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환율 후속 실무협의 착수, 미국의 속셈은?
‘원화 가치 절상’ 의제 삼을 가능성, 5월 예정 ‘미국 환율보고서’로 압박?
“대미 수출증가는 환율조작과 무관” … 환율 거론하며 다른 분야 양보 얻나
한미 양국이 ‘2+2 통상 협의’의 후속 조치로 환율 협의를 시작했다.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 개선을 위해 원화 가치 절상(환율 하락)이 이뤄질 수 있는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을 펴오지 않았고, 개입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환율협의를 지렛대 삼아 다른 통상 분야에서 양보를 얻어내려는 속셈이란 관측도 나온다.
12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미 재무부와 환율 관련 실무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확인했다.
앞서 한미 재무·통상 장관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진행한 ‘2+2 협의’에서 △관세·비관세 △경제안보 △투자협력과 함께 환율을 공식의제로 결정했다.
◆통상협상에 환율 거론하는 미국 = 미국이 통상협상을 하면서 환율 문제를 끌어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결과 보도자료에서 “경쟁적 평가절하와 환율조작을 금지하는 확고한 조항에 대한 합의(양해각서)가 마무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기재부는 “한미 FTA 협상과 환율 협의는 전혀 별개”라며 미국 정부에 항의했다. 이후 환율에 대한 별도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실무협의에선 환율이 공식 의제가 된 만큼 미국이 환율 문제를 더 공세적으로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달 중 발간할 예정인 주요 교역상대국에 대한 ‘환율 보고서’를 배경으로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한국을 2회 연속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을 상대로 150억달러 이상의 무역 흑자와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 경상수지 흑자를 낸 국가는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된다.
하지만 정부는 대미 수출 증가가 환율조작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원화 가치 하락은 12·3 불법계엄 등 정치적 불확실성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등 대외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오히려 한국은 계엄 사태 이후 원화 가치 하락을 막으려고 해왔다. 일각에서는 국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까지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할 정도였다.
◆개입수단도 없는데 왜? = 이런 기류는 한국뿐만이 아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각국 관세협상에서 환율개입을 위한 언급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미국이 대만과 관세협상 중 절상 압박을 했다는 소식으로 대만달러 가치가 크게 오르기도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6일 아시아 통화 강세에 대해서 “미국이 개별 국가를 만나면서 환율 얘기를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환율에 개입할 수단이 많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미국이 다른 분야에서 한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카드로 환율을 활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한미 양국은 오는 15~16일 제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개별 회담을 갖고 ‘2차 한미 장관급 관세협상’에 나선다. 지난달 1차 고위급 회담 이후 실무급 협의를 통해 추린 세부 안건들을 조율한다.
미국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방한하고, 우리나라 측 대표는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유력하지만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직접 협상을 맡을 가능성도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