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22 차귀도 둘레길

천연기념물이 된 제주의 무인도

2025-05-16 13:00:14 게재

무인도는 접근이 쉽지 않다. 대부분 교통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에는 해상 교통이 아주 편리한 무인도가 하나 있다. 유람선이 수시로 운항을 한다. 더구나 섬 전체를 한바퀴 돌아볼수 있는 둘레길까지 잘 만들어져 있다.

차귀도(遮歸島)다. 백섬백길 58코스인 차귀도 둘레길은 1.9㎞에 불과하지만 내내 청옥빛 제주 바다를 보며 탁 트인 초원길을 걸을 수 있다.

차귀도 이름에는 송나라 장수 호종단이 섬의 지맥과 수맥을 모조리 끊고 돌아가는 것을 한라산 수호신이 막았다는 전설이 담겨있다. 사진 섬연구소 제공

차귀도는 본래 대나무가 많아 죽도(竹島)라고 불렀으나 호종단(胡宗旦) 전설 때문에 섬 이름이 하나 더 생겼다. 전설에 따르면 제주도의 산천이 뛰어난 까닭에 인재가 많이 태어나 중국에 반기를 들 것을 우려해 송나라 장수 호종단이 제주도로 건너와 섬의 지맥과 수맥을 모조리 끊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호종단이 배를 타고 서쪽으로 돌아갈 때 매로 변신한 한라산 수호신이 돛대 위에 앉아 돌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켰고 호종단은 끝내 중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호종단이 돌아가는 것을 막은 섬이라 하여 차귀(遮歸)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라산 산신이 변했다던 매처럼 생긴 바위가 차귀도의 일부인 지실이섬이다.

차귀도는 2000년 7월 18일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호구역이다. 면적 0.16㎢로 제주특별자치도에 딸린 무인도 가운데 가장 크다.

차귀도는 본섬인 죽도와 지실이섬, 누운섬 등의 무인도를 통칭해 부르는 지명이다. 입도 가능한 곳은 죽도다. 제주 고산리 해안과 2㎞ 남짓 떨어져 있어 고산 자구네 포구에서 배로 10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차귀도에는 1911년 쯤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 고산리 살던 강씨 집안이 뗏목을 타고 대나무만 무성하던 차귀도에 들어와 개간을 하고 살기 시작했다. 1973년도에는 3가구 12명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1977년까지도 2가구가 살았다.

하지만 차귀도는 1978년부터 무인도가 됐다. 섬 지역에서 간첩단 사건이 빈발하자 정부는 10가구 미만의 섬이나 마을들에 소개령을 내려 강제 이주시켰다. 안보상의 이유로 무인도가 된 것이다. 무인도가 되고나서도 사람들은 1980년대까지 농사를 짓고, 해초를 채취하기 위해 차귀도를 드나들었다. 차귀도에는 농사짓던 밭과 집터, 빗물 저장 시설 등이 남아있다.

현재 차귀도의 유일한 건축물인 차귀도 등대는 1957년 차귀도와 고산리 주민들이 힘을 모아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다. 볼레기 동산은 주민들이 등대를 만들 때 무거운 돌과 자재들을 이고 지고 언덕을 오르면서 볼렉볼렉(헐떡헐떡) 가쁜 숨을 몰아쉬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차귀도는 주로 응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산 해안의 수월봉과 같이 수성화산 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하이드로볼케이노(hydrovolcano)다. 하이드로볼케이노는 분화 시 마그마가 외부의 물과 접촉하여 강력한 폭발을 일으켜 만들어지는 화산체다. 차귀도 남쪽의 장군바위 일대가 분화의 중심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차귀도는 제주도에서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지역이다. 바닷속에는 수많은 홍조식물이 자라고 있어 학술적, 생물학적 가치가 높은 곳이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이다. 2000년 천연기념물 지정 직후부터 출입이 금지되다가 2011년에 다시 개방되면서 출입이 가능하게 됐다.

차귀도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무인도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해주는 보물같은 섬이다. 제주 여행자들은 꼭 한번 걸어보길 권장한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