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채 5% 돌파, 글로벌 채권 ‘흔들’

2025-05-26 13:00:06 게재

독일·일본·영국 국채 금리도 상승압박···갈수록 커지는 재정 우려

2009년 2월 3일 서울 외환은행 본점에 100달러 지폐가 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글로벌 채권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는 21일(현지시간)부터 5%를 돌파해 안착한 상태다. 이후 22일 하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지출 예산안을 한 표 차로 통과시키며 추가 상승 압력을 키웠다.

채권 금리는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과 급격한 국채 발행 증가가 미 국채의 ‘안전자산’ 지위에 대한 의문을 자극한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23일 유럽연합(EU)에 50% 관세 부과를 경고하며 무역전쟁 우려를 재점화하자, 글로벌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을 회피하고 엔화·유로화 등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나타났다. 블룸버그 달러지수(DXY)는 3주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고, 주가도 동반 하락했다.

이미 미국은 최근 1년간 국내총생산(GDP)의 6.9%에 해당하는 2조 달러를 차입했다. 여기에 혼란스러운 정책 결정과 통화정책 불확실성, 각국과의 무역 갈등이 더해지며, 투자자들은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장기국채에 대해 전반적인 리스크 프리미엄(투자자들이 추가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요구하는 초과수익)을 높이기 시작했고, 그만큼 금리가 올라갔다.

미국의 금리 상승은 다른 국가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의 30년물 국채금리는 5.5%까지 올라 1998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독일 30년물도 3.1%를 넘어 유로존 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했다. 일본 30년물도 3.2%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장기물 금리가 오르면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해 전반적인 자본비용이 커지고, 주가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

금리가 오르는 배경은 단순히 미국 요인만이 아니다. 독일은 3월 인프라·국방 분야에 대한 재정 확대를 발표하며 미래 성장 기대를 높였고, 이에 따라 국채 수익률도 상승했다.

반면 영국과 일본의 경우, 예상보다 높은 물가 상승률이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의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5% 올라 시장 전망치(2.6%)를 훌쩍 넘었고, 일본도 같은 기간 근원물가가 3.5% 올라 최근 2년간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고조되자 투자자들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일 일본 20년물 국채 입찰에서 수요가 크게 부족하여 금리가 치솟았다.

골드만삭스는 “국채 수요의 구조적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역사적으로 장기 국채를 많이 사들이던 확정급여형 연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들은 이미 충분한 고정 수익을 확보해 장기물 투자를 마친 상태라 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각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계속되고 중앙은행은 보유 자산을 축소하고 있어 공급은 줄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시장에서는 “30년물 금리가 5%를 넘기는 힘들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연기금이나 대학 기금 같은 장기 투자자들이 이 수준에서 대거 매수에 나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 마저 국채를 외면한다면, 재정 우려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양현승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