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백수오’ 부당 “배상 안돼”
소비자원 발표 근거 없어 위법성 판단
대법 “상당 인과관계 인정은 어려워”
한국소비자원의 백수오 관련 보도자료 공표행위가 근거가 없어 위법하다고 판단했지만, 주가하락과의 상당 인과관계는 인정하기 어려워 투자자에게 배상책임은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15일 내츄럴엔도텍 주주 18명이 한국소비자원과 정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일 밝혔다.
내츄럴엔도텍은 백수오 등 한약재 복합추출물을 생산하는 코스닥 상장회사다.
한국소비자원은 2015년 4월 21일 ‘시중 유통 중인 백수오 제품 상당수가 가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내츄럴엔도텍이 판매하는 백수오 관련 제품에서 백수오와 유사하지만 간 독성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는 ‘이엽우피소’가 일부 검출됐다는 취지였다.
내츄럴엔도텍은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고 주가는 폭락했다. 공표 이전 주당 8만6600원에서 주가는 공표 한 달 만에 주당 8550원으로 주저앉았다.
검찰은 소비자원의 의뢰로 내츄럴엔도텍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으나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내츄럴엔도텍 백수오 샘플에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된 것은 맞지만 비율이 3% 정도에 불과하고 회사가 고의로 혼입하거나 이를 묵인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년간 독성시험을 한 뒤 2017년 8월 ‘백수오는 끓는 물로 추출해 섭취하면 안전하고 이엽우피소가 미량 섞이더라도 건강상 위해 우려는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주주들은 소비자원이 충분한 조사와 타당한 증거 없이 의도적으로 원가절감을 위해 이엽우피소를 혼입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공표해 주가가 폭락해 손해를 보았다며 2018년 4월 소송을 냈다.
1.2심은 소비자원의 손을 들어줬다. 소비자원의 발표 행위에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백수오 식품 32종에서 시료를 체취해서 조사한 결과 29개 제품에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됐음을 확인한 이상 소비자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신속하게 알리고 섭취에 주의할 것을 당부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공표를 신속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된다”며 “공표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거나 긴급한 필요 없이 공표를 진행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원심과 결론은 같았지만, 소비자원의 보도자료 발표는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공표 당시 소비자원은 내츄럴엔도텍 제품에 포함된 이엽우피소의 양이나 이엽우피소가 혼입된 경위를 확인한 바 없다”며 “내츄럴엔도텍이 원가 절감을 위해 의도적으로 백수오를 이엽우피소로 대체했다고 단정할 만한 객관적 자료 역시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자원은) 업체 등이 원가 절감을 위해 의도적으로 백수오를 이엽우피소로 대체했다는 취지로 공표함으로써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제품이나 원료 대부분에 인체에 유해한 이엽우피소가 상당량 혼입됐음을 암시했다”며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히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이고도 타당한 확증과 근거가 있다거나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기존 대법원 판례와 소비자기본법에 명시된 기준에 비춰볼 때 소비자원의 당시 발표는 위법하게 허위 사실을 발표한 것으로 평가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취지다.
다만 대법원은 2심 법원이 주주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결론은 틀리지 않았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위법한 허위사실 공표의 피해자는 내츄럴엔도텍 등 회사들로 보아야 하고, 소비자원의 발표와 주가 하락으로 인한 주주들의 손실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엔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다소 부적절해 보이는 부분이 있으나 이 사건 공표 행위와 원고들이 주장하는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한 결론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행정기관의 공표행위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법원은 “행정상 공표는 실명공표 자체가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요청에서 비롯되는 무거운 주의의무와 공권력 행사 주체의 광범한 사실조사능력 등을 고려해 사인(私人)보다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