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견 칼럼
쓰고 싶은 데는 많으나 들어올 돈은?
6.3 대선은 ‘하나마나한 대선’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선후보 교체 파동이라는 전무후무한 친윤의 선상반란까지 일어났다가 당원들 반발로 진압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강원지사가 “보수는 우물 바닥까지 내려갔다. 우리를 꺼내줄 두레박은 없다. 거기서 장렬하게 죽겠다는 각오로 하자”고 토로할 정도로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패배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보수지 ‘조선일보’도 후보교체 파동을 질타한 뒤 “이재명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 발언을 인용해 ‘상대방이 자빠져. 그럼 이기는 거야’라고 했다. 이번 대선이 그런 모양새로 흘러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6.3 대선에 대한 관심은 이제 ‘이재명 민주당’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리고 있다. 집권후 정치역학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는 관심 밖이다. 그보다는 ‘이재명 시대’에 어떤 정책이 펼져질지 특히 경제정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는 물론 외국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그런 맥락에서 대선 공식운동이 시작된 12일 민주당이 발표한 10대 공약, 특히 경제관련 공약들이 주목받고 있다.
우선 집권하면 2차 추경 편성 등 대대적 경기부양을 예고했다. 2차 추경의 경우 이재명 후보 간판공약인 지역화폐 발행 등을 위해 20조~35조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추경은 2차에 그치지 않고 3차, 4차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위기의 소상공인에 대해선 코로나 부채 탕감을 비롯해 기존 대출의 저금리 전환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신성장 동력 확충을 위해 100조원 인공지능(AI) 투자, 첨단산업투자 감세, 첨단산업용 국민펀드 조성 등도 약속했다. 자영업 붕괴 위기, 주력산업 경쟁력 추락 등을 볼 때 나름 의미 있는 공약들이다.
민주당의 경제공약에 대내외 시선 쏠려
민주당은 이에 소요될 매머드 재원 조달 방식으로는 ‘정부재정 지출구조 조정과 2025~2030년 총수입증가분(잠정)’ 등을 제시하며 두루뭉술 넘어갔다. 경기부양과 첨단산업 투자로 현재 1%대로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3%로 끌어올리면 단기적으로 정부부채가 늘더라도 향후 법인세 등 세수가 늘어 큰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기에 몇가지 구멍이 있다. 우선 ‘트럼프 관세전쟁’이 초래한 충격이 최소 2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많은 국제투자은행들도 올해 한국 성장률이 0%대, 내년에도 1%대를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행히 미국과 중국이 상호관세를 대폭 낮추기로 하는 등 치킨게임을 피하기로 했으나 향후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G2 전쟁’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것이라는 게 다수 관측이다.
이럴 경우 새정부가 기대하는 법인세 등의 증가는 ‘기대난망’이다. 경쟁력이 하루아침에 회복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세수를 통한 재원조달에 제동이 걸리면 남는 길은 적자국채 발행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을 54.5%로 전망했다. 이는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비기축통화국 11개국의 평균치(54.3%)를 처음으로 넘어서는 것이다. 부채비율은 그후에도 빠르게 상승해 2030년에는 59.2%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큰 원인은 세계 최악의 저출산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다. 급속한 고령화의 영향으로 연금·건강보험 등 의무 지출이 급격히 확대되는 반면 생산인구 감소로 세수는 급감하는 구조적 악순환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고령화를 늦출 방법은 없다. 저출산을 고출산으로 전환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0명대 출산율을 단기간에 적정선인 1.2명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살인적 집값의 거품을 왕창 빼 청년층의 주거문제를 해결해주고, 고액 일자리가 쏟아지지 않는 한 기대난망이다. 하지만 AI시대가 열릴수록 일자리, 특히 고액 일자리는 빠르게 줄 것이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AI시대의 딜레마’다.
‘트럼프 리스크’뿐 아니라 ‘중국 리스크’도 치명적이다. 중국이 자급률을 높이면서 석유화학, 철강이 위기에 직면했다. 전체 수출의 40%이상 차지하던 중국시장이 사라졌으니 뾰족한 방법이 없다. 대기업들마다 이들 생산라인의 대규모 폐쇄 매각 감원 등 피 말리는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다.
여기에다가 경쟁력에서 중국에 밀린 이차전지 인공지능 로봇 등 신성장 산업의 앞날도 험난하기란 마찬가지다. 이밖에 트럼프 자동차관세 고수시 한국GM의 한국 철수로 대규모 실업사태가 우려되는 등 곳곳에 지뢰가 깔려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재정건전성 도외시 안돼
IMF사태 때 한국의 재정건전성을 극찬하던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는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6단계나 강등, 외환위기를 불러일으켰다. 30대 재벌중 16개가 쓰러졌고 알토란 같은 기업과 은행 등이 줄줄이 헐값에 서방으로 넘어갔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재정건전성을 도외시해선 안되는 이유다. 새정부도 마찬가지다. 또다시 ‘국가 사냥’을 당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