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기상캐스터 근로자성 부정에 ‘유족 반발’
MBC 특별근로감독 결과 … 시민단체 “방송작가는 근로자성 인정, 모순”, MBC “관련자 적절한 조치”
고용노동부가 고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에 대해 조직 내의 괴롭힘이 있었다고 인정되지만 근로기준법(근기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법의 직장 내 괴롭힘 조항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고 오요안나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는 고용부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규탄하고 나섰다.
방송노동자 단체 ‘엔딩크레딧’과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직장갑질119 등은 19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부가 MBC에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앞서 이날 고용부는 2월 11일부터 지난 16일까지 약 3개월 동안 MBC를 상대로 진행한 특별근로감독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고용부는 오요안나씨가 2021년 입사 후 선배들로부터 수시로 업무상 지도와 조언을 받아왔지만 단순히 지도·조언 차원을 넘어 사회통념에 비춰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행위가 반복됐다고 밝혔다.
고인이 △사회 초년생인 점 △업무상 필요성을 넘어 개인적 감정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발언들이 수차례 이어져 온 점 △지도·조언에 대해 선·후배 간 느끼는 정서적 간극이 큰 점 △고인이 지인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유서에 구체적 내용을 기재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고용부는 기상캐스터의 업무처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고인을 근기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 법의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MBC와 계약된 업무(뉴스 프로그램 출연) 외 다른 소속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행정 등 업무를 하지 않은 점 △일부 캐스터가 외부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자유롭게 개인 영리활동을 해 수입을 전액 가져간 점 △주된 업무수행에 구체적 지휘 및 감독 없이 기상캐스터가 재량권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임한 점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으며 정해진 휴가 절차가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고용부는 감독기간 중 MBC 전직원(1726명)을 대상으로 조직문화 전반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252명 중 115명(45.6%)이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성희롱 피해를 본 사실이 있거나 주변 동료가 피해를 본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또 보도·시사교양국 내의 프리랜서 35명에 대한 근로자성을 추가 조사한 결과 FD, AD, 취재PD, 편집PD 등 프리랜서 신분으로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한 25명이 근기법상 근로자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들에 대해 현재의 근로조건보다 저하되지 않는 범위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MBC에 시정 지시하고 이행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이밖에 방송지원직·계약직 등에 대한 연장근로수당 과소 지급 등 총 1억8400만원(691명)에 대한 임금체불 및 6건의 노동관계법령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4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고 2건에 대해선 154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유족 등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이 같은 고용부의 근로자성 부정 판단이 최근 법원 판례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오씨는 방송 3시간 전 고정 출근했으며 휴일에도 근무일이 정해져 있었고 원고 문구와 용어까지 파트장으로부터 지시받는 등 실질적으로 MBC의 지휘·감독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는 “MBC 뉴스 방송작가 소송에서도 법원은 뉴스 프로그램 방송작가는 MBC가 고용한 직원이라고 판단했다”면서 “방송의 특성상 프리랜서라고 이름 붙여진 사람들이 절대 프리하게 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 오요안나 캐스터의 근무상황도 다르지 않았는데 고용부가 법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은성 노무사는 “고용부는 ‘기상캐스터가 한 방송사에 전속되지 않고 여러 군데서 일을 할 수 있는 점’이 근로자 부정의 근거가 된다고 했는데, 대체 어떤 기상캐스터가 여러 방송사에서 기상캐스터 업무를 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고용부가 되레 방송사의 비정규직 노동자 착취와 사용자 책임 회피에 면허를 부여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고인의 어머니인 장연미씨는 “MBC가 시키는 대로 일했는데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고용부는 MBC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이런 결정을 한 것이냐”며 “유가족은 이번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오열했다.
참석자들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PD와 AD, FD 등은 근로자로 인정하면서도 기상캐스터만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단은 모순”이라며 “프리랜서 기상캐스터들을 선후배 관계로 묶어 팀을 구성하는 등 근로자성을 지우기 위한 MBC의 노무관리 방식을 규탄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MBC는 관련자에 대한 조치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MBC는 “고 오요안나씨에 대한 괴롭힌 행위가 있었다는 고용부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관련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오요안나씨의 안타까운 일에 대해 유족들께 다시한번 사과드린다”며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체 없이 수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고용부에 내사보고서 공개를 요구하고 기상캐스터 등 프리랜서 방송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기준을 명확히 할 것을 촉구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