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사망사고’ 대선 정치쟁점화
김-이, 중대재해법 실효성 놓고 충돌 양상 … 경찰, 안전수칙 미준수 정황 속속 확인
지난 19일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끼임 사망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을 둘러싼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찰 수사에서 공장측이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소비자들 사이에서 SPC계열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21일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끼임 사망 사고와 관련해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사업주를)구속한다고 사망자가 없어지지 않는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에 다시 한 번 의문을 제기했다.
김 후보는 이날 경기 고양시에서 청년 농업인 모내기 및 새참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중대재해처벌법의 무용성을 거듭해 주장했다. 그는 “SPC 회장은 구속되지 않았나. (사업주를)구속한다고 사망자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우리 다 안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일어났을 때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이다. 앞서 김 후보가 지난 15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조찬 강연 축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제가 결정권자가 될 때는 반드시 이런 악법이 여러분을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도록 고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를 두고 2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SPC삼립 사망사고를 언급하며 “같이 합의해서 사인해 놓고 악법이라고 주장하면 되겠나”라며 김 후보를 비판했다. 이어 이 후보는 “사업주 몇 사람이 폐지하면 자기 편할 것 같으니 폐지해달라고 한다고 그쪽 편을 들면 되겠느냐”라고 지적했다.
◆SPC 엄벌에는 한 목소리 = 논란 속에서도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고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후보는 2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과거 SPC계열 공장의 사망사고를 언급하면서 “당시 회사 대표이사가 유가족과 국민 앞에 사과했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또 유사한 사고가 반복 발생한 데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면서 엄중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민주당 상임총괄선대위원장인 박찬대 원내대표도 21일 사고를 두고 “정부는 이번 사고를 엄정하고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김 후보도 이날 SPC삼립 사망사고에 대해 “자동 안전장치나 시설을 할 수 있는데 반복적으로 사고가 나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며 “책임은 안전관리자와 사장에게 있다. 엄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경찰 수사에서 공장측이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근로자를 위험에 내몬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1일 경기 시흥경찰서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크림빵 생산라인의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서 윤활 작업을 하던 A씨의 상반신이 컨베이어에 끼이면서 발생했다.
냉각 컨베이어 벨트는 높이가 3.5m 정도로, 설비 프레임이 계속 돌아가면서 갓 만들어진 뜨거운 빵을 식히는 작업을 한다. 냉각이 끝난 빵은 다음 공정으로 옮겨져 크림이 얹어지고, 포장지에 싸여 완제품으로 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냉각 컨베이어 벨트의 원활한 회전을 위해서는 식품용 윤활유인 푸드 그레이드 윤활유를 기계 바깥쪽에 별도로 장착된 주입구를 통해 넣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자가 윤활유를 주입구에 넣으면, 자동살포장비가 윤활유를 컨베이어 벨트의 체인 부위에 뿌리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동살포장비가 있는데도, A씨는 기계 밑으로 기어들어 가서 내부의 좁은 공간에서 수동으로 윤활유를 뿌리던 중 컨베이어 벨트와 기둥 사이에 끼이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경찰, 동료 직원 진술 확보 = 이와 관련 경찰은 공장측이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아 사고를 막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냉각 컨베이어 벨트는 윤활유 자동살포장비가 있어서 근로자가 직접 윤활작업을 할 필요가 없는 데다, 만약 작업의 필요성이 있다고 해도 기계 작동을 멈춘 상태에서 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A씨의 동료 근로자들로부터 생산라인을 풀가동 할 때는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나 기계 안쪽으로 몸을 깊숙이 넣고 직접 윤활유를 뿌려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또 사고가 난 기계의 생산 연도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나, 사용한 지 오래돼 상당히 노후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경위를 수사 중인 경찰은 숨진 A씨를 비롯한 근로자들이 그동안 공장측의 무리한 지시 또는 미흡한 사고 예방 조처로 인해 위험에 내몰린 채 일해 온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볼 방침이다.
아울러 문제의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 대한 안전검사는 물론 근로자들을 상대로 한 안전교육이 원칙대로 이뤄졌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가곤 했었다’는 진술이 있어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며 “자세한 내용은 수사 중이므로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사람이 죽는 게 몇 번째냐”며 불매 움직임 = 한편 이번 사고로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SPC 불매 운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는 SPC 계열사들의 브랜드명이 적힌 ‘불매 리스트’가 공유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사람이 죽는 게 몇 번째냐. ‘피 묻은 빵’이냐” “직원의 목숨이 걸린 안전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 회사의 음식을 사먹어도 정말로 마음이 괜찮은가” 등의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SPC 불매운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평택 SPL 공장 사망 사고로 불매운동이 번졌을 당시 허영인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면서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의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잇따른 사고를 막지 못했다.
지난 3년간 SPC 계열사에서는 3건의 사망사고와 5건의 부상 사고가 발생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