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기업, 미국무역대표부 ‘입항수수료’ 대응 골몰
불똥 튄 현대글로비스·유코카캐리어스 “정부와 대책 협의”
소형 컨테이너·벌커선은 예외 … 선박법 등 변수로 혼돈
현대글로비스와 유코카캐리어스 등 국내 자동차운반선사들이 미국에 입항하는 자동차운반선에 입항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미국무역대표부(USTR) 조치에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 해운협회 등과 계속 협의하고 있다.
USTR은 지난달 중국의 해양지배에 대응하고 미국조선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중국산 선박 및 중국선사 대상 항만수수료 부과 계획’을 발표하면서 자동차운반선의 경우 중국 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에서 건조한 선박도 수수료 부과 대상에 포함했다. 중국 조선·해운을 견제하겠다며 시행하는 조치에 자동차운반선 제재 조항이 예고없이 끼어든 것이다.
박종대 유코카캐리어스 이사는 22일 “세계 해운시장에서 미국에서 건조한 자동차운반선은 없다고 보면 된다”며 “모든 자동차운반선사들의 문제여서 우리도 해양수산부 해운협회 등과 함께 대응책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원민호 한국해운협회 이사도 “자동차운반선 시장은 한국 일본 스웨덴 3국의 비중이 크다”며 “해운협회는 일본 스웨덴 선주협회와 함께 공동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컨테이너와 건화물선(벌커선) 등을 운영하는 선사들은 USTR이 처음 예고했던 조치보다 입항수수료를 완화하면서 한숨 돌렸지만 미국의 관세조치, 미 의회가 4월 하순 다시 발의한 선박법등과 맞물려 해운·조선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일부 선사들은 소형 컨테이너선과 벌커선은 중국에서 계속 건조하는 방안도 진행한다.
◆중국선박·선사 겨냥한 USTR 입항수수료 = 미국무역대표부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중국기업이 소유·운영하는 선박 △중국기업이 운영하지는 않지만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 △미국 아닌 외국에서 건조한 자동차운반선 등이 미국 항구에 입항할 때 별도의 수수료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입항수수료는 발표 당일부터 180일 뒤인 10월 14일부터 부과한다.

부과대상은 세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우선 중국선사가 운영하는 선박은 톤당 50달러의 입항 수수료를 내야 하고 USTR은 이를 내년부터 매년 30달러씩 올려 2028년 기준 140달러(약 20만원)까지 올릴 예정이다. 중국기업이 운영하지는 않지만 중국에서 건조한 선박의 경우 톤당 18달러에서 2028년까지 33달러로 인상된다. 이 경우 톤 단위가 아닌 컨테이너 기준으로 수수료를 낼 수도 있다. 컨테이너 1개당 120달러에서 시작해 2028년 250달러까지 늘어나는 식이다.
예외는 있다. 중국에서 건조한 선박이어도 미국 기업이 소유하거나 화물이 없는 선박, 컨테이너선의 경우 4000TEU 이하 등 특정 규모 이하 중·소형 선박은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벌커선은 5만5000DWT(중량톤수) 이하는 수수료 부과대상에서 제외된다. 단일화물의 경우 8만DWT 이하는 입항세가 없다. 입항수수료는 선박당 연간 5회를 한도로 부과하고, 여러 항구에 기항해도 첫번째 기항하는 항구를 기준으로 부과한다.
마지막으로 미국 아닌 외국에서 건조한 자동차운반선은 차량 1대를 운반할 수 있는 공간단위(CEU)당 150달러를 부과한다. 단계적 인상 계획은 없지만 연간 수수료 부과 횟수 제한도 없다. USTR 조치는 2단계에 걸쳐 시행될 예정이다. 1단계는 2028년까지 선박당 입항수수료를 부과하고 2단계는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에 적용한다. 2단계 조치는 2028년 4월 17일부터 미국 LNG 수출 일부는 미국산 선박 사용을 의무화했다. 2028년부터 연 1%씩 늘려 2046년까지 15% 비중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글로벌 선사들 선박도입 전략 변화시킬 변수 =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난달 ‘USTR 입항수수료 부과조치의 해운업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USTR 조치가 글로벌 선사들의 중장기 선박도입 전략을 변화시키는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조선소는 상위 10대 조선소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세계 최대 조선능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해운산업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신조발주량의 약 48%를 중국이 수주하고 있으며 이는 실제 선대 구성에 반영돼 있다.
선종별로 보면 컨테이너선의 경우현존선 기준으로 중국산 비중은33.3%에 달하며 현재 발주된 선박 중 66.2%가 중국조선소에서 건조할 예정이다. 건화물선은 현존선 기준 41.1% 발주선 기준 63.4%가 중국산이며 유조선은 각각 20.6%, 65.5% 수준이다. 전체 평균으로 보면 세계 해운시장 선복량의 26.1%가 중국산 선박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발주돼 향후 인도 예정인 선박을 포함할 경우 중국산 선박의 시장점유율은 57.7%에 이른다.
해진공은 “발주기준으로 보면 중국산 선박비중은 대부분의 선종에서 60%를 초과하고 있어 향후 인도 예정인 선박에 대한 항만수수료 적용 여부는 글로벌 선사들의 중장기 선박도입 전략을 변화시키는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해진공은 “발주한 선박이 인도되기 전이라도 제재 부담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운시장에서 영향과 업계 대응은 선사가 화주에게 운임을 전가하는 단계, 화주가 소비자에게 가격을 전가하는 단계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컨테이너선 시장은 대형 선사들이 과점구조를 이루고 있어 선사들이 운임을 동조화해 비용을 화주에게 전가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이 때문에 중국산 선박에 대한 운임인상뿐만 아니라 비중국산 선박의 운임까지 동반상승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해진공은 분석했다.
해진공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선사의 비용구조와 무관하게 운임이 비슷하게 인상된 사례가 있다”며 “이러한 흐름이 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건화물선 시장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항로에 투입되는 대부분의 건화물선은 입항수수료 면제기준에 해당(5만5000DWT, 단일화물 8만DWT)돼 USTR 제재가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선사들이 소형 선박을 중국에 발주하는 문제는 여전히 신중론이 강하다. 아시아 역내(인트라 아시아) 서비스를 하는 중형 해운사 관계자는 “USTR 입항수수료 적용에서 예외로 분류됐던 소형 컨테이너선이나 벌커선을 중국에서 발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지난달 하순 미 의회에서 중국산 선박에 대한 제재방침이 포함된 선박법이 다시 발;의되면서 중국 발주는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해운 조선산업 부흥을 바탕으로 미국의 해양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선박법은 바이든정부에서 트럼프정부로 이어졌다.
민주당의 마크 켈리 상원의원, 공화당의 토드 영 상원의원 등 4명의 민주·공화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발의한 선박법에 대해 미국 내 해운·조선산업계는 즉각 지지의사를 발표하며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미국 해운조선 전문미디어 지캡틴에 따르면 마크 켈리는 법안 발의 후 “수십년간 방치돼 온 조선산업을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며 “선박법은 미국의 조선 및 해운산업을 부흥시키고 중국의 해양지배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야심찬 시도”라고 강조했다.

◆“자동차운반선 시장 부담이 가장 클 것” = 자동차운반선은 직접 타격을 받게 됐다. USTR이 중국산 선박을 겨냥하며 처음 예고한 입항수수료에는 없었지만 공청회 등을 거치며 최종 확정한 입항수수료에 포함하며 다른 선종보다 강한 제재 방안을 담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미국이 해외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수입하지 않고 자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해진공은 자동차운반선 시장이 USTR 제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선종으로 평가했다. 자동차운반선 업계에 따르면 세계 시장에서 현재 운항 중인 자동차운반선 800척 중 미국산 선박은 1척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건조한 자동차운반선이 아니면 모두 입항수수료를 부과한다. 해진공은 “지난해 미국 입항 기준으로 95%의 자동차운반선이제재 대상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자동차 6500대를 운송할 수 있는 6500CEU급 선박 기준으로 항차당 약 97만5000달러(약 13억6000만원)의 입항수수료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모든 자동차운반선이 영향을 받게 돼 해양수산부 등과 함께 대응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해진공은 자동차운반선시장은 완성차 제조사와 장기·고정계약을 맺는 구조가 일반적이고, 완성차 가격구조가 쉽게 변하지 않는 특성을 보여 단기적으로 수수료 부담을 화주에게 전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자동차 최종 소비자 가격 대비 수수료 부담액이 작기 때문에 수수료가 완성차가격에 반영될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도 내놨다.
유코카캐리어 관계자는 “10월 14일까지 시간이 있으니 어떻게 하면 피해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고 업계는 공동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며 “추가발생하는 물류비용에 대해 화주와 어떻게 나눌 것이냐 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