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누리 중앙대 교수
경쟁교육 아닌 창의·공감 능력 키우는 교육 필요
줄 세우기식 야만적 경쟁교육이 민주주의 훼손 … “서울대 독점 깨고 입시 폐지해야” 교육 패러다임 전환 주장
한국 교육은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가 제기하는 교육 혁명의 요구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 과제로 해석된다. 김 교수는 서열화된 대학 체제와 경쟁 위주 입시제도가 한국 교육의 근본적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시 개혁이 아닌 입시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 서열화가 단순한 교육 문제를 넘어 사회적 독재를 초래했다고 진단한다. 한 대학 출신이 사회 모든 영역의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으로, 이는 정치적 독재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초래한다고 분석한다.
김 교수는 한국 교육 개혁이 항상 입시 개혁으로 귀결되었으나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어떤 형태의 입시 개혁이 이루어지더라도 기득권층은 가장 빠르게 적응하며 결국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교육 개혁이 아닌 교육혁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의 교육혁명 주장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한국 사회가 직면한 근본적 문제를 환기하는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발전을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재구성이 필요하며 이는 정치적 용기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김 교수와 인터뷰는 4월 14일과 지난 12일 두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야만’에 빗대 화제가 됐다.
처음에는 ‘너무 과격한 표현’이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한데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로는 만나는 이마다 내 주장이 옳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12년 동안 공교육을 받으면 민주주의자가 되기보다는 파시스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을 끊임없이 경쟁시키고 끝없이 우열을 나누며 우월한 자가 지배하고 열등한 자가 복종하는 질서를 당연시하는 교실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새겨 넣는다. 체제에 순응하는 모범생, 성적이 뛰어난 엘리트일수록 ‘승자인 내가 부와 권력을 누리는 일은 정당하다’는 인식이 심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윤석열을 키운 건 이러한 극단적인 능력주의 경쟁교육이다. 그뿐만 아니다. 한국 사회의 꼭대기에 군림하고 있는 엘리트의 행태를 보라. 금방 들통날 거짓과 궤변, 허언을 서슴지 않으며 헌정사상 두번째 대통령 탄핵이란 비극이 발생했음에도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전무하지 않나.
●일각에서는 챗GPT와 딥시크로 대표되는 미국과 중국의 AI를 ‘경쟁교육의 성과’라 주장한다.
그 말이 옳다면 한국은 지금쯤 과학 기술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상당한 경지에 올라서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경쟁교육을 시킨다는 미국·중국과 비교해도 우리의 과열된 경쟁교육은 그보다 두 배 이상 강도가 높다. 학생을 경쟁시키지 않는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과거 일본은 경쟁교육을 대표하는 국가로 손꼽혔다. 이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교육의 본질, 즉 아이들의 재능을 발굴하는 방향으로 교육 목표를 선회했다.
결과는 어떤가? 일본은 기초과학·의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만 25명이다. 때문에 경쟁교육이 첨단 과학 기술의 핵심 동력이라고 단정하는 건 곤란하다. 해당 분야에 대한 국가 지원은 어떠한지, 인재 발굴 시스템은 어떻게 운영되며 어떤 교육이 이뤄지는지 등 다양한 요소를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전국의 아이들 50만명을 줄 세운 후 1등부터 3038등까지 의대에 보내는 나라가 정상인가? 의사는 학업 역량에 앞서 탁월한 공감 능력과 휴머니즘을 갖춘 이들이 투신해야 할 직업이다. 정말로 머리가 뛰어난 학생은 자연 과학 분야에 역량을 쏟도록 아낌없이 지원해 주는 게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방향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다. 줄 세우기 교육은 성실함으로 승부하던 산업화 초기에나 어울리는 구시대적 유물이다. 교육이 시대착오적이니 여전히 우리 아이들이 제일 잘하는 게 ‘모방’이지 않나. 누가 만들어놓은 걸 따라가기 급급할 뿐 창의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AI에 대체될 수 없는, 사유·창조·비판·공감 능력을 갖춘 융합형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으로 재편돼야 한다.
●교육 개혁 방향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대학 서열이 너무 강하고 그러다 보니 경쟁 교육이 계속된다. 대학의 서열 체제를 당장 완전히 없앨 수는 없으니 최소한 완화해야 한다. 서울대는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대가 모든 한국 사회 권력을 독점하고 있고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독재다. 정치적 독재보다 사회적 독재가 더 무섭다. 서울대의 이 독재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다. 한 대학 출신이 모든 걸 독점하는 이런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방안에 대한 견해는?
김종영 경희대학교 교수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첫단계로 의미가 있다. 지방 거점 국립대학을 전부 서울대 수준으로 지원해 지방에도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10개 만들겠다는 것이다. 최선의 길은 아니지만 첫단계로는 의미가 있다. 김 교수가 전국을 다니면서 강연도 많이 했다.
민주당에서도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받아들이겠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필요한 것이고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전체 국립대학을 네트워킹하고 모든 사립대학을 공립화하는 것이다. 사립대 공영화와 국립대 네트워킹은 20년 전부터 교육 개혁을 바라는 학자들이 주장해 왔다.
●사립대학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나?
지금 한국은 고등 교육의 87%를 사립대학 시장에 맡긴 나라다. 국공립대학이 13%밖에 안 된다. 국가가 고등 교육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한국은 대학 정책도 없고 학문 정책도 없다. 교육부라는 곳은 입시부다. 입시에만 관심 있다.
●입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한국에서 교육 개혁은 최종적으로 전부 입시 개혁으로 끝나는데, 이는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따라서 입시는 개혁의 대상이 아니고 폐지의 대상이다. 대학 입학 시험을 없애야 한다. 입시를 바꿔놓으면 기득권들이 제일 먼저 적응한다. 한국 교육 개혁의 역사는 입시 개혁의 역사이며 모든 입시 개혁은 기득권들이 승리하는 역사다. 이제 더 이상 그걸 해선 안 된다. 그래서 입시 폐지를 계속 주장해 오고 있다.
●입시 폐지 후 대안은?
대학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내 말이 몽상가가 하는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유럽에서는 입시 있는 나라가 없다. 독일은 고등학교 졸업 시험인 아비투어(Abitur)를 보고 90%가 붙는다. 프랑스는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도 90% 이상 합격한다. 유럽 대부분이다 그렇다. 고등 교육을 받겠다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어느 대학에 들어갔다는 게 그들에게 특권이 되지 않는다. 기회를 누구에게나 주니까. 그 대신 고등 교육을 마치고 나오는 것은 굉장히 엄격하게 한다. 선택의 기회를 충분히 열어주고 그 대신 그들이 획득하는 자격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통제한다.
●교육부 개혁 방안은?
교육부는 해체해야 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지역 자치로 돌려야 한다. 교육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지역 교육감들의 모임이 전체적인 통일성을 부여하는 형태로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한국에서 교육부가 한국 교육을 망쳐온 장본인이다.
문제는 의지다. 정책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 대한 의지가 없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이 교육 제도의 승자들이다. 자기들이 이 교육 제도를 통해 특권을 누리니 뭐가 잘못됐는지 전혀 느끼지 못한다. 교육 개혁이라는 표현 대신 교육혁명이라고 부른다. 이건 전쟁이다. 이 질서가 80년 동안 이루어진 질서다. 구조화된 기득권 그룹들의 저항이 오죽하겠는가? 그건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목숨 걸고 해야 한다.
●교육이 민주주의를 훼손했지만 교육이 다시 민주주의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 가장 뭉클했던 장면을 꼽으라면 남태령 시위다. 추운 날 밤 10시에 농민과 연대하겠다고 남태령으로 향한 수많은 청년이 있었다. ‘신한국인의 탄생’이었다. 그들 또한 우리 교육 제도가 어디선가 길러낸 결과다.
주류의 잘못된 교육에 저항하면서 아이들에게 올바름이 무엇인지 주지시킨 교사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우리는 지금껏 제대로 된 민주 시민 교육을 받지 못했다. 직접 투표한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되진 않는다는 의미다. 지금이라도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유사한 사태가 반복될 것이다. 교사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정치적인 논의를 할 수 있어야 학생에게도 건전한 민주 토론 문화를 전수할 수 있다.
당장 교육 개혁을 추진하기 어렵다면 우선 ‘선동가 판별 교육’을 도입·시행하면 된다. 독일의 수천년 역사에서 히틀러의 집권 기간은 12년에 불과하지만 학교에서는 이 시기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더 이상 히틀러 같은 선동가에게 휘둘려 참담한 역사를 쓰지 않도록 하는 데 사력을 다한다. 가짜 뉴스에 속지 않는,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기도 하다.
교실은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희망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연약한지 이번 12.3사태를 통해 모두가 목도하지 않았나.
김기수 기자·김한나 내일교육 리포터 k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