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호황에 유럽 4대 굴뚝기업 함박웃음
슈나이더·지멘스·ABB·르그랑·데이터센터 등 AI인프라 구축 강점
전세계적인 인공지능(AI) 호황에 유럽에 뿌리를 둔 전통의 4대 굴뚝기업이 가치를 불리고 있다.
2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022년 11월 오픈AI의 챗GPT가 출시된 이후 프랑스 슈나이더 일렉트릭과 르그랑, 독일 지멘스AG, 스웨덴·스위스 ABB 등 4대 유럽기업들의 가치가 1510억유로(약 236조원) 상승했다. 지멘스의 경우 시가총액이 60% 이상 올랐다. 전통적인 전기장비 제조업체 르그랑의 매출은 2배 증가했다.
FT는 “AI 호황에 따른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으로 유럽 4대 전통기업이 수혜를 입고 있다”고 전했다.
르그랑 최고재무책임자(CFO) 프랑크 르메리는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MS)나 메타처럼 700억~800억달러를 투자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우리는 부품과 장비를 공급한다. 우리 사업은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4개 굴뚝기업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주거용건물이나 산업시설들에 지속적으로 전기장비 등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는 AI 모델이 요구하는 컴퓨팅파워나 게임, 클라우드컴퓨팅, 스트리밍 등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매출원천이 됐다.
시장조사업체 ‘델로로’의 분석가 알렉스 코르도빌은 “AI의 화려한 부분은 미국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그 인프라의 핵심부분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유럽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델로로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에 대한 글로벌 자본지출액은 올해 약 6000억달러에서 2028년 1조달러 이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슈나이더는 지난 2006년 아메리칸파워컨버전(APC)을 61억달러에 인수하며 데이터센터 분야 선도업체로 자리매김했다. APC 인수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보장하는 발전기 제조 등 핵심 전력서비스 시장 진출이 가능해졌다.
슈나이더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터센터 관련 주문은 전체의 약 24%를 차지했다. 2022년 19%에서 증가한 수치다. 슈나이더 기업가치는 1279억유로다. 지난해 프랑스 석유대기업 토탈에너지를 추월했다.
슈나이더의 제품군은 데이터센터 인프라 모니터링 소프트웨어, 서버보관용 랙, 고성능 처리시설의 과열을 방지하는 냉각시스템 등 다양하다. 슈나이더는 지난해 액체냉각 전문업체 ‘모티브에어’ 지분 75%를 8억5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엔비디아 등이 구축하는 최첨단 AI 칩용 서버는 공랭보다 효율적인 수냉시스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슈나이더 CEO 올리비에 블룸은 주주총회에서 “AI는 IT·전기 인프라에 있어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됐다”고 말했다.
르그랑은 슈나이더, 지멘스와 마찬가지로 19세기 창업한 기업이다. 소켓과 케이블 제조사로 유명하다. 르그랑은 지난 수년간 데이터센터로 사업방향을 전환했다. 지난해 매출의 20%가 데이터센터 관련 주문에서 나왔다. 2019년 대비 2배 증가했다. 르그랑은 지난 1년간 10건의 인수합병을 단행했다. 이 가운데 6건은 데이터센터 관련 분야였다.
ABB는 로봇공학부터 발전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지만, 최근 수년간 매출은 데이터센터 분야로 집중되고 있다. ABB가 지난해 전기화 부문에서 수주한 주문량 164억달러 중 데이터센터 관련은 약 15% 정도다. 2022년 약 9%에서 상당히 늘었다.
전기화 부문은 ABB의 연간 매출액(330억달러) 중 절반을 차지한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데이터센터 주문은 연 평균 24%씩 성장했다. FT는 “글로벌 AI 경쟁이 심화되면서 지난 1년간 성장속도는 더욱 빨라졌다”고 전했다.
상대적으로 데이터센터 집중도가 낮은 지멘스는 슈나이더 등 경쟁사들을 추격하기 위해 관련 기술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멘스가 최근 공개한 회계연도 전반기 매출 가운데 데이터센터 몫은 45% 증가한 13억유로였다. 유럽계 자산운용사 케플러 슈브뤼의 애널리스트 윌리엄 매키는 “지멘스는 그동안 다른 분야에 집중했지만, 지난 3년간 데이터센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