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채 쇼크, 자금이동 신호탄?
20·30·40년물 금리 모두 역대 최고치 급등 … BOJ 테이퍼링·재정불안 우려 겹쳐
20일 일본 채권시장에서 30년물 국채 금리는 3.14%, 40년물은 3.61%까지 상승해 각각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20년물 역시 2.56%까지 급등했다. 상승세가 21일에도 이어지면서 30년물은 3.185%, 40년물은 3.635%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채권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특히 20년물 입찰에서는 평균 낙찰가와 최저 낙찰가의 차이를 의미하는 ‘테일(tail)’이 1980년대 이후 가장 크게 벌어지며 수요 부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번 급등세가 일본은행(BOJ)의 국채 매입 축소(테이퍼링)와 미국의 무역관세에 따른 경제적 위험, 일본의 높은 정부부채(2025년 기준 GDP의 200% 이상)에 대한 복합적 우려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일본은행은 지난 1년간 초저금리 정책을 점진적으로 철회하며 채권 매입 규모를 줄여왔으며, 이번 금리 급등은 그 부작용이 본격화된 신호로 해석된다. BOJ는 현재 시장참여자들을 상대로 테이퍼링의 영향과 리스크에 대한 의견을 수렴 중이며, 일부 금융기관은 BOJ가 초장기물 국채 매입 축소를 당분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금리 급등이 일본 투자자들의 자금을 해외에서 국내로 되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의 펀드매니저 마이크 리델은 “금리 급등은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을 매도하고 자금을 본국으로 송환할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며 “이는 글로벌 채권시장의 장기물 전반에 추가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30년물 국채 금리가 5%를 돌파하며 채권 가격이 하락했고, 달러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일본 채권 금리의 급등에 따라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매도해 달러를 엔화로 환전하고, 일본 국채를 매입하는 흐름이 나타난다면, 달러 약세·엔화 강세로 이어질 수 있고 미국 장기채 금리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
또한 미국과 일본 국채 금리 차이를 이용한 ‘캐리 트레이드’가 확산돼 있는 가운데,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이나 달러 약세가 계속될 경우 마진콜에 따른 강제매도가 이루어지는 등 채권 시장 유동성 경색 우려도 커지고 있다.
캐리 트레이드는 국채 금리가 낮은 나라에서 돈을 빌려, 국채 금리가 높은 나라에 투자해 이자 차익을 노리는 전략이다. 2024년 9월경 엔화-달러 캐리 트레이드는 대부분 청산되었으나 없어진 것은 아니며, 일본-브라질이나 일본-멕시코 간에 캐리 트레이드도 존재한다. 즉, 일본을 넘어 국제 채권시장 전반에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RBC블루베이의 마크 다우딩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일본 재무성은 시장 변동성이 안정될 때까지 장기물 국채 발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계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은 2025 회계연도(2026년 3월까지) 동안 민간 부문이 추가로 약 60조엔의 국채를 소화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특히 일본 생명보험사들이 장기물 매입 비중을 줄이겠다고 밝힌 가운데, 국내 수요 기반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도 시장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시게루 이시바 총리는 낮은 지지율과 불안정한 연립여당 기반 속에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일부 정치 분석가들은 이시바 총리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감세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며, 이는 일본의 재정 건전성에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