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2025-05-16 13:00:12 게재

픽사의 비약적 성장 비결,사업성과 예술성 사이 균형 잡기

상원사였던가 월정사였던가. 30여년 전, 아버지의 고백을 듣게 된 곳은 강원도 오대산의 어느 절이었다. 중학생 아들과 아버지의 서먹서먹한 관계. 이를 극복하기에 산중의 절은 너무도 고요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모든 걸 내려놓고 절에 들어오고 싶을 때도 있지.”

캘리포니아 1번 도로를 타고 빅서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가면 ‘빅스비(Bixby)’ 다리를 지난다. 비트 문학의 향취가 가득한 상징물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빅스비는 국내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의 음성 인식 플랫폼 이름이다. 테크놀로지에 문학적 명칭이 붙었다. 기술과 문학의 경계에 서려는 기업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사진=김욱진

아버지의 갑작스런 고백이 아직도 아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까닭은 그가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필자도 어느새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절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성스러운 공간과 세속적인 곳의 경계에 서는 일에 관심이 많다.

출발점은 언제나 근무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거주할 때 가장 마음을 쏟은 기업 중 하나는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 픽사였다. 지금의 픽사를 만든 주역으로 보통 셋을 꼽는다. 디즈니와 합병하기 전까지로 한정하면 소유주였던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였던 에드 캣멀, 최고창의성책임자(CCO)였던 애니메이터 존 래시터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픽사가 적자에 허덕이던 시절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되어 픽사의 기업공개(IPO)를 담당한 인물에 주목한다. 그는 변호사인 로렌스 레비다. 2006년 픽사가 디즈니와 합쳐져 ‘디즈니-픽사’가 될 때까지 회사에 재직한 그는 자신의 픽사 여정을 불교의 중도(中道) 혹은 유교의 중용(中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로렌스 레비가 픽사에 투입된 시절, 픽사는 적자에 적자를 거듭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쏟아부은 사재만 하더라도 5000만달러가 넘었다. 당시 픽사에서 반복되던 일은 월말만 되면 에드 캣멀 사장이 스티브 잡스 회장에게 가서 직원들 월급을 수표로 받아오는 일이었다. 재무제표에 기재된 주주가치는 마이너스 5000만달러였다. 아무런 수익을 내지 못하던 회사에서 그가 받은 느낌은 ‘굶주린 예술가 집단’이었다.

‘굶주린 예술가 집단’이었던 픽사

당시 픽사는 뛰어난 인물들이 한데 모인 창의성 주식회사였지만 구성원들의 현실은 냉혹했다. 픽사의 주력사업이던 이미징 컴퓨터는 팔리지 않았고 부업 삼아 제작하던 단편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지금 픽사를 떠올릴 때 아무도 컴퓨터를 생각하지 않듯이 훗날 픽사는 컴퓨터 부문을 정리한다.

장난스레 만들던 그래픽 애니메이션이 ‘토이스토리’가 되어 회사를 살린다.

로렌스 레비는 마이너스 5000만달러짜리 회사가 76억달러 가치로 디즈니에 인수될 때까지 최고재무책임자로서 함께한 여정을 '픽사, 위대한 도약(To Pixar and Beyond)'이라는 책에서 회고한다. 픽사의 비약적 성장 비결은 한마디로 사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레비의 임무는 훌륭한 예술가 집단이 사업적 가치를 확보해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살아남도록 동력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동시에 레비는 픽사가 상업적 이윤에만 골몰해 예술가 집단이 보유한 창의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디즈니, 적자 회사 76억달러에 인수

사업성과 예술성의 경계에서 픽사가 유지하려 애쓴 평형을 그는 ‘중도’로 풀이한다. 레비는 “픽사의 성공은 창조적 정신을 죽이지 않으면서 성장 동력을 부여해 줄 전략 질서 행정 체제를 충분히 계발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며 “우리의 영혼 창조성 인간성을 표출할 수 있도록 북돋는 동시에 일상생활의 요구와 책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도의 조언이라고 말한다. 중도란 결국 형태와 내용, 질서와 자유, 체제와 활기, 효율과 완벽, 예술성과 사업성 사이에서 추는 춤이나 다름없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면서 레비의 중도적 관점을 취해 보려고 애썼다. 가장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는 숫자의 세계다. 매년 발간되는 실리콘밸리 인덱스를 보자. 2025년 초 나온 자료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에는 300만명이 산다. 아시아 사람이 37%, 백인이 30%, 히스패닉이 25%, 흑인이 2%다. 실리콘밸리의 일자리 수는 172만개이며 여기서 근무하는 사람이 받는 평균연봉은 19만9010달러다.

우리는 숫자에서 추이를 살필 수 있지만 무엇이 변화를 이끈 동인인지는 유추하기 어렵다. 숫자가 가진 태생적 한계를 보완하는 것은 결국 이야기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며 만난 벤처투자자의 말이 인상 깊었다. 수많은 창업가가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그들 앞에서 피치(pitch)를 한다. ‘나는 이러이러한 기술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려 한다, 그러므로 내게 돈을 투자하라, 나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광경이다. 하루에도 십수명씩 이러한 젊은이들을 상대하는 벤처투자자의 마음을 과연 무엇이 움직일까. 기술도 기술이지만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고 했다. 그들이 마지막에 보는 것은 투자를 원하는 인물의 비전이었다. 특히 인물이 살아온 세월과 살아갈 앞날을 면밀히 본다고 그랬다. 필자는 이를 서사로 규정한다.

벤처투자자, 결국 인물의 비전을 본다

뉴욕대에서 재무학을 가르치는 애스워스 다모다란은 “우리는 중학생 즈음이 되면 숫자로 가득찬 세상과 이야기의 세계 중 좋아하는 서식지를 정해 쭉 그곳에 머문다”고 말한다. 스토리텔러나 넘버크런처(number cruncher)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스토리텔러는 익숙한 개념이지만 넘버크런처는 숫자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 주로 회계사 통계학자 증권 분석가 등을 의미한다.

다모다란은 현대사회의 투자·가치평가 영역에서조차 두 부족의 역량이 동시에 요구된다고 말한다. 즉 시인은 회계사의 현실성이 필요하고 회계사는 시인의 예술성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이야기가 뒷받침되지 않는 가치평가는 영혼이 없으므로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또한 스프레드시트보다는 스토리가 누구에게나 쉽게 각인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다. 숫자의 현실성을 상실한 예술가가 얼마나 곤경에 빠지기 쉬운지는 앞서 살펴본 90년대 초반 적자를 거듭하던 픽사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업성과 예술성, 숫자와 서사의 경계에 서기 위해서 직업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 필자가 찾은 힌트는 ‘벌레의 눈’이다. 벌레의 눈은 새의 눈처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파이낸셜타임스 편집국장인 질리언 테트는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방식은 대개 깔끔한 파워포인트나 현란한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지 않지만 위에서 조망하거나 빅데이터로 바라보는 관점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을 드러내기도 한다”며 두 시각을 결합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주위를 둘러보고, 관찰하고, 경청하고, 질문을 던지고,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을 잃지 말자고 말이다. 이를 필자는 새의 눈과 벌레의 눈의 경계에 서서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고민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기술’은 언제나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실리콘밸리 근무 시절 틈틈이 캘리포니아 1번 도로를 따라 달렸다. 벌레의 눈처럼 수평적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싶었다. 태평양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마주한 마을 이름은 ‘빅서(Big Sur)’였다. ‘빅서’는 1960년대 비트 세대를 주도한 미국 작가 잭 케루악의 자전적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빅서에서 한 계절을 보내며 이 작품을 썼다. 빅서에 도착하기 전 건너야 하는 다리는 ‘빅스비(Bixby)’였다.

빅스비는 국내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가 탑재한 생성형 인공지능 플랫폼의 명칭이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대변하는 기업이 문학적 향취가 듬뿍 들어있는 이름을 가져와 서비스에 붙였다. 일부러 둘의 경계에 서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이 한국회사와 경쟁하는 미국 기술기업은 아예 과일 이름을 사명으로 쓴다. ‘사과’라는 회사의 접근법은 기술은 기술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으며 기술은 언제나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눈을 떠보니 두 영역의 교차점에 선 기업이 세계를 이끌고 있다. 강화도에 사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피는’ 법인가 보다.

김욱진

코트라 경제협력실 차장

'실리콘밸리 마음산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