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박백범 전 교육부 차관
“AI는 도구일 뿐, 윤석열정부 교육 현장 너무 몰랐다”
윤석열정부 교육정책 평가와 전망
유보통합·늘봄학교, 현장부담 줄이는 대안적 접근 필요 … “지역 대학 살리려면 공유대학 모델 필요"
박백범 전 교육부 차관이 16일 충북 청주 오송역 인근 커피숍에서 윤석열정부 교육정책을 전방위적으로 비판했다. 박 전 차관은 “현장을 너무 몰랐다”며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유보통합, 늘봄학교, 국가교육위원회, 교육발전특구, 글로컬대학 등 윤 정부 주요 교육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전 차관은 특히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AI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도구”라고 강조하며 교육 본질을 잃지 않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를 통해 문제행동의 근본원인을 찾아 맞춤형 처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해서는 “여당과 야당이 대립하도록 구조가 잘못 짜여 싸움질만 하는 조직”이라고 비판했다. 교육발전특구와 글로컬대학 정책은 “불균형 성장의 변형”이라고 지적하며, 지역대학 발전을 위해 중앙정부 주도가 아닌 지역중심 거버넌스와 공유대학 모델이 필요하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박 전 차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교육공약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현 정부 정책과 차이점을 설명했다.

●윤석열정부의 교육정책을 평가한다면?
교육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업이다. 옳고 그름을 생각해야 한다. 학원은 옳고 그른 건 필요 없이 문제풀이만 해도 되지만 교육은 옳은 방법으로 가르쳐야 한다. 방향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방향이 맞다고 해도 너무 급하게 추진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 도입 추진이 대표적 사례다. 현장을 너무 몰랐다.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이면 될 거로 생각하는 게 윤석열이 계엄 선포하는 것과 다름 없어 보인다. 충분한 시범운영 없이 전국 확대를 서둘렀고 교육 효과성에 대한 객관적 실증 연구도 부족했다. 당장 로그인 오류와 접속 지연 문제가 반복되면서 수업 차질을 빚고 있다. 감사원 감사도 시작됐고 AIDT를 개발한 교과서 업체들의 소송전도 예고된다.
●유보통합(유치원과 보육서비스의 통합)에 대한 평가는.
윤석열정부에서 유보통합은 행정부, 그러니까 보건복지부 권한을 교육부로 넘긴 것밖에 없다. 유보통합한다고 했지만 행정부처 통합 외에 한 게 뭐가 있나? 그후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설계를 잘못했다. 기획단(TF)을 꾸려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복지부 교육부 행안부를 조정해 처음부터 디자인을 다시 해야 한다. 유치원과 보육서비스의 질을 높여놓고 다음에 단계적으로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유아 교육·보육비 지원을 5세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교육·보육의 질을 높이는 정부 책임형 유보통합이 추진돼야 한다.
●늘봄학교에 대한 의견은.
방향은 좋은데 문제는 학교부담이 엄청나게 늘었다. 선생님들이 힘들어한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학교마다 담당자를 따로 뒀지만 한계가 있다. 담당자가 정규직이라고 하지만 책임질 수 없고 행정실무사 같은 역할이다. 일부 교육청은 교사 중에 연구사를 두는 일도 있는데 그 사람은 선생님들에게 일을 맡긴다. 선생님들은 본연의 업무는 가르치는 것인데 돌봄업무를 하라고 하니 불만이 쌓인다. 국가 지자체 학교가 협업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학교가 돌봄을 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가 담당해야 한다. 음악 미술 체육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방과후 수업을 꾸려나간다. 학교가 책임지는 게 아니라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지역사회에서 함께 담당하는 것이다.
●예산이 더 필요하지 않나.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울 때 병설 유치원이 끝나면 방과후 학교로 유치원 교사가 인계하고 퇴근했다. 돌보는 사람들은 선생님이 아니라 그것만 전담하는 사람들이다. 교육청에서 비용 부담을 해야 한다. 퇴직 교원 등이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 초등학교를 담당하고 교육청 지원을 받는 방식이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들과 교장은 퇴근하고 이들이 책임진다. 기존 방과후 학교는 여기에 흡수된다.
지금보다 예산이 더 들 수 있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동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런 곳에 예산을 써야 한다. 늘봄학교는 학부모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책이지만 돈을 안 들이려고 선생님을 갈아 넣는 방식은 문제다. 교육과 돌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지만 정부는 가능하면 교육과 돌봄을 구분해 줘야 한다.
●AI디지털교과서에 대한 의견은.
디지털이든 AI든 도구다. 교육이 잘 되기 위해서 또는 앞으로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들이지 AI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거기에 빠져서 인간이 디지털에 도구화되는 것이다. 그걸 바로잡겠다는 것이지 AI 교육을 소홀히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더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본질이 중요하지 수단이 본질을 치환하는 일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생맞춤통합지원체계에 대한 평가는.
입법도 됐고 내년에 실행이 된다. 일선 교육청들이 이 부분에 집행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의미를 키워야 한다. 우리가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결과에 따라 처방을 받는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부적응 현상이나 문제행동을 보이면 학습 크리닉 같은 곳에서 정신적 문제인지, 난독증 문제인지, 가정환경에서 오는 문제인지 진단해야 한다.
옛날에는 노련한 선생님이나 숙련된 상담 선생님이 문제를 찾아냈다. 지금은 시스템으로 해야 한다. 맞춤형 지원센터에 가서 원인을 찾아내야 맞춤형 처방을 할 수 있다. 학생에 대한 검사 상담 처방 치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정착되면 학교현장에서 선생님들이 굉장히 편안해진다. 어떤 아이가 문제행동을 보이면 상담을 의뢰하면 된다.
●입시개혁에 대한 견해는.
입시는 항상 찬반이 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논쟁이 많다. 진보 보수를 떠나 논쟁점이 많은 주제다. 그래서 대선 때마다 공약을 내놓지 않는다. 윤석열정부 들어 입시를 5등급으로 바꾸고 상대평가로 하는 등 변화를 줬는데, 그것은 원래 대선 공약에 없었다. 그것이 고교학점제와 맞지 않아 엇박자가 생겨 고교학점제가 무너져 내렸다. 전교조나 교원노조, 교총에서는 고교학점제 폐지를 요구하고 일부 선생님들도 고교학점제로 가야 하는데 존폐를 두고 논쟁이 있다. 입시는 장기적으로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다뤄야 할 문제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일을 할 수 없는 조직이 됐다. 구조를 잘못 짰다. 여당 야당이 대립하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국회 추천한 사람들이 여당에서 몇 명, 야당에서 몇 명 이렇게 돼 있다. 이대로는 아무 일도 못 하고 싸움만 하는 조직으로 전락했으니 바꿔야 한다.
●교육발전특구에 대한 평가는?
박정희정부 때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불균형 성장 이론으로 될 놈만 키웠다. MB정부 때도 자사고 만들고 특목고 만들고 그런 식이었다. 특구도 똑같다. 함께 잘 되게 해야 한다. 몇 개만 선정해 거기에 권한도 주고 돈도 주고 "너희 잘해 봐, 잘 되면 다른 데도 따라올 거야"라고 한다. 거기 못 들어간 것을 "네 탓이나 하고 살아야지"라고 한다. 서울대 의대도 마찬가지고 과학고나 영재고도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다녀 길러진 아이들이 간다. 자율형 공립고 자율형 사립고도 특별한 학교다. 그런 식으로 하면 참 얄팍하다.
●글로컬대학, 대학 혁신 생태계 라이즈(RISE) 사업에 대한 평가는?
지역 재정 지원은 중앙부처가 아니라 지역이 담당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앙부처에서 디지털 인력 양성에 특정 지역에 100억원을 지원하면 거점국립대는 석박사 과정을, 지역사립대는 석사 과정을, 전문대는 공장 숙련공을, 특성화고는 공장 노동자를 양성해 지역 현장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글로컬대학은 잘 나가는 몇개 대학을 집중지원해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지역에는 그 대학만 있는 게 아니다. 전문대도 있고 특성화고도 있다. 함께 역할 분담을 해 지역거점 국립대에 교육용 기자재가 있으면 사립대 학생이 와서 실험할 수 있도록 공유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공유대학을 만들어 지원된 예산을 같이 쓸 수 있게 하고 역할 분담을 통해 기능을 나눠야 한다.
●지역 대학 발전을 위한 대안은?
참여정부 때 누리사업이 있었는데 처음 제안은 지역마다 재정을 지원하는 재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시도지사도 돈 내고, 교육감도 돈 내고, 지역 기업도 필요하면 돈을 내서 자금을 모아 연구 중심대, 인력 양성대, 숙련공 양성대에 쓰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게 원래 리스(RIS)사업 방향이었다.그런데 글로컬대학은 예산이 편중된다. MB 때 세계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 만든다고 한 것과 글로컬대학은 같은 맥락이다. 당시 예산을 지원해 외국 유명 교수들 초빙해 오라고 했는데, 결국 국적은 미국인데 한국인 교수인 ‘검은 머리 외국인’만 왔다. 지금 글로컬대학이나 라이즈(RISE)는 중앙정부에서 주는 것이다. 지역문제 해결은 지역에서 하도록 해줘야 한다.
또한 평가 없이 그냥 나눠주면서 돈이 유용한 데 쓰이지 않는다. 이런 사업에는 계약과 평가가 중요하다. 계약을 맺고 사후에 제대로 된 평가해 안됐으면 돈을 회수하거나 잘됐으면 더 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 대신 지역에서 결정 권한은 그 지역 사람들이 행사해야 한다. 지금은 중앙에서 몇조, 몇천억을 준다는 중앙 시각만 있다. 또한 총장도 지자체장도 교육감도 한발 물러서 지역에 재단 같은 것을 만들어 지역 전문가들이 논의해 지원하게 해야 한다. 지자체장도 전권을 행사하려 하지 말고 거버넌스를 제대로 짜야 한다.
●윤 정부에서 대학사무국장에 교육부 직원이 갈 수 없도록 한 것은?
대학사무국장 문제는 교육부 직원은 무조건 안되게 막은 것이다. 그것만 풀어주면 된다. 교육부 직원이나 교수나 일반 기업 경험자 등 대학이 공모제로 원하는 인재를 쓰면 된다. 교육부를 의도적으로 배제할 필요는 없다. 일부 대학은 교육부 출신을 원해 사무국장 임명하지 않고 비워두고 있다. 대학 형편에 맞춰서 하면 된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