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산골 소년에서 대한민국 대통령까지

현대사 같이 한 삶…고난과 극복, 위기마다 승부 ‘정면돌파’

2025-06-04 13:00:10 게재

13살부터 남의 이름 빌려 6년간 소년공 생활

주경야독으로 변호사, 인권·시민운동가 변신

정치도 아래에서부터, 시장·도지사 자력 개척

대선 3수 만에 테러·계엄 딛고 대통령 우뚝

이름 없는 소년공으로 가난·차별과 싸워온 비주류가 정치의 중심에 우뚝 섰다. 최악의 조건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워온 길에서 성과만큼 상처도 많다. 정치적 위기와 생명의 위협까지 겪는 위기를 버텨낸 동력으로 ‘진짜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젖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장기는 ‘소년공’으로 대변된다. 중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13살부터 남의 이름을 빌려 6년 동안 공장에서 ‘이름 없는’ 소년공으로 일했다. 납이 펄펄 끓는 화덕, 염산을 담은 용기, 화학약품 냄새 가득한 화공약품 공장 등 6곳을 거치며 100군데 넘는 흉터를 얻었다. 다섯번째로 취직한 야구 장갑 공장에선 프레스기에 왼팔 손목 관절이 눌려 평생 ‘굽은 왼팔’로 살아야 하는 장애를 얻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소년공으로 출발해 인권변호사를 거쳐 성공한 행정가로 변신한다. 가난·차별·정치적 낙담을 거듭하면서 도전과 극복을 반복했다. 위기마다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대한민국 정부의 조타수 역할까지 맡게 됐다. (사진 왼쪽부터) 이 대통령의 어린시절 모습, 인권변호사 시절, 성남시장 시절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던 모습이다. 21대 대선 당선 확정 후 3일 서울 여의도에서 국민들께 인사하는 장면. 연합뉴스

‘공장 관리자’로 평범한 삶을 꿈꾸던 소년 이재명은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은 후 대입 학력고사를 봤고, 전액 장학금과 매월 생활비 20만원 지원이라는 혜택을 받고 중앙대 법대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 입학식 날, 중·고교 학창시절을 경험해보지 못한 한을 풀고자 아무도 입지 않는 대학 교복을 맞춰 입고 참석했다고 회고했다.

대학에서 군부독재의 실상과 거대한 부패 기득권 세력의 통제를 경험했지만 천신만고 끝에 얻은 대학생 신분을 잃을 수 없었던 그는 학생운동 대신 제도권 투쟁을 선택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가난과 부조리를 개혁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1986년 제2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재명은 사법연수원(18기)에서 판·검사 임용 대신 변호사의 길을 택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소년공으로 출발해 인권변호사를 거쳐 성공한 행정가로 변신한다. 가난·차별·정치적 낙담을 거듭하면서 도전과 극복을 반복했다. 위기마다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대한민국 정부의 조타수 역할까지 맡게 됐다. (사진 왼쪽부터) 이 대통령의 어린시절 모습, 인권변호사 시절, 성남시장 시절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던 모습이다. 21대 대선 당선 확정 후 3일 서울 여의도에서 국민들께 인사하는 장면. 연합뉴스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했다. 1995년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창립 구성원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시민운동가로 전환점을 맞게 된다. 부동산 부패 토건 카르텔 및 기득권과의 길고 험난한 싸움이 시작됐다. 2006년 성남시장,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10년 민선 5기 성남시장에 당선된 후 ‘정치인 이재명’의 진가를 발휘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소년공으로 출발해 인권변호사를 거쳐 성공한 행정가로 변신한다. 가난·차별·정치적 낙담을 거듭하면서 도전과 극복을 반복했다. 위기마다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대한민국 정부의 조타수 역할까지 맡게 됐다. (사진 왼쪽부터) 이 대통령의 어린시절 모습, 인권변호사 시절, 성남시장 시절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던 모습이다. 21대 대선 당선 확정 후 3일 서울 여의도에서 국민들께 인사하는 장면. 연합뉴스

‘3대(청년배당·교복·산후조리) 무상복지 정책’은 행정가 이재명의 명성을 알리는 기반이 됐고, 박근혜정부가 지자체 재정 지원을 줄이기로 한 조치에 맞서, 2016년 6월 광화문광장에서 11일간 단식농성으로 정치권과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2016년 10월 29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 집회에서 정치인 최초로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기도 했다.

19대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로 참여해 정치인 이재명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경험했다. 대선 경선 낙선 후 2018년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 2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계 출신으로 당선됐다. 성남시에서 시도했던 ‘기본시리즈’를 경기도로 확대했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민생이 위기에 빠지자 민생지원금을 지급하고 공정질서를 파괴하는 불법·관행에 대한 타파를 주도해 갔다.

이재명 대통령은 소년공으로 출발해 인권변호사를 거쳐 성공한 행정가로 변신한다. 가난·차별·정치적 낙담을 거듭하면서 도전과 극복을 반복했다. 위기마다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대한민국 정부의 조타수 역할까지 맡게 됐다. (사진 왼쪽부터) 이 대통령의 어린시절 모습, 인권변호사 시절, 성남시장 시절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던 모습이다. 21대 대선 당선 확정 후 3일 서울 여의도에서 국민들께 인사하는 장면. 연합뉴스

20대 대선에서 0.72%p 차이로 패배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으나 21대 국회의원(인천 계양구을)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는 예상 외의 방법으로 대응한다. 기존의 정치적 셈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도였다. 당원권 강화·정치개혁을 주창하며 2022년 8월 전당대회에서 대표에 도전해 77.77%의 압도적 득표율로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취임한다.

이 대표 취임 후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의 민주당에서 ‘당원’ 중심을 앞세운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변신한다. 현역의원과 지역위원장의 권한을 상징하은 대의원 제도를 대폭 수정해 ‘대의원-권리당원’ 투표 반영비율을 현실적으로 조정했다. 2024년 전당대회부터 ‘전국대의원대회’의 명칭을 ‘전국당원대회’로 변경하고, 공천룰 결정이나 주요 당내 현안을 권리당원 투표로 결정했다. ‘비명횡사’라는 비판이 있었으나 당원들의 참여로 대대적인 공천 물갈이를 단행, 22대 총선에서 175석의 역대 야당 최다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소년공으로 출발해 인권변호사를 거쳐 성공한 행정가로 변신한다. 가난·차별·정치적 낙담을 거듭하면서 도전과 극복을 반복했다. 위기마다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대한민국 정부의 조타수 역할까지 맡게 됐다. (사진 왼쪽부터) 이 대통령의 어린시절 모습, 인권변호사 시절, 성남시장 시절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던 모습이다. 21대 대선 당선 확정 후 3일 서울 여의도에서 국민들께 인사하는 장면. 연합뉴스

당의 중심이 공고해진 가운데 그는 윤석열정권과의 대격돌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와 기소, 총선 하루 전 소환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고, 2024년 1월 2일, 부산에서 테러를 당해 목정맥 앞부분 65%가 손상되는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 대표에 대한 정치적 공세와 테러 등은 민주당과 그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고리가 됐다. 2024년 8월 18일, 이재명은 최종 85.4%의 역대 최고 득표율로 김대중 대통령 이후 최초로 당대표 연임에 성공한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지난 대선 이후 이재명과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당원이 크게 늘어났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과 함께 시작된 내란에 맞서 국민적 저항을 촉구하며 국회로 달려와 내란종식의 중심에 선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25년 조기 대선을 앞둔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은 89.77%라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대세론에 불을 지폈다. 가난과 차별, 소외와 싸워온 소년공이 생명과 정치적 위기를 넘어 새로운 나라의 조타수를 맡게 됐다. 계엄이 파괴한 민생경제 · 무너뜨린 국격 · 벼랑 끝 국민의 삶을 회복하고 ‘진짜 대한민국’으로 가는 국민 통합의 중심이 될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이명환 기자 기사 더보기