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선거’…대선공약집, 역대 가장 늦게 나오나

2025-05-21 13:00:22 게재

이재명 “27일 이후”, 김문수 “26일”

재외투표·TV토론, 공약집 없이 진행

박근혜 ‘9일 전’ 기록 갈아치울 듯

6.3 대선을 13일 남겨 놓고 있지만 거대양당을 비롯한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 4명은 공약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번 대선은 역대 가장 늦게 공약집을 내는 선거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일주일 전에야 낼 가능성이 있어 앞으로 상당기간 깨기 어려운 기록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경쟁’을 요구하면서도 구체적인 정책자료집을 내지 않고 있는 것은 ‘비판’과 ‘검증’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 재외투표소에서 투표하는 유권자 20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코리안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제21대 대통령선거 재외투표소에서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21일 조승래 민주당 선대위 공보단장은 “다음 주 공약집 발간을 목표로 해서 막바지 준비 중으로 안다”며 “27일부터 29일 사이에 발간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구체적 (공약) 내용에 대해서 공개하기는 어렵고 현재 흘러나오는 내용들은 확정돼서 활자화되기까지는 확정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조 단장은 지난 16일엔 “집대성한 정책공약집은 21일 정도 지나면 발간된다고 들었다”고 했다. 일주일정도 발간 일정이 늦어진 셈이다. 늦으면 사전투표일에 공약집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본투표 5일전이다.

국민의힘은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책자 형태의 공약집은 빠르면 사전투표 3일 전, 본투표 8일 전인 26일에 낼 계획이다. 이 또한 더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재외유권자는 공약집 없이 투표를 하게 됐다. 재외투표는 20~25일까지 진행한다. 유권자 25만 여명이 118개국 223개 투표소에서 투표하는데 사실상 공약집을 확인조차 못한 셈이다. 지역, 주제별도 따로따로 내놓은 ‘쪽 공약’만 공개됐다. 26~29일까지 이뤄지는 선상투표 역시 공약집을 보지 못한 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3차례의 TV토론 중 최소 2차례는 공약집 없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3차 토론이 27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TV토론이 ‘무공약집 토론’이 될 수도 있다. 사실상 정책토론과 상호 검증이 제한되는 셈이다.

이 후보와 김 후보의 공약집 발간일은 정책공약집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2002년 16대 대선 이후 가장 늦은 시점이 될 전망이다. 가장 늦게 정책공약집을 낸 기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갖고 있다. 그는 2012년 18대 대선에서 ‘9일 전’에 공약집을 냈다. 같은 대선에서 맞붙었던 문재인 후보는 박 후보보다 하루 빠른 ‘투표 10일 전’에 공약집을 공개했다.

16대 대선에서는 한 달 전에 나왔다. 이회창 후보가 36일전, 노무현 후보가 31일전에 공약집을 내놨다. 이후 17대 대선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20일전, 이명박 후보가 18일전에 공약집을 공개하고는 정책토론에 들어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2017년 19대 조기대선에서는 홍준표 후보가 22일전에 공약집을 공개했다. 문재인 후보는 11일전에 냈다. 20대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16일전, 윤석열 후보가 12일전에 제출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기장이 되려는 사람의 항로(철학과 비전)와 항법(정책 공약)에 대한 검증이 없이 무능한 기장을 선출하게 되면 일순간 추락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며 “누구에게 대한민국을 믿고 맡길 것인가를 유권자들이 합리적이고 현명하게 선택하는 과정이 담보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해 정부 예산의 3분의 1 규모인 250조원 가량의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공약집은 언제 제시될지 모르는 깜깜이 선거가 지속되는 상황”이라며 “이는 유권자의 소중한 알 권리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백지수표를 발행해 달라는 파렴치한 행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책경쟁보다는 정책공개가 중요하고 빨리 공개할수록 조명받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며 “지금은 공약을 늦게 낼수록 유리한 상황이다보니 공약집 발간이 늦어지고 자연스럽게 검증 안 된 공약들이 정부 주요 국정과제로 이어지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고 했다.

한편 한국매니페스토본부는 주요 대선 후보들에게 △종합 질문 △유권자 핵심의제 △핵심공약과 우선순위, 대차대조표(공약가계부) △지역공약 수용 여부 등 4개 분야 36개 항목으로 구성된 질의서를 공개 전달했고 오는 26일 답변서를 분석해 공개할 예정이다.

박준규·김형선·박소원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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