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민주화운동 제대로 기념하자
서울 남영동 경찰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재단장했다. 다음달 10일 6.10민주항쟁 38주년 기념식과 함께 개관식이 열린다. 이는 국가적 경사라고 생각한다.
기념관 건립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1호 목적사업이었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제6조 제1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종종 민간단체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2001년 여야 합의로 발의해 통과한 법률에 근거해 설립한 공공기관이다. 따라서 기념관 건립은 국민적 합의로 추진하는 국가사업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부지 선정부터 벽에 부딪혔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맨 처음 후보에 올랐으나 경찰의 완강한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한남동 미8군 휴양소, 덕수초등학교 운동장, 남산 옛 안기부 일부 건물 등 서울 시내에서 거론됐던 여러 장소도 각종 장애와 저항에 가로막혀 좌절됐다. 그 과정에서 마산과 광주 등이 기념관 유치에 나서고 수년간 국회에서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사태도 겪었다.
기념관 건립이 국민적 합의에 기반한 국가적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25년이나 걸린 것은 지금의 우리 민주주의 현주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2.3비상계엄사태부터 6.3대선까지 최근 6개월간 정국상황이 그것을 잘 설명해준다. 최소한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안착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국민적 합의의 국가사업이 25년 걸리다니
윤석열 전 대통령은 불법계엄으로 그것을 파괴했고, 보수진영의 세력이 거기에 동조했다. 지난 5월 10일 새벽 국민의힘 지도부의 기습적인 대선후보 교체 사태는 반민주의 막장 사건이었다. 세계가 부러워하던 한국 민주주의가 바닥까지 후퇴한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숨어 있던 민낯이 드러난 것일 뿐인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12.3비상계엄은 시민의 저항과 국회의 해제 결의로 즉각 저지됐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극우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통령은 탄핵소추됐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기습교체 사태 또한 당원과 지지세력에 의해 ‘민주적으로’ 거부됐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한국 민주주의는 결국 그 꽃이라고 할 수 있는 6.3대통령선거로 다시 피어날 수 있게 됐다.
어지러웠던 지난 6개월의 정국상황을 보면 우리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또 언제든 파괴 또는 후퇴할 수 있는지 경각심을 갖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강한 복원력에 깜짝 놀라게도 된다. K-정치의 역동성이자 K-민주주의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이런 모습은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 과정에도 엿보인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부딪힌 갖가지 장애는 정치적 의지나 대중적 인식 부족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해세력의 저항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결과다. 기념관이 들어선 남영동 대공분실은 박종철 열사가 고문사하고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등 수백명의 민주화운동가가 고문받은 현장이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과 여러 기관의 협력으로 기념관 부지로 확정됐지만 그 후에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경찰은 건물의 원래 도면을 넘겨주지 않았고 박종철 고문치사 장소인 509호 외에는 모든 고문 시설의 흔적을 없애버렸다. 피해자에 대한 자료도 없다며 내놓지 않았다. 자력으로 지하 보일러실에서 도면 등을 찾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퍼즐 맞추듯이 복원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운동사를 조사 연구하다 보면 가장 크게 부딪치는 문제가 가해자 자료다. 경찰 검찰 안기부(중앙정보부)등의 자료는 아예 접근이 안 되고 관련자 증언도 받을 수 없다.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이 25년간 표류한 배경에는 사과나 반성은 물론 진실에 대해서조차 침묵하는 가해자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민주주의 강한 복원력을 증거하는 서사
K-민주주의의 현주소가 위태로운 현 시점의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은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기념관 부지 지하 M1 전시관의 민주화운동 여정은 우리의 취약한 민주주의의 강한 복원력을 증거하는 서사를 보여준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이 K-민주주의의 취약성 극복에 일조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함을 가리킨다. “민주적 사고와 행동이 우리 일상에 깊이 자리잡을 때까지 민주주의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의 말처럼 민주화운동도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이제는 제대로 기념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