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대선국면에서도 이념타령인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선거 첫 일성으로 ‘자유통일’을 띄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겨냥해서는 “가짜 진보를 확 찢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탈북자 출신 박충권 의원을 내세워 북한의 열악한 경제상황에 대해 즉석 대담을 나눴다. 김 후보는 “자유통일을 말하면 과격한 말이라 하는 분도 있지만, 통일은 자유통일이라 해야지 공산통일이 되면 안된다”면서 “대한민국에서 북한을 자유통일, 풍요로운 북한으로 만들 수 있는 정당은 국민의힘 하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발언 내내 ‘자유 통일’ 키워드를 부각했다. 김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인 강성 극우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해 강성 보수 결집으로 반이재명 선거를 치르겠다는 전략의 일단인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선거구도에서 계엄과 탄핵에 대한 김 후보와 국민의힘이 기존 입장에 대한 반성은커녕 뜬금없이 ‘자유통일’을 거론하는 걸로 봐서 그나마 기대했던 퇴행의 청산은 무망하다. 김 후보가 가지고 있는 강성우파 이미지, 다르게 표현하면 극우라는 이미지가 그대로 노출되고 계엄과 탄핵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지 못한다면 이번 대선은 치르나마나다. 선거의 의미 자체가 없을 수 있다는 말이다.
선거 첫 일성으로 ‘자유 통일’ 띄우는 의도는?
계엄과 탄핵정국은 우리사회에 극우의 뿌리가 얼마나 강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박근혜 탄핵정국에 등장했던 이른바 ‘태극기 세력’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고 저변을 넓히고 토양은 보다 견고해지는 추세임이 확인됐다. ‘이재명은 안되기 때문에, 윤석열 탄핵은 안된다’는 비논리와 반민주의 사고는 생각보다 집요했다. 윤석열 탄핵소추가 기각될 수도 있다는 우려는 당시로서는 기우가 아닐 정도로 반탄의 기치는 맹위를 떨쳤다.
김 후보는 국민의힘 후보 중에서 가장 줄기차고 일관되게 윤석열 탄핵을 반대했다. 후보 선출 후에도 윤석열의 출당에 거리를 두었다. 그렇더라도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승패와 관계없이 탄핵과 계엄에 대한 기존의 태도를 바꾸고, 색깔론과 이념적 접근은 가능하면 피하는 전략을 쓸 줄 알았다. 한국의 정치문법상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려면 그래야 가능하다는 것이 선거공학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탄핵으로 치러지는 21대 대통령 선거는 이 후보 우위의 구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반이재명 텐트는 동력 자체를 잃었다. 개헌 연대는 이미 파괴력 있는 대선이슈가 되지 못한다. 한국정치사회의 뒤틀린 구조를 개헌으로 혁파해야 한다는 충정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윤석열정권의 실정과 탄핵에 대한 전향적 태도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럴 때 중도층과 유권자 일반이 개헌의 진정성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김 후보와 국민의힘은 선거국면에 돌입해도 ‘계엄의 강’과 ‘탄핵의 바다’를 극복하기는커녕 의지도 인식도 없다. 국민의힘 지도부나 정당 차원에서의 반성도 성찰도 찾을 수 없다. 앞으로 김 후보가 기존의 탄핵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선거는 공허한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강성보수를 의식해 협애한 보수지형 내에서의 기득권 정치를 유지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선거 벽두에 이념론을 띄우는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진보 우위의 선거구도에서 김 후보가 탄핵 정국에서 보여줬던 태도를 일신하고 과감하게 윤 전 대통령과의 결별, 친윤 그룹의 청산을 천명하고, 탄핵반대에 사과한다면 보수 결집의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래야 보수가 거듭날 수 있다.
보수 조종 울리지 않으려면 민심에 다가가야
보수가 조종(弔鐘)을 울리지 않으려면 비록 기울어진 선거지형이지만 최선을 다해 국민 일반의 민심에 다가가야 한다. 국민의힘은 보수 원류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 김 후보의 대선 후보 등록을 계기로 다윗의 통회(痛悔)의 절절함을 국민께 호소하고 강퍅한 이념론에서 벗어날 것을 기대했지만 ‘자유 통일’발언은 북한을 끌어들이면서 구태와 반공논리의 상징인 이념론을 점화시키려 했다.
그렇게 해야 강성 보수우파, 흔히 보수진영에서 말하는 ‘자유 우파’의 결집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중도를 배제하고서 어떻게 선거를 치르겠다는 심산인지 알 수 없지만선거승리보다는 선거 후의 당권, 공천권 등 이익정치, 기득권 정치가 목표라면 일응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