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트럼프, 비협조 법조인 위협하며 ‘법조계와 전쟁’

2025-05-20 13:00:02 게재

취임한 지 겨우 넉달밖에 안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법조인에 대해 유례없는 보복과 위협을 가하면서 ‘법조계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자신이 직접 연루된 사건이나 그의 정책에 반대하는 소송을 진행한 로펌과 변호사들을 제재하는 행정명령을 남용하고 있다. 이는 사적 보복을 위해 법의 기본 원칙과 공정한 사법 집행을 위해 꼭 필요한 변호사의 역할을 공격하면서 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연방정부 접근 제한, 로펌에겐 ‘사형선고’

트럼프는 특정 로펌과 변호사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이들에 대한 보안허가 철회, 연방정부 건물 접근 제한, 정부 계약 파기 및 기업의 해당 로펌 사용 여부를 확인해 조치하겠다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여러 행정명령을 내렸다. 단적으로 연방정부 건물 접근 제한은 변호사가 연방법원에 출입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건 수임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목을 조르는 것이다. 이는 로펌에 대한 ‘사형선고’라 할 수 있다.

또한 연방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소송이 근거가 없거나, 불합리하고, 악의적일 경우 소송 대리 변호사와 로펌을 제재하라는 지시를 법무부에 내렸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뿐 아니라 지난 8년 동안 연방정부를 상대로 한 모든 소송을 검토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강력한 징계를 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트럼프가 행정명령에서 직접 언급한 퍼킨스코이(Perkins Coi) 로펌의 경우 그동안 “부정직하고 위험한 활동”을 해왔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퍼킨스코이가 2016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 캠프의 자문을 맡았고, 주로 소수인종을 타깃으로 하는 투표권 제한법에 위헌 소송을 벌여온 것이 트럼프의 분노를 산 진짜 이유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다른 로펌 제너앤블록(Jenner&Block)의 경우 트랜스젠더와 이민자에 대한 무료 법률서비스(Pro Bono) 제공 같은 것이 빌미가 되었다. 트랜스젠더, 이민자 등에 대한 공격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이들의 권리를 대리하는 변호사를 제재해 자신의 정책 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싹을 미리 자르겠다는 속셈이다. 근거 없는 소송 제기로 사법 시스템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트럼프 어젠다에 반하는 모든 소송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1기 정부뿐 아니라 2기에서도 트럼프의 정책을 저지하려는 소송이 격화되고 있고, 많은 경우 제동이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5월 16일까지 적어도 160건의 법원 판결로 트럼프정부의 계획이 일시 중단되고 있다. 분노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해 “지난 200년 이상 (법관) 탄핵은 사법부 결정을 둘러싼 이견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다”면서 법원 판결에 이견이 있는 경우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항소심 절차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이 트럼프를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8년 트럼프정부 1기 때 정부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오바마 판사’라고 조롱한 트럼프에게 “우리는 오바마 판사들이나 트럼프 판사들, 부시 판사들이나 클린턴 판사들을 두고 있지 않다”면서 “법정에 선 모든 이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인 판사들이 사법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일벌백계 통해 위축효과 노려

트럼프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변호사와 로펌에 대한 일벌백계를 통한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노리는 듯하다. 이런 시도는 법치주의를 공격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라고 법조인들은 입을 모은다.

행정명령에서 직접 이름이 언급된 마크 엘리어스 변호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는 변호사들과 로펌을 굴복시키고 위축시키는 것”이라며 “법정에서 트럼프행정부에 맞설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지적했다. 엘리어스 변호사는 지난 2016년 연방수사국(FBI)이 조사한 러시아 관련 의혹 문건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

정부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누구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미국 시스템의 기반이다. 예를 들면 민주당 집권 시절에도 보수진영은 소송을 통해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때로는 성공적으로 정부 정책을 저지하기도 했다. 행정부 권력에 대한 이런 사법부의 견제는 그 구성원인 법조인들이 권력의 입김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여부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타깃이 된 일부 로펌은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소송을 제기했다. 법조계 전반의 우려를 반영하듯 퍼킨스코이가 제기한 소송에 500개가 넘는 로펌들이 “이 소송 결과에 우리도 영향을 받는다”는 취지의 서명을 제출했다. 이달 초 워싱턴DC 연방 지방법원은 퍼킨스코이를 겨냥한 행정명령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적법 절차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싫어하는 기업이나 인물에 제재조치를 취해 개인적인 앙갚음을 하는 것은 미국정부나 대통령의 합법적인 권한이 아니다”라며 대통령이 사적 보복을 위해 행정명령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로펌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현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대형 로펌은 벌써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 이들은 트럼프 어젠다를 지지하는 수천만달러의 법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폐기하겠다는 서약으로 일단 화를 모면했다.

하지만 변호사 윤리와 사법 독립성보다 이윤을 선택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법조계에서는 이 로펌들이 정부의 불법적인 협박에 굴복해 변호사의 공익 의무를 방기하고 표현의 자유와 변호인 조력권을 저버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현직 판사가 체포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FBI는 지난달 25일 위스콘신주 밀워키 카운티 법원의 해나 듀건 판사를 공무집행 방해, 범인 은닉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자신의 법정에 출두한 피고인을 체포하러 법원 안까지 들어온 이민세관단속국(ICE)에 협조하지 않고 도주를 도왔다는 이유다. 정식 기소가 된 듀건 판사가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최대 징역 6년에 처해질 수 있다.

본디 법무장관은 폭스뉴스에 나와 듀건 판사를 향해 “정신 나갔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하면서 “판사라 할지라도 끝까지 쫒아가 기소할 것이라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모든 판사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대변인 또한 연방대법관도 체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법을 어기거나 연방정부의 법집행을 방해하는 자는 당연히 누구나 체포 기소될 수 있다”고 답해 사법부 최고 위치에 있는 연방대법관들조차 예외가 아님을 암시했다.

권력분립과 민주주의 근간 위태롭게 해

법원뿐 아니라 개별 판사 로펌 변호사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것은 권력분립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태롭게 하는 전례 없는 일이다. 사법부의 독립성이 부정되고 법조인들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소송을 하거나 의견이 다른 인사를 변호하는 것 때문에 탄압 받는 것은 독재 국가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 공공연히 일어난 일이고 지금도 여러 독재 정권 하에서 자행되고 있다.

선을 넘는 트럼프정부의 사법부 공격을 막지 못한다면 미국이 돌이킬 수 없는 권위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괜한 기우가 아닐 수 있다.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