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선 방화, 참사 막은 ‘대구 교훈’

2025-06-02 13:01:03 게재

불연 내장재, 승무원·승객 신속 대응

현장영상은 전송 안 돼 ··· “사각지대”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이 22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발생했지만 대형 참사로 번지지 않은 것은 과거의 교훈이 반영된 방재대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 영상이 관제센터에 전송되지 않는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했다.

2일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전 8시 43분쯤 60대 남성 원 모씨가 5호선 여의나루역과 마포역 사이 터널 구간을 주행 중이던 열차 안에서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옷에 불을 붙이는 방화를 저질렀다.

이 사고로 원씨를 포함해 23명이 연기 흡입과 골절 등으로 병원에 이송됐고, 129명이 현장에서 처치를 받았다. 차량 1량 일부가 소실되고 2량에 그을음이 발생하는 등 3억3000만원 피해도 발생했다. 당시 열차에는 400여 명이 탑승해 있었다.

화재는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화재 발생 직후 기관사와 일부 승객이 소화기로 초기 진화에 나서 불길을 빠르게 제압했고, 객차 내장재가 불에 타지 않는 불연성 소재였기 때문에 불이 확산되지 않았다. 김진철 마포소방서 과장은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는 진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며 “열차 대부분은 불연재로 되어 있어 쓰레기만 일부 불에 탔다”고 말했다.

시민의식도 빛났다. 일부 승객은 비상통화 장치를 이용해 기관사에게 상황을 전달했고, 다수의 시민이 직접 비상문 개폐장치를 작동시켜 대피했다.

2003년 2월 대구 참사가 인화성 내장재와 비상 방송·안내 시스템 부재, 초기 대응 오판까지 겹치며 사고를 키운 것과는 달랐다. 당시는 처지를 비관한 50대의 방화에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쳤다. 불은 10분이 채 안 돼 차량 전체로 번졌고 희생자 대부분은 연기흡입으로 인해 질식사했다.

사고 이후 서울지하철은 단계적으로 전동차 골격과 바닥재, 객실 의장 등을 불에 타지 않는 소재로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정부는 2006년 6월 전국 지하철 전동차 내장재를 불연성으로 교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비점도 발견됐다.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이번 화재 당시 열차 내 보안카메라(CCTV) 영상은 관제센터에 실시간 전송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위급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양 의원은 “지하철 객실 안에서 범죄가 벌어져도 관제센터는 실시간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각지대 해소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원씨에 대해 현존전차방화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영장실질심사는 2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된다. 원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혼 소송 결과에 불만이 있어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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