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탄핵광장의 목소리 대변…분배·복지·소수자 누가 말하나”
“대선 TV토론에 보수 인사들만 가득하면 되겠나”
“민주당에 비판적 지지, 거대양당 정치만 강화”
“나쁜 결과 우려되지만 물러서면 가능성 사라져”
‘거리의 변호사’ 활동 … “진보정치는 홀로 서야 ”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는 인터뷰 내내 ‘광장’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그의 ‘광장’엔 그동안 외면 받아온 소수자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광장’의 힘은 그러나 거대양당의 힘겨루기로 변질됐다. 6.3 조기대선에서 거대양당은 ‘성장’을 앞세우며 ‘분배’ ‘복지’는 뒤로 미뤄뒀다.

권 후보는 “광장의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하려 출마했다”고 했다. 하지만 출마를 결정하기까지 고뇌도 많았다. 진보진영의 새로운 기초를 다질 기회지만 득표율이 너무 낮을 경우엔 어떤 비판과 비난이 몰려올지, 진보정당이 더 추락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권 후보는 ‘도전’ 없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당원들을 설득했다.
보수화된 거대양당 사이에서 권 후보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기득권 중심 세태를 고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권 후보는 사표를 우려해 진보유권자들이 다시 ‘비판적 지지’에 쏠리면 결국 거대양당 강화를 지원할 수 밖에 없다고 환기시키면서 오늘도 “홀로 선 진보정치인”으로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 그와 인터뷰는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내일신문 본사에서 가졌다.
권 후보에게 붙는 수식어는 ‘거리의 변호사’다. 포항제철공고, 서울대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후 풍산에 들어가 노조를 만들다 해직됐다. 2번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일본에서 유학한 후 사법고시에 합격해 본격적인 ‘약자의 변호인’으로 나섰다. 민주노총법률위원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 김용균 사망사고별 노동안전조사위원회 간사, 세월호 참사 조사특위 위원장 등 억울하고 소외된 이들의 옆엔 언제나 그가 있었다. ‘정치’의 힘을 확인하고 온라인정당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2019년 정의당에 들어와 지난해 대표에 당선됐다. 현재는 정의당에서 이름을 바꾼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로 뛰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정의당을 플랫폼으로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 민주노총 산하 일부 산별노조 등이 참여하는 선거 연대다.
●원외정당의 대선주자로 나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의당이 원외로 밀려난 후 노동당, 녹색당과 공동 행보를 했고 독자적 진보 정치를 다시 시작해 볼, 조기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인 활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대선 TV토론에 보수색으로 가득 찬 사람들만이 앉아 있을 것에 대한 회의가 시작됐고 적어도 탄핵 광장에서 외쳤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주류 정치에서 소외되고 배제됐던 목소리들이 탄핵 광장에서는 오히려 주류였다. 소수자들의 목소리, 사회적인 약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존재가 보이지 않던 분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했다. 정권이 바뀌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탄핵 광장에서 주로 이야기됐다. 2016년과 2017년 박근혜 탄핵때도 나왔지만 묻혔다. 이번 대선 국면도 광장에서 외쳐졌던 다양한 목소리들을 대변하거나 수용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득표율 부담이 컸을 것 같은데.
이번 대선에 후보를 낼 거냐를 두고 볼 때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이다. 진보 정치의 새로운 기초나 토대를 만들어 가는 계기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더 나쁜 결과가 나오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와 반대가 꽤 존재했다. 하지만 대선은 시민들과 호흡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이때 진보정당이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되면 과연 진보 정치를 어떤 방식으로 알릴 수 있느냐, 결과에 대한 우려 때문에 뒤로 물러 앉아버리면 사람들이 잊어버린다, 시도하고 도전해야 가능성과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이지 물러서면 가능성은 아예 사라지게 된다는 생각으로 설득했다.
●거대양당 구도에서 진보진영 유권자들마저 진보정당 투표를 사표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민주당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적 지지가 수십 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거대 양당의 진영 정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극우 내란 세력이 다시 집권하면 안 된다는 논리에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해야 된다고 하면 거대 양당 진영 정치만 더 강화되는 것이다.
다원적인 민주주의로 가야만 대결 정치, 진영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때가 돼야 진정한 내란 종식이 된다고 본다. 20년 전부터 나온 결선투표제를 도입했으면 이미 정책 경쟁하고 연합하게 됐을 것이다. 누가 막았냐. 거대양당이 막아온 거다. 왜? 독점할 수 있으니까.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노란봉투법도 민주 정부가 들어섰을 때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안 했다. 그런 정치가 와 봐야 우리 삶은 바뀌지 않는다. 이제는 답을 줘야 한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 우리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한다. 이런 목소리들을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은 사표가 아니다. 친기업 성장 이야기하는 정당들만 존재하면 분배 얘기는 누가 하냐. 복지, 소수자 기본권 얘기는 누가 할 거냐. 존재를 스스로가 드러내고 정치적인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신호를 선거를 통해 줘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이 바뀐다. 그 표가 늘어날수록 양당 체제가 비로소 바뀔 수 있다. 이건 사표가 아니다. 우리를 지지할 만한 이유다.
●원내에 있는 진보 정당들이 결국 이재명 후보 중심으로 모였다.
지역에 기반한 양당 정치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니 제3의 정당이 자기 생존을 위해서는 결국 양당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들어간 거다. 기득권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진보 정당들은 수구나 보수 정당하고는 정책적으로 대립될 수밖에 없다. 거대 정당에 의탁해서 의석을 차지하면 기득권과 다른 정치를 하겠다고 했을 때 신뢰가 갈까. 적어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 발로 원내에 진입하지 않으면 거대 정당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진보 정치인은 홀로 설 수 있어야 된다. 거대양당은 개발, 부자감세, 노동 유연화를 얘기한다. 진보 정치를 추구하는 제 단체, 노동조합 등이 서로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 연구도 하고 이번엔 공동 대선을 치르면서 상당히 기대가 올라가고 있다. (전문은 e내일신문, www.naeil.com에서 볼 수 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