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리튬직접추출’, 중국 독점 깰까
제2셰일혁명 될지 관심 … FT “기술 검증, 비용 인하, 중국 저가공세 등 난제도 많아”
약 1세기 전 미국 아칸소주 남서부 엘도라도 인근 소도시 스맥오버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대대적인 시추 열풍이 불었다. 미국이 글로벌 에너지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한몫했다. 전성기 이 마을엔 50개 이상의 석유회사가 진출했다. 당시 세계 최대 가동 유전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수십년간 석유 생산량이 급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 “이제 탐사기업들은 스맥오버에서 새로운 자원을 찾아나섰다. 전기차와 스마트폰, 방산장비 등에 사용되는 충전식 배터리 핵심원료인 리튬”이라며 “지하 염수에서 직접 리튬을 추출하는 신기술이 제2의 셰일혁명으로 등장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아칸소주와 인접 주를 가로지르는 지하염수층엔 고농도 리튬이 함유돼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아칸소주 남서부 지역에만 최대 1900만톤의 리튬이 매장돼 있다”고 추정했다.
엑슨모빌과 옥시덴털 페트롤리엄, 에퀴노르 등 12개 기업이 이 지역에서 리튬 염수 채굴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리튬직접추출(DLE)’ 기술을 시험중이다. 이 기술은 인공연못을 만든 뒤 물을 증발시켜 리튬을 추출하는 기존 방법보다 더 신속하고 환경에 덜 해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관련업계는 이 기술을 통해 중국이 지배하는 리튬배터리 공급망을 허물 수 있다고 본다.
‘스탠더드리튬’ 공동창립자이자 지질학자인 앤디 로빈슨은 “20년 전 셰일가스혁명이 미국 석유산업을 뒤바꾼 것처럼 DLE 기술은 미국 리튬산업과 경제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스탠더드리튬은 노르웨이 에퀴노르와 함께 엘도라도 근처에서 15억달러 규모 프로젝트를 개발중이다.
트럼프정부도 핵심광물 생산을 우선순위에 올리며 적극 나섰다. 미정부는 지난달 스탠더드의 리튬시범공장을 신속허가절차 대상 10개 핵심광물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선정했다. 앞서 바이든정부도 스탠더드 프로젝트에 2억2500만달러 보조금을 지급했다.
리튬, 아칸소주 일대 최대 1900만톤 매장
20세기 대부분 리튬은 제한된 용도 때문에 소규모산업에 머물렀다. 주로 윤활유나 핵탄두, 신경안정제 약물로 사용됐다. 그러다 1990년대 초 일본 소니가 리튬이온배터리를 상용화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에너지연구기관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2024년 전세계 리튬 수요는 약 120만톤으로 2020년 대비 3배 늘었다. 2050년 리튬 소비량은 580만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수요를 대기 위해 호주와 중국의 리튬생산업체들은 지난 10년간 암석채굴을 지속 확대했다. 중남미에서는 리튬염수추출을 진행하고 있다. 3개 지역이 전세계 리튬채굴산업의 80% 이상을 지배한다.
리튬암석채굴은 다른 금속생산 과정과 비슷하다. 스포듀민 등 광석을 채굴한 뒤 분쇄하고 화학적으로 처리해 리튬을 분리한다. 염수추출법은 리튬이 풍부한 염수를 대형 인공연못으로 끌어온 뒤 물을 증발시켜 농축 리튬염만 남긴다. 보통 덥고 건조한 지역에서 이뤄진다.
최근까지 미국의 리튬채굴업체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에 걸쳐 있는 ‘리튬 삼각지대’에 비해 비용이 높고 규제는 엄격하며 지질·기후조건이 불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액이나 세라믹재료를 사용해 염수에서 리튬을 직접 추출하는 DLE 기술이 개발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인공연못에서 물을 증발시키는 기존 방법은 리튬을 분리하는 데 최대 18개월까지 걸리지만 DLE 기술은 단 몇시간으로 가능하다. 회수율도 높다.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DLE의 리튬 회수율은 약 70~90%로, 연못증발법의 40~60%보다 높다. 또 더 적은 땅과 물을 사용한다.
아칸소와 루이지애나 텍사스 앨라배마 미시시피 플로리다에 걸쳐 있는 ‘스맥오버 형성층’에서 고농도 리튬이 발견되면서 DLE 기술은 도약의 기회를 얻었다. 이 지역엔 석유·화학 인프라가 탄탄하게 구축돼 있어 신규개발지보다 접근성도 좋다.
아칸소주의 스탠더드 프로젝트지역 지하 2㎞에 위치한 대수층에서 흐르는 염수는 리터당 400㎎ 이상의 리튬을 함유하고 있다. 이는 DLE 추출과정의 비용을 절감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스탠더드 창업자 로빈슨은 “아칸소주 자원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추출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이제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걸림돌도 만만찮다. 전문가들은 미국 리튬기업들이 기존 추출법 대비 DLE 기술의 상업성, 저비용을 앞세운 국가들과의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원자재시장조사업체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의 분석가 페데리코 게이는 “DLE 기술은 향후 10년간 글로벌 리튬시장을 재편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기술적 재정적 전략적 과제를 극복할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광산기업 ‘에라멧’이 세운 중남미 최초 순수 DLE공장은 지난해 말 가동 이후 지연 문제를 겪고 있다. 벤치마크 미네랄의 게이 분석가는 “수년간 테스트와 시범운영을 거쳤지만 현재 생산확대 단계에서 일부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벤치마크에 따르면 리튬 결정화를 방해하는 석유층 염수 내 오염물을 제거하려면 방대한 전처리작업이 필요하다. 게이 분석가는 “염수는 각기 고유한 불순물을 갖고 있다. 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공정확대와 표준화작업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벤치마크는 현재 채굴과 가공, 운송, 로열티를 포함한 석유층 염수 DLE의 비용을 톤당 약 1만달러로 추산했다. 스탠더드의 경우 톤당 약 1만735달러로 봤다. 경쟁력이 가장 높은 연못증발법의 비용(톤당 6000달러)보다 현저히 높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미국 생산업체들은 DLE 기술의 발전과 스맥오버 지역의 높은 리튬농도가 비용을 줄이고 있다고 반박한다. 스탠더드 CEO 데이비드 파크는 “우리는 배터리 품질의 탄산리튬을 톤당 6000달러 미만으로 생산할 수 있는 소수의 DLE 기업 중 하나”라며 “벤치마크 지표엔 자본차입비용이 포함되지만 우리는 그런 비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덕분에 사업파트너와 고객, 은행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리튬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격화되고 있다. 리튬 가공과 배터리 생산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가진 중국은 신규 진입자를 막기 위해 리튬을 의도적으로 과잉공급해 가격을 폭락시켰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탄산리튬 1톤 가격은 약 9000달러로 2022년 11월 최고점 대비 80% 급락한 상황이다.
스탠더드 파크 CEO는 “미국에서 여러 강력한 리튬 프로젝트가 타당성 조사를 완료하고 자금조달을 추진하는 시점에 중국이 리튬을 과잉공급하며 시장을 조작하기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격화되는 글로벌 리튬 경쟁
DLE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는 건 미국뿐 아니다.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에 따르면 전세계 최소 36개의 DLE 프로젝트가 있다. 이 중 13개는 중국에서 추진한다. 중남미 생산업체들은 인공연못으로 수자원이 고갈된다는 우려에 DLE기술로 속속 전환하고 있다. 올해 1월 사우디 국영에너지기업 아람코는 DLE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자국 광산기업 ‘마아덴’과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질좋은 염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옥시덴털은 지난달 아칸소주 일부지역에서 엑슨모빌이 확보했다는 염수소유권에 이의를 제기했다. 아칸소주 석유·가스위원회는 엑슨의 손을 들어줬다. 엑슨은 2030년까지 100만대 넘는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갈 리튬을 생산할 계획이다.
아칸소주는 가구당 중간소득이 약 5만8000달러로 미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아칸소 주의회는 지난달 리튬생산업체와 배터리제조사의 세금을 감면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다. 아칸소 주지사로 트럼프 1기정부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사라 허커비 샌더스는 “해당 법안은 투자를 유도하는 큰 동력”이라며 “전문가들은 아칸소가 세계 리튬공급량의 최대 15%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게 된다면 아칸소뿐 아니라 미국 전체적으로 크나큰 승리”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