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판결·사법 독립’ 대선 후 결론
전국법관대표회의 “선거에 영향 … 대선 후 속행·의결”
5개 안건 추가 … ‘대법원 판결 유감’ 안건 상정은 처음
사법부 공세 비판 건도 상정 … 민주당, 일부 법안 철회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촉발된 논란에 대해 대통령 선거 이후에 구체적 입장을 내기로 연기했다.
이 후보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해야 한다는 안건이 처음으로 상정됐으며, 정치권의 사법부 공세에 대한 비판 건도 논의하기로 하면서 대선 이후 사법부 독립 등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민주당도 논란이 된 사법부 압박하는 법률 개정안 발의를 일부 철회하기로 하면서 대선 이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26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임시회의를 열었다. 임시회의는 법관대표 전체 126명 가운데 87~90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해 약 2시간가량 진행됐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이날 정오가 지난 뒤 “오늘 임시회의는 종료하고 회의를 대선 이후 속행하기로 했다”며 “속행될 회의에서 상정된 안건에 대해 보충 토론을 하고 의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취재진에 설명했다.
법관대표들은 이날 김예영 의장(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이 상정한 2건의 안건에 관해 논의했다. 공정한 재판과 사법부의 신뢰, 재판 독립 침해 우려 등에 관해 법관대표회의 명의로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할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2개 안건에는 이 후보 사건 대법원 재판 진행에 관해 “특정 사건의 이례적 절차 진행으로 사법 독립의 바탕이 되는 사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것을 심각하게 인식한다”라거나, 최근 법원 안팎의 논란에 관해 “재판독립을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회의에선 현장발의 형태로 안건 5개가 추가 상정됐다.
특히 이 중엔 “특정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전례 없는 절차 진행으로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안건이 포함됐다. 대법원의 이 후보 판결에 대해 사실상 ‘유감’을 표명한 안건이 상정된 것이다. 법관대표회의가 대법원 판결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안건을 상정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이는 법관대표회의 의장인 김예영 부장판사가 회의 전 직권으로 상정한 2개의 안건보다 비판의 수위가 높아 대선 이후 논의 과정에서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대법원의 이 후보 판결 이후 ‘민주당의 사법부 공세’에 대한 우려와 반대를 담은 안건들도 상정됐다.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 및 탄핵, 대법관 증원 등에 대해 ‘사법권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 ‘재판 독립을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법관대표회의는 대선 이후 회의를 다시 열고 김 부장판사가 상정한 2건, 이날 현장에서 상정된 5건 등 총 7건에 대해 보충 토론을 한 뒤 의결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전국 판사가 모이는 법관대표회의가 회의 후 결론을 내리지 않고 다시 모여 회의를 속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이번 대선에서 사법개혁이 의제가 되면서 법원 안팎에서 대표회의에서 의결로 입장을 표명하는 게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며 “구성원들 간에 (이에 관해) 얘기가 있었고 내부에서 속행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의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음 회의는 6.3 대선 이후 원격회의로 열릴 예정이나 정확한 날짜는 추후 의견을 수렴해 정하기로 했다.
한편 민주당은 26일 법관대표회의가 열리기 전 소속 의원들이 추진해 온 비법조인의 대법관 임명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과 대법관을 100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철회하기로 했다.
민주당 선대위는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 메시지에서 해당 법안을 제출한 박범계 의원과 장경태 의원에게 철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박 의원은 대법관 임용 자격에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하며 법률에 관한 소양이 있는 사람’을 추가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또 장경태 의원은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100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에서는 ‘비법조인 임명 법안’을 겨냥해 “‘이재명 방탄 법원, 민주당용 어용재판소’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법치주의 삼권분립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위험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 14일 열린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대법관 100명 법안’에 대해 “재판 지연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법관 수만 증원한다면 국민에게 큰 불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이처럼 논란이 이어지자 이재명 후보는 24일 “(해당 법안들은) 개별 의원들의 개별적 입법 제안에 불과하며, 민주당이나 제 입장은 전혀 아니다”라며 “비법조인이나 비법률가에게 대법관 자격을 주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민주당 선대위가 조기 대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해당 법안들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논의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국면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