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관세 놓고 학계도 열띤 찬반 논쟁

2025-06-04 13:00:05 게재

카스 “관세는 자유시장에 대한 베팅” vs 프레이 “관세로 경쟁 막으면 미국도 영국처럼 쇠퇴”

트럼프 관세정책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로 미국 일자리를 되찾고 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본다. 관세로 인한 단기적인 고통이 있겠지만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경제학자들도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을 내놓으며 논쟁에 나섰다.

상호관세 정책을 설명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FP=연합뉴스

현재 트럼프관세를 옹호하는 대표적 인물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편집위원이자 미국 보수적 싱크탱크 ‘아메리칸 컴퍼스’ 수석경제학자인 오렌 카스다. 그는 지난달 12일(현지시각) ‘관세는 자유무역 아닌 자유시장에 대한 베팅’이라는 FT 기사에서 “각국이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을 속속 채택하면서 ‘비교우위론’이 더이상 기능하지 않게 됐다”며 “트럼프관세는 자유무역이 아닌 자유시장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무역 아닌 자유시장 중요”

그는 “많은 이들이 트럼프관세를 비판하며 지난 수십년간 반복해온 오류를 또 다시 범하고 있다”며 “그들은 경쟁자들이 서로를 자극하고 자본이 가장 효율적인 곳에 흐르는 자유시장을 갖춘 글로벌 경제를 상상한다. 그래야 생산성이 상승하고 가격이 하락하며 모두가 번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카스에 따르면 현실세계 글로벌 시장은 정부지원으로 육성된 국가별 챔피언 기업들이 지배한다. 자본은 가장 큰 보조금을 받는 곳과 가장 착취하기 쉬운 노동력이 있는 곳으로 흘러간다. 이는 자유시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수출주도성장 모델은 개발도상국이 노동력을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고 생산자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며 그 결과물을 다른 나라에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카스 역시 이같은 모델이 전세계 많은 나라에서 놀라운 경제번영을 일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미국에게는 지극히 불리하다고 본다. 그는 “현재의 미국은 수출주도형 경로를 선택할 수 없다”며 “철강에 관세를 부과하든 부과하지 않든,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외국시장에 미국산 자동차를 판매하기 어렵다.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든 부과하지 않든, 미국산 아이폰은 중국시장에 진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카스는 “교역국들이 각자 상대적으로 더 생산적인 분야에 특화돼 서로 이익을 보는 ‘비교우위론’은 수출주도 정책 열풍이 시작되자마자 그 기능을 잃었다”며 “미국은 냉전종료 시점에 첨단기술제품 무역수지에서 약 1000억달러(2025년 달러가치 기준) 흑자를 냈지만 지난해엔 3000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대만이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국이 된 것은 해변에 모래(실리콘)가 넘쳐나기 때문인가” 반문했다.

때문에 미국의 불이익을 교정할 수 있는 처방이 관세라는 게 카스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는 “미국 소비시장은 세계 최대 규모이며 연간 수입액이 수출액을 1조달러 이상 초과한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미국시장에서의 점유율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 동안 성장기회를 가질 수 있다”며 “미국내에서는 관세가 경쟁력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글로벌 관세는 미국 제조업체가 미국내에서 원자재를 조달하고 생산하는 정도에 정확히 비례해 혜택을 제공한다. 외국 생산업체는 생산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정도에 정확히 비례해 혜택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시장규모가 훨씬 작고 무역량이 적었던 20세기에 주요 혁신 대부분을 이뤄냈다. 자유무역이 자유시장을 약화시킨 글로벌화 시대에는 그같은 진전이 훨씬 더뎌졌다”며 “관세 때문에 미국내 자유시장 규모가 줄어들 수는 있다. 하지만 국가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이 지배하는 글로벌 자유무역 시장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현대세계에서 이론상 아무리 이상적이라도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관세는 장기성장에 타격”

이에 대해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사학자 칼 베네틱트 프레이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서 “관세는 결국 미국기업을 파괴할 것”이라며 “과거의 교훈은 명확하다. 관세는 장기성장에 타격을 준다”고 반박했다.

프레이 교수는 “오렌 카스를 비롯한 관세정책 지지자들은 식민지변방이었던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세장벽을 설치한 뒤 대륙을 가로지르는 산업강국으로 변모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토마스 제퍼슨의 1807년 무역금수조치와 1812년 영국과의 전쟁이 미국 산업화의 촉매제가 됐다고 주장한다”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프레이에 따르면 미국의 초기 산업적 성과는 보호무역보다 영국 기술의 불법복제와 유럽인재의 유입에 더 많이 의존했다. 무역금지는 소규모 직물공장의 등장에 기여했지만 무역제한으로 이 공장들의 효율성은 지속적으로 낮았다. 무역이 재개되자 영국산 제품과 경쟁할 수 없어 붕괴했다.

그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일어난 직물 혁명의 진정한 원동력은 해외에서 기술을 습득해 가져온 사람들이었다”고 지적했다. 영국에서 직조기 설계도를 암기하고 미국 최초 면방직공장을 설립한 이민자 새뮤얼 슬레이터, 영국 동력직기 기술을 비밀리에 베낀 프랜시스 캐벗 로웰이 대표적이다. 유럽 기술자들과 공학자들이 가져온 전문지식은 19세기 미국의 번영을 이끌었다.

오늘날 중국 수입품이 미국 제조업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많지만, 수십년 전엔 일본과의 경쟁에서 비슷한 우려가 비등했다. 1980년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의 연간 합계손실은 13억달러(현재가치 50억달러 이상)를 넘었다. 당시 일본 자동차업계 노동자의 생산성은 미국 노동자보다 17% 더 높았다. 1977년 미국은 반도체분야에서 글로벌 생산량의 57%를 차지했지만 1989년 40%로 떨어졌다. 반면 일본은 50%로 거의 2배 늘었다. 일본의 제조업 우위는 불공정 무역관행이 아닌 혁신에서 비롯됐다. 토요타는 적시납품과 린생산방식을 선보였고, 소니는 워크맨과 VCR 등 서양의 발명품을 개선하는 능력을 자랑했다.

프레이는 “결국 미국은 기술우위를 회복하기 위해 고립이 아닌 글로벌 경제통합을 수용해야 했다”며 “실리콘밸리는 공정기술과 제조효율성 경쟁에서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 혁신과 디자인, 소프트웨어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동시에 제조공정을 저임금 동아시아 제조업체, 특히 중국으로 외주하면서 비용을 절감하고 일본의 경쟁우위를 중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의 전후 역사는 미국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교훈이다. 유럽대륙이 유럽연합의 전신인 경제공동체(EEC)를 추진할 당시, 영국은 1973년까지 국내산업을 경쟁에서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참여를 미뤘다. 경쟁이 약해지면서 카르텔화가 확산됐고 생산성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1970년대 들어 영국의 1인당 GDP는 개방과 경쟁을 앞세운 서독과 프랑스에 뒤처졌다.

프레이는 “오늘날 미국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과거 영국처럼 경쟁력 약화라는 비슷한 위협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1기정부 시작 전부터 미국산업 2/3가 1990년대 컴퓨터붐 시절의 고도로 경쟁적인 시대보다 더 집중화됐다. 이는 생산성 성장에 제약을 가한다. 이런 흐름은 역사적으로 역동적이었던 기술분야에도 마찬가지다. 오픈AI 등 몇몇 신생기업들을 제외하고는 기존 대기업에 도전하는 사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산업재편 능력 위태”

기업 로비지출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실질가치 측면에서 약 2/3 늘었다. 이는 규제포획을 강화하고 반독점 집행력을 약화시켰다.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건 트럼프정부의 선택적·산업별 관세라는 지적이다. 관세면제 혜택을 얻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정부와 정치적 연결고리가 있는 기업들은 경쟁사들이 전액 관세를 부담하는 동안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프레이는 “핵심광물 등 특정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국가안보 측면에서 타당한 이유가 있다. 문제는 미국의 기술적 우위가 글로벌 통합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계 어떤 국가도 기술 자급자족에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전자설계자동화 소프트웨어에서 우위를 차지하지만 일본은 전세계 실리콘 웨이퍼의 56%, 대만은 최첨단 칩의 95%, 중국은 핵심광물과 자석의 90% 이상을 생산한다. 그는 “미국이 안보를 원한다면 동맹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세도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트럼프 1기정부의 관세가 미국 일자리의 순손실을 초래했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캐나다 철강과 같은 필수 원자재에 부과된 관세는 비용을 상승시켰고 미국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실제로 미국이 수입하는 물량의 약 절반은 미국 제조업을 직접 지원한다. 이는 결국 미국 수출을 뒷받침한다.

선진국에서는 100년 이상 된 기업들이 많다. 일본 5대 기업의 평균 연령은 84세, 영국은 116세, 독일은 120세, 프랑스는 152세다. 반면 미국 5대 기업의 평균 연령은 39세이며, 모두 기술기업이다. 프레이는 “미국경제의 가장 큰 강점은 산업재편 능력이다. 새로운 기업이 등장해 혁신하고 성장하는 배경”이라며 “관세는 이같은 미국의 역동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미국은 경제 개방성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경쟁 우위를 포기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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