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풍경

노사, 어느 한쪽이 모두 가져가는 경우는 없다

2025-05-16 13:00:52 게재

“조사관님, 조정 신청 들어왔어요.” 한마디에 조정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조정에 주어진 시간은 휴일을 포함해 10일.

조정을 신청한 노동조합과 사용자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 교섭진행 상황 등을 파악하고 제출된 자료와 당사자 면담을 통해 핵심 쟁점을 정리한다.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노와 사, 그리고 조정위원들의 일정을 조율해 2차례의 조정회의 날짜를 정한다.

조정회의, 쟁점·내면 의사 파악해 합의형성

1차 조정회의 날. 회의장은 사뭇 경직되고 긴장된 분위기다.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지만 냉랭함을 지우기 어렵다. 노사 양측으로부터 조정신청에 이른 경위에 대한 발언을 듣고 회의를 정회한다. 잠시 시간을 둔 후 노사를 분리해 개별회의를 진행한다.

1차 조정회의는 제출된 자료와 조사보고서만으로는 읽을 수 없던 양 당사자의 표정과 내면을 접하게 되는 회의다. 개별회의를 진행하는 것도 당사자의 격앙된 감정으로 인한 조정의 교착을 막고 보다 더 집중적으로 실질적인 쟁점과 내면의 의사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조정위원들은 개별회의를 통해 양 당사자의 의견차이를 명확히 하고 이러한 차이를 공유해 합의를 위한 조정안을 모색하는 것에 집중한다.

회의를 속개해 노사 양측에게 기존 입장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다음번 회의에서는 상대방과 협의가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 줄 것을 당부하고 1차 조정회의를 마친다.

며칠 후 2차 조정회의를 연다. 본격적인 조정의 시간이다. 2차 조정회의는 그간의 조정경과를 통해 모색하고 제시된 다양한 대안들을 하나의 합의안으로 묶고 노사 양측의 동의를 구하는 합의형성 과정이다.

회의는 1차와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개회 및 노사 당사자의 발언 후 곧바로 개별회의에 들어간다. 조정위원들과 노사 당사자 간에 열띤 대화가 오간다.

조정위원들은 당사자의 주장 및 불가피한 상황 등을 경청하되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 강하게 설득한다. 불합리한 주장에는 단호하게 상대의 입장에 서게 해 노사 양측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도록 노력한다.

2차 조정회의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노사 양측을 번갈아 가며 개별회의를 반복한다. 양측의 의견이 어느 정도 접근하면 조정기한을 연장해 밤샘 조정을 하거나 며칠 후 3차 조정회의를 열기도 한다.

2차 조정회의까지 모든 절차가 끝나고 매번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만 결과는 항상 기대한 만큼, 노력한 만큼 나오지는 않는다. 조정과정에서 진전을 이뤄 조정안을 제시하기 전에 당사자 간에 쟁점사항에 대해 합의하거나, 고심 끝에 제시한 조정위의 조정안을 노사가 수락해 조정이 성립되면 뿌듯하다.

반면 조정중지 또는 행정지도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마음이 허허롭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실을 맺지 못한 것에 대한 조정위원 조사관의 아쉬움은 사실 그리 큰일은 아니다. 다만 해소되지 않고 깊어진 갈등으로 인해 극한 대립으로 이어지는 경우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노사관계에 안타깝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쉬움 남지만 다음 단계로 내딛다

조정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노사 당사자 중 어느 한쪽이 모두 가져가는 경우는 없지만 양측이 모두 잃고 가는 경우는 있다는 것이다.

2가지 사례가 있다. 모두 노조가 조직된 뒤 사용자와 몇년간 첫번째 단체교섭을 체결하지 못하자 조정을 신청한 경우다. 이 경우 노사 양측 모두 서로의 입장만을 고집하다 조정이 불성립됐다. 조정과정에서 약간의 양보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지만, 핵심사항에 대한 조정위 제시안에 대해서는 전혀 양보가 없었다.

물론 비난할 수 없다. 그만큼 당사자들에게는 그 사항이 절박했고 물러설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끝내 첫번째 단추를 채우지 못하고 모두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두번째 사례는 조정위원가 제시한 조정안을 수락해 조정이 성립된 경우다. 사실 조정안 자체는 양 당사자 모두를 고려해 제시한 것이지만 그렇기에 양 당사자 모두에게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실제로 노사 각각의 내부에서 해당 조정안을 놓고 받을 수 없다는 의견충돌이 있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노사 양측은 조금씩의 양보를 통해 첫번째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그것을 토대로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단체협약에서 논의해 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아쉬움은 남겠지만 노사 모두 소기의 결과를 손에 쥐고 다음 단계를 밟아갈 수 있게 됐다.

물론 두 사례들은 단순화한 것이고 그 내밀하고 복잡한 사정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선택이 각자에게 실질적이 도움이 될 것인지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전화벨이 울리고 “조사관님, 조정 신청 들어왔어요.” 또 누군가의 조정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임희철

중앙노동위원회

조정과 조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