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영훈 한국물기술인증원장
“한국형 NSF<미국위생재단>인증제도로 세계 물시장 공략한다”
중소 물기업 인증 소요기간 단축 등 1년여간 870만달러 수출 성과 … 실험분석 능력 등 전문성 강화 필요
“아무리 훌륭한 신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도 미국 등 해외에서 실질적인 수출 실적을 내기 위해서는 장기간이 소요됩니다. 당장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부터가 난항이에요. 공공영역에서 전문 인력과 네트워크를 축적하고 실시간으로 기업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국익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2일 김영훈 한국물기술인증원장은 “말로만 물산업 육성이 아닌 구체적인 실적과 수치로 성과를 내야할 때”라며 “관성적인 접근이 아닌 실제 기업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서비스 마인드를 가지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 30년간의 공직생활 중 굵직굵직한 물 관련 제도들을 만든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며 강한 포부를 내비쳤다.
김 원장과의 인터뷰는 대구 달성군 한국물기술인증원에서 이뤄졌다. 한국물기술인증원은 물산업 전반에 걸쳐 제품과 기술 신뢰성, 품질을 인·검증하는 기관이다.

●국가에서 장기간 물산업 육성을 해왔지만 기대만큼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두루뭉술한 목표로는 물산업 육성이 어렵다. 핵심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신기술을 개발하면서 치고 나가는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중심이 돼야 한다.
기업들이 겪는 절차적인 어려움 등을 해결해 주고 그 기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자발적으로 성장한다. 그럼 그 기업들은 정부 지원에서 졸업하고 다른 기업들을 또다시 궤도에 오르는 작업을 해주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우수 제품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기술이나 제품에 대한 성능 검증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수 기술과 제품을 실증해 볼 수 있는 장을 정부가 제공하고 그 결과에 따라 검증서를 발급하는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국내 기업들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중소기업들이 개발한 기술들이 해외에서 원하는 수준인지를 입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개별 기업들이 소규모 단위에서 기술이 실제 적용되는지 실험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규모 하수처리장 등에서 해당 기술이 효과가 있는지 입증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점을 국가가 도울 필요가 있다.
국내 시장은 또 다르다.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은 기술이 국내에서 활용되기 위해서는 우선 지방자치단체 등이 받아줘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도전적인 신기술이 현장에서 도입됐을 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지 등 실무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자체장의 의지가 없으면 실무자들이 결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져줄 수 있는 부분과 장려책이 보다 견고해질 필요가 있다.
●실제 해외 진출 성과가 난 사례가 있나.
우리 기관에서는 해외 인증 취득에 어려움을 겪는 중견·중소 기업들이 미국위생재단(NSF·National Sanitation Foundation)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NSF 인증 취득은 해당 기업 제품이 국제 기준에 따라 품질과 안전성을 검증받았다는 걸 의미하므로 해외 수출 시 유리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신기술이 있어도 상당수의 중소기업들이 NSF 인증을 위한 관련 서류 번역부터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국내 물기업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 우리 직원들이 NSF에 상주하다시피하면서 협조체계를 탄탄히 만들었다.
NSF에서 문제 제기하는 걸 실시간으로 기업들에게 전달하고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해 실질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1년여간 약 870만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
또한 NSF 인증 취득을 위한 사전 교육부터 유지·갱신까지 전과정을 지원하면서 평균 1년 이상 소요되던 인증 기간이 약 8개월로 단축됐다. 2024년 인증 지원대상 기업 11개 중 10개가 NSF 인증을 받았다. 올해는 16개 기업의 도전을 지원 중이다.
앞으로도 말레이시아나 네덜란드 등 국내 물기업의 수요가 있는 해외국가의 인증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인증에 필요한 사업을 발굴해 지원할 계획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말레이시아의 표준산업연구원(SIRIM) 관계자들을 수차례 만나고 설득을 했더니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아닌가.
NSF와 함께 아시아권 국가들의 위생안전기준을 아우를 수 있는 ‘한국형(K)-NSF 인증제도’도 개발할 방침이다. K-NSF 인증제도가 다양한 아시아 국가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기준 마련 과정부터 아시아 국가 인증기관들과 협력해 추진 중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인증을 한번만 받으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별도 인증 없이 수출을 할 수 있게 된다. 해외시장 진출 시 국가별로 상이한 인증 요구사항들을 일일이 대응하는 어려움을 해소하게 되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2026년 배관 이음관 물탱크 활성탄 수도미터 등 5개 품목에 대한 K-NSF 인증제도 시행을 목표로 한다. 향후 순차적으로 품목 추가를 할 예정이다.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해외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 미국 유럽 등에서는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규제가 강화 중이다. 이렇게 되면 수도기자재에 대한 과불화화합물 용출 시험 수요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 확보는 물론 국민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서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실험분석 능력 강화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인증기관들과 유사한 수준의 자체 분석 능력을 갖춰야만 국내 기업들이 강화되는 국제 수준의 요건을 갖출 수 있는지 사전 분석이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물순환 기술·제품의 성능검증을 위해서 체계적인 성능검증센터도 필요하다.
●신기술이 있어도 전문 인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물기업들이 많다.
물산업 분야 전문 인력 양성 기능도 수요에 맞게 강화해야 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과 지원 방법이 무엇인지를 주기적으로 파악해 맞춤 정책을 펼쳐야 한다.
국내 물기업들이 실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수시로 현장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처음에는 속 깊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러 계속 두드렸더니 이제는 현장에서 겪은 어려움들을 가감 없이 공유하는 단계에는 이르렀다. 중소 물기업들 상당수가 전문성을 키우기도 전에 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새로운 인력들이 단기간에 전문 능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을 지원해 줘야 한다.
●지역 경제와 물산업의 상생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대구시와 함께 국가물산업클러스터(물산업진흥시설) 입주기업을 포함한 지역 물기업 육성을 위한 맞춤형 성장지원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우수 물기술 현장 실증화 지원 사업도 한다. 우수 물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대상으로 현장 실증과 성능검증으로 조기 사업화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우수 물기술 현장 실증화 지원을 통해 5개 기업이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이들 기업은 약 20억원의 매출 성과를 달성했다. 올해에도 4개 기업을 선정해 시험장 섭외에서부터 성능검증에 이르기까지 제품 상용화를 위한 전과정을 밀착 지원할 계획이다. 앞으로도 해외수출 경험과 지원이 부족한 지역 물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쓰겠다.
대구=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과불화화합물 = 열에 강하고 발수 특징이 있어 살충제 조리기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된다. 하지만 쉽게 분해되지 않고 잔류성이 높아 ‘영원한 화학물질’로도 불린다. 환경과 인체 내에 지속적으로 축적돼 암을 유발하는 등 악영향을 미치는 물질로 알려진다. 국제적으로 과불화화합물 사용을 금지하거나 억제하는 추세다. 과불화화합물 중 과불화옥탄술폰산(PFOS)과 과불화옥탄산(PFOA)은 스톡홀름협약에 따라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미국위생재단 = △물 처리 시스템 △수도 설비 등 다양한 제품의 안전성 및 품질을 확인하고 인증하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분야의 공중보건 표준을 개발하고 시설과 제품이 규정을 준수하는지 검사한다. 미국위생재단 인증을 받은 제품은 많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