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범위기준 확대 갈등

중소기업 “물가상승 반영”…중견기업 “스스로 성장 회피”

2025-05-21 12:59:58 게재

중기부, 상반기에 ‘중소기업 매출액 기준’ 개편 추진

10년만에 20% 상향 … 매출기준 1800억원으로 확대

“정부지원에 의존, 피터팬증후군 양산할 것” 우려 제기

정부가 10년만에 중소기업 범위기준 확대를 추진하자 중견기업계가 반대하고 나섰다. 일부 전문가들도 우려를 표명했다.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오영주)는 지난 1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중소기업 매출액 기준 개편안을 확정했다. 이번 중소기업 기준 개편은 10년만이다.

현재 중소기업 기준은 2015년에 설정됐다. 그간 중소기업계는 범위기준의 개편을 요구해왔다. 누적된 물가상승으로 매출액만 올라도 중소기업을 졸업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세제감면 공공조달 정부지원사업 등 중소기업 혜택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개편안 9월 시행 = 개편안은 중소기업 매출기준을 최대 1500억원에서 1800억원으로 높였다. 매출구간을 5개 구간에서 7개 구간으로 늘리면서 업종별 매출기준 상한을 현행에서 200억~300억원 확대했다. 소상공인 기준이 되는 소기업 매출기준도 최대 120억원에서 140억원으로 늘렸다. 매출구간을 5개 구간에서 9개 구간으로 늘리면서 업종별 매출기준 상한을 지금보다 5억~20억원 높였다.

개편안에 따르면 총 44개 중소기업 업종 중 16개, 43개 소기업 업종 중 12개의 매출액 범위가 상향된다.

중기부는 “개편안은 업종 내 기업 분포와 현행 매출기준의 적정성, 업종별 물가상승률, 중소기업 졸업률 변화, 경상성장률 등을 종합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업계는 환영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10년 동안의 물가상승률을 모두 반영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14차례에 걸쳐 중소기업 현실을 반영한 조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내수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상공인이 어려운 시기를 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벤처기업협회는 “이번 개편으로 스케일업이 필요한 벤처기업들은 정부의 다양한 정책지원의 기반으로 혁신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며 기대했다.

이번 개편안은 5월에 입법예고하고 ‘온라인 중소기업 확인시스템 개편’을 거쳐 9월에 시행될 예정이다.

◆492개 중견기업이 중소기업 편입 = 중견기업계는 우려를 표명했다.

중견기업연합회는 “중소기업의 피터팬증후군을 양산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지원에 기대어 스스로 성장을 회피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중견연의 ‘중견기업 범위기준과 직결되는 중소기업 범위기준 검토 및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 범위기준 조정에 따른 실질적 수혜는 임계치에 근접한 일부 큰 규모의 중소기업에 집중됐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여전히 현행 중소기업 범위기준 내에 포함된다.

중견기업의 매출액 상향(10~30%)을 전제로 분석한 결과에서 전체분석 기업에서 18.7%에 해당하는 최대 492개의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으로 편입됐다. 이는 2023년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292게)의 1.7배에 해당한다.

특히 업종별 매출액 기준을 상향할 경우 △도·소매업 △건축업 등 특정업종과 특정 매출구간(현재 1000억원)의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으로 대거 편입되는 양상을 보였다.

주요 선진국의 중소기업 기준과 비교해도 범위가 매우 커진다는 점도 저적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의 2배, 15배인 영국과 미국의 중소기업 매출액 상한(2024년 연평균 환율적용)은 각각 941억원(5400만파운드), 641억원(4700만달러)이다. 현재 최대 1500억원도 영국과 미국의 약 두배 수준이다. 이를 1800억원으로 확대하면 그 격차는 더 커진다.

보고서는 “중소기업 매출액 기준 상향은 중견기업의 진입이 가능한 기업이 중소기업자의 지위를 유지하며 보호시장에 머물러 중견기업으로 성장을 정체시킨다”고 우려했다.

중견연은 중소기업 지원정책 방향을 보호와 육성에서 혁신성장으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수많은 중소기업 지원정책에도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부가가치 수준은 주요 OECD 20개 국가 중 19위에 머무르고 있다. 대기업 대비 생산성 격차도 OECD개 31개 국가 중 4번째로 크다. 중소기업 지원사업도 2018년 1422개(21조7000억원)에서 2023년 1646개(35조원)으로 늘었다.

◆기업 성장사다리 구축 차원 논의 = 중견연은 “최근 4년간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중소기업이 평균 0.5% 내외에 그치는 현상의 근본 원인을 숙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규제는 늘고 지원은 크게 줄어드는 고질적인 상황은 방치한 채 중소기업에 머물 수 있는 조건만 계속 완화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 전문가로 활동하는 현직 대학교수 A씨도 “중소기업 범위기준 확대는 피터팬 증후군을 양산할 수 있다”며 “정부지원책에 의지하려는 일부 기업을 위한 개편안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A씨는 “중소기업의 혁신성장을 도모하고 기업 성장사다리 구축 차원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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