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S해운 ‘세금부과 방치’ 위헌성 심리
‘위헌’ 판단→국세청 ‘묵묵부답’, 행정부작위 소송
헌재 ‘권리 구제’ 여부 주목 … 유사사건 5건 계류
헌법재판소가 KSS해운이 세무 당국을 상대로 낸 헌법소원 사건(행정부작위 위헌 확인)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하고 본격 심리에 착수해 그 결과가 주목된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재심 판결이 수년째 지연되고 국세청 역시 과세 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하지 않는 상황에서, 헌재가 전원재판부 심리를 통해 신속한 권리 구제에 나섰다는 데 의의가 있다.
◆행정부작위, 기본권 침해 여부 쟁점 =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KSS해운이 4월 14일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국세청의 직권 부작위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여부를 본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며 이달 13일 전원재판부 회부 결정을 내렸다.
전원재판부 회부는 사건의 중요성 또는 기존 판례 변경 가능성이 인정되는 경우 내려지며, 단심제로 운영되는 헌법재판 절차상 사실상 ‘최종 결론 도출’을 위한 본심리에 해당한다. 이 사건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이 법원의 재심 사유가 되는지, 헌재가 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이유로 법원의 판결을 취소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그간 헌재와 법원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워 온 지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KSS해운 사건의 결론이 나올 경우, 같은 쟁점으로 계류 중인 다른 사건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특히 헌재가 KSS해운이 제기한 헌법소원을 인용할 경우 대법원과 재판 확정 권한을 둘러싼 다툼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의 시작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 조세감면규제법은 상장을 전제로 기업에 조세감면 혜택을 줬다. KSS해운은 이를 근거로 1989년 자산재평가를 받고 법인세를 감면받았지만 상장기한인 2003년까지 상장을 완료하지 못했다.
당시 조세감면규제법 부칙은 기한 내 상장을 하지 않거나 자산재평가를 취소한 경우 법인세를 다시 계산해 부과하도록 규정했고, 세무당국은 이를 기준으로 2004년 1월 약 154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이후 국세심판원의 일부 감액 결정으로 세액은 약 65억원으로 줄었다.
◆재심 놓고 법정 공방 = KSS해운은 법원에 과세처분 일부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도 냈다. 대법원은 2011년 4월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는데, 헌재는 2012년 과세의 근거가 된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이 실효됐다는 이유로 한정위헌 결정을 했다.
KSS해운은 한정 위헌 결정에 따라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으나, 대법원은 2013년 “한정위헌(특정 해석만 위헌이라는 제한적 판단) 결정은 재심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2022년 7월 “헌재 결정의 기속력을 무시한 재판”이라며 재심 기각 판결을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KSS해운은 같은 해 8월 대법원에 재심을 다시 청구했지만, 현재까지 선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KSS해운은 또 국세청에 법인세 부과 직권 취소 및 환급 요청을 했으나 별다른 조치가 없자,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냈다. 권익위는 지난해 7월 “부과 처분을 취소하되, 환급가산금은 지급하지 않는 방안을 고려하라”는 취지로 의결했다.
그럼에도 국세청이 세금 부과를 취소하지 않자, KSS해운은 세무 당국을 상대로 ‘직권 취소 거부’ 자체가 헌법상 권리 침해라는 취지의 이 사건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헌재가 KSS해운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경우, 이와 비슷한 재판취소 사건들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헌재는 “이 사건과 함께 2022년 7월 21일 선고된 GS칼텍스, 롯데DF리테일 재판취소 사건의 경우에도 재심 청구가 미선고돼 권리구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사건 모두 헌재의 재판취소 결정이 재심 사유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다. 헌재는 이외에 제주특별자치도 통합영향평가위 심의위원 중 위촉위원이 수뢰죄 주체인 공무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다투고 있는 남 모씨 등 2건도 같은 문제로 재심 청구에 대한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소원 제도 도입 논란 = 한편 헌재는 최근 대법원과 재판 확정 권한을 두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앞서 헌재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재판소원 제도 도입에 찬성 의견을 냈다. 재판소원 제도는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헌재는 법원의 재판이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실질적 권리구제의 한계가 있으며, 이에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재판소원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헌법에 대한 해석, 적용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지만, 개별 사건의 재판에 있어서 법률 해석 적용은 법원의 판사가 하는 것이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사실상 4심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대법원의 최종심 기능이 헌재로 넘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