있는 음식을 추천한다”고 설명했다.

혼자 오래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택한 게 감자탕이다. 주민들은 활동가들 도움으로 이웃사랑방에서 이른 저녁을 해결한 뒤 ‘2인분같은 1인분’을 포장해 갔다. 이어 이달 두번째 시간에는 샐러드와 케이크 등 이웃과 나눠 먹으면 좋은 음식을 조리한다. ‘삶을 재미있게 만드는 음식 이야기’도 곁들인다.

참가자들은 그간 ‘나를 위한 음식이 고팠다’고 털어놓는다. 난곡동 주민 안 모(37)씨는 “14년째 혼자 살고 있는데 회식이나 생일 명절 등 특별한 날이 아니면 배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낯설긴 한데 혼자서 해 먹기 힘든 음식은 가끔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보라매동 주민 신민후(28)씨는 “감자탕을 좋아하지만 자취하고 있어서 도구도 없고 시도를 하지 않았다”며 “공유주방을 더 자주 이용하고 싶다”고 전했다.

구는 공유주방 내 조리도구와 양념 등을 활용해 주민들이 이후에도 자유롭게 식사 준비를 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활동가들이 번갈아 상주하면서 조리과정을 도울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식구’ 경험을 한 주민들이 이웃을 위한 ‘서로 나눔 밥상’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대학동에 ‘이웃사랑방’이 있다면 은천동에는 중장년 1인가구를 위한 ‘은천마을 빨래터’가, 행운동에는 ‘행운목공방, 나무로 연결하는 마음’이, 신림동에는 ‘온기 담는 공방’이 있다. 21개 동 전체가 고립·은둔 중장년 노인 등 1인가구를 위한 생활밀착형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관악구는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1인가구 비율이 62.7%로 가장 높다”며 “민간과 손잡고 1인가구를 포함해 주민 누구도 외롭지 않은 포용도시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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