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SK텔레콤 고객들이 화가 치미는 이유

2025-05-12 13:00:15 게재

국내 1위 이동통신사 SK텔레콤(SKT) 유영상 사장은 2021년 11월 취임하며 ‘고객·기술·서비스’를 3대 경영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러나 4월 18일 유심 해킹 사태 이후 SKT 어디에서도 고객·기술·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객만족 서비스는커녕 2500만 가입자들은 어떤 정보가 해커들 손에 넘어갔는지 몰라 불안해했다. 유심을 교체하기 위해 SKT 대리점과 공항 로밍센터 앞에서 긴 줄을 서야 했다. ‘모든 고객의 유심을 무료로 교체해주겠다’는 약속과 달리 유심 물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일부 기업이 답답했는지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자기 돈을 들여 임원들 휴대폰 유심칩을 바꿔줬다. 해킹 사태 이후 30만명의 SKT 가입자들이 KT와 LG유플러스로 옮아갔다. 갈아타고 싶은데 위약금을 물어야 해서 망설이는 고객들이 많을 게다. 잘못은 기업이 저질렀는데, 피해는 고객이 보는 현실이다.

국내에서 이동통신 서비스가 본격 개시된 1988년 이후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크게 세 차례 있었다. 2012년 KT에서 870만명, 2014년 또다시 KT에서 1200만명, 2023년 LG유플러스에서 30만명의 정보가 탈취됐다. 당시 해커들은 주로 이름과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 등을 빼내갔다.

이번 SKT 해킹 사태는 성격이 다르다. 고유 식별변호와 네트워크 연결을 위한 킷값 등이 담긴 유심 정보 자체가 빠져나갔다. 해커 등 제3자가 유심 정보를 입수하면 가입자 몰래 대포폰(복제폰)을 개설해 범죄에 이용할 수 있다. 해킹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2차 피해가 훨씬 심각하다.

기업 잘못에 왜 고객이 피해 보나

어쩌다 SKT에서 유심 해킹 사태가 터졌을까. 회사측은 모르겠다지만, 국회 청문회에서 일단의 문제가 드러났다. 이동통신 3사 중 SKT만 유일하게 유심 인증키를 암호화하지 않았다. 유출 경로가 된 SKT의 주요 시스템에 악성 프로그램 방지를 위한 백신이 설치되지 않았다. 유심 인증키 암호화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려는 꼼수가 작용하고 개인정보 보안과 관리 의식도 부족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SKT는 귀책사유를 인정하면서도 가입자의 해약 위약금 면제는 못해주겠다고 버틴다. 위약금을 면제하면 월 최대 450만~500만명이 이동하고, 위약금과 매출을 합쳐 3년간 7조원 이상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이 날 것이라고 엄살을 떨었다. 이용자간 형평성 문제와 사회 전반의 신뢰, 시장 질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변했다.

기업이든, 정부든 때로 실수와 잘못을 한다.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진정성있는 사과와 신속하고 투명한 대처다. 사태 초기에 최고책임자가 직접 나서 피해자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구체적인 사후 조치와 재발 방지 대책이 실행되어야 한다.

사과의 시기나 진정성, 후속 조치 측면에서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존슨의 제임스 버크 회장의 위기관리가 모범사례로 꼽힌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누군가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넣어 7명이 숨졌다. 진상 조사에 착수한 미 식품의약국(FDA)은 시카고 지역의 타이레놀을 수거하라고 권고했다.

제약사의 관리 소홀이 아닌 정신이상자의 범죄행위였는데도 버크 회장이 나서 책임지겠다며 사과했다. 피해자 유가족에게 위로편지를 보냈다. TV에 출연해 상황을 설명했다. 신문과 옥외에 타이레놀을 구입하지 말라고 광고했다.

주주와 재무팀 반대를 무릅쓰고 시카고만이 아닌 미국 전역에서 타이레놀 3100만병을 회수했다. 2억4000만달러의 손실과 시장점유율 하락을 감수했다. 약품도 병에 넣어 팔던 것을 쉽게 뜯기지 않고 이물질 투입이 불가능한 3중 봉합 포장으로 바꿨다. 이를 계기로 존슨앤존슨은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타이레놀은 점유율 1위 제품으로 우뚝 섰다.

이와 달리 SKT는 해킹사고 나흘 뒤에야 고객에게 알렸다. 열흘 뒤부터 유심 교체에 나섰지만 물량이 부족해 혼란을 키웠다. 유영상 사장이 7일 뒤, 최태원 SK 회장이 19일 뒤에 대국민 사과했고, 회사가 약속한 사후 조치도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1위 통신사’ 걸맞은 위기관리 보여야

SK그룹이 어떤 회사인가? 교복과 카세트테이프, 자전거를 만들던 기업(옛 선경)이 정유(1980년)·증권(1992년)·이동통신(1994년) 업체를 인수해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 정경유착 의혹을 받기도 했다. SKT는 1984년 카폰과 삐삐 서비스로 출발한 한국이동통신이 전신으로 올해 창립 41주년이다.

SKT는 ‘스피드 011’ 브랜드로 1996년 세계 최초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상용화에 기여했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와 함께 한국 응원문화를 새로 썼다. 해킹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늦었다고 깨달았을 때가 가장 이른 시점이다. 이제라도 ‘고객·기술·서비스’ 정신으로 재무장해 고객 불안을 잠재우고 기업 신뢰를 회복하길 기대한다.

가천대 겸임교수

경제저널리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