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산재에 SPC삼립 ‘사면초가’
시화공장 사고에 중처법 적용 요구 확산
불매운동에 주력상품 생산 중단 결정도
SPC삼립이 잇단 노동자 사망 사고로 ‘사면초가’다.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정치권과 종교계까지 나서 최근 발생한 시화공장 노동자 사망사고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인기 상품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노동자 사망사고에 따른 시화공장 가동 중단 장기화로 빵을 공급받던 관련 업체들 중 일부에서 납품처 다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다이닝브랜즈그룹이 운영하는 패밀리레스토랑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는 식전빵 메뉴인 ‘부시맨 브레드’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부시맨 브레드를 시화공장에서 공급받았는데 납품이 중단돼 대체품을 사용하고 있다.
버거킹은 버거 번(빵) 공급난에 신제품 ‘오리지널스’ 출시 연기를 결정했다. 맘스터치도 지난 24일 빵 물량 공급 제한으로 일부 직영점 배달 주문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공급 중단에 관련 업계 납품선 다변화 고민 = 롯데마트는 최근 매장 빵 매대에 SPC삼립 일부 품목의 납품이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문을 걸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SPC삼립의 공급능력과 제품의 질 등으로 인해 다른 업체로 당장 납품처를 변경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그러나 잦은 사고로 인한 이미지 하락으로 불똥이 튈 우려가 크고, 사고가 나면 당장 생산이 중단되는 경영상 리스크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다변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9일 오전 3시쯤 경기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근로자 A씨가 빵을 식히는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A씨는 기계에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 중이었는데, 상반신이 기계에 끼여 머리 부분을 크게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과 2023년에 이어 SPC 계열 공장에서 또다시 사망자가 나오면서 ‘안전 관리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사고 여파는 불매운동으로 이어졌고 SPC삼립은 주력 상품 중 하나인 크보빵의 생산을 중단하게 됐다.
크보빵은 올해 3월 프로야구 시즌 개막을 맞아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손잡고 출시한 제품이다. 제품에 동봉된 야구선수 띠부씰(스티커)이 화제가 되면서 지난달까지 1000만개가 팔려나갔다.
그러나 사고 이후 불매운동에 나선 일부 야구팬들이 KBO를 향해 “지금 당장 SPC와의 크보빵 콜라보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KBO는 이를 부담스러워했고, 결국 생산 중단으로 이어졌다. 크보빵 생산 중단으로 SPC삼립은 매출과 영업이익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가 전망은 ‘흐림’ = 잇단 사고는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IBK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22년과 2023년 SPC 계열사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 이후, SPC삼립의 6개월 주가 변동률도 -6.0%, -13.1%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부상 및 사망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때마다 투자 심리 위축이 동반됐다”면서 “ESG(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리스크가 기업 가치의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특히, IBK투자증권은 지난주 SPC삼립에 대해 “반복되는 안전사고로 투자심리 회복이 요원한 상태”라며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조정했다. 그리고 목표주가도 7만4000원에서 5만9000원으로 20% 낮췄다.
◆시민단체에 정치권·종교계도 엄벌 한 목소리 = SPC그룹에 이번 사고의 책임을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런 목소리는 시민·노동단체를 넘어 정치권과 종교계 등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과거 SPC계열 공장의 사망사고를 언급하면서 “당시 회사 대표이사가 유가족과 국민 앞에 사과했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또 유사한 사고가 반복 발생한 데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면서 엄중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민주당 상임총괄선대위원장인 박찬대 원내대표도 “정부는 이번 사고를 엄정하고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주장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도 “자동 안전장치나 시설을 할 수 있는데 반복적으로 사고가 나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며 “책임은 안전관리자와 사장에게 있다. 엄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와사회위원회는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SP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허영인 SPC 회장은 반복되는 노동자 사망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하며 계속되는 사망사고에 대해 SPC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허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책임을 물으라고 정부 당국을 향해 촉구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종사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는 중대산업재해가 난 경우 이들을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 수사에 속도 = 한편 경찰은 관계기관과 함께 감식을 벌이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기 시흥경찰서는 27일 고용노동부·국립과학수사연구원·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과 함께 사고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감식팀은 사고가 난 냉각 컨베이어 벨트의 작동 과정 전반을 살펴보며 사망 근로자의 몸이 기계에 끼인 경위를 조사했다. 특히 냉각 컨베이어 벨트가 작동 중 삐걱대는 소리가 나 근로자가 직접 기계 안쪽으로 몸을 넣어 윤활유를 뿌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진술이 나옴에 따라 이에 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에 집중했다.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공장 센터장(공장장)을 비롯한 공장 관계자 7명을 형사 입건해 조사 중이다. 노동부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김범수 대표이사와 법인을 입건했다.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입건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